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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Nov 26. 2022

상담자와 회사원 사이 어딘가

심리학자로 살아남기

  지난번 '[심리학자로 살아남기] 연구원에서 상담자로 이직 준비' 포스팅에서 병원 생활 끝에 상담자로서 활동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병원 이외의 다른 조직에서 생활해 보고 싶은 욕구를 발견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글을 쓰고 난 후에 최종발표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합격 소식을 받고, 계약서를 쓰고, OJT(직무교육)을 받고, 근무지 배치를 받고, 상담도 시작했습니다. 병원 수련으로 긴장된 환경에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금방 피로하더라고요. 집에 오면 8시부터 까무룩 잠드는 날들을 보내다가 두 번째 주말을 맞아 정신을 차려봅니다.


기업상담사의 다양한 역할: 회사원과 상담자 사이



1. 회사원으로서 조직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Photo by Redd F on Unsplash


  기업은 임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상담사들을 채용하게 되는데요. 병원처럼 기업에서도 심리학자들이 스스로 역할을 만들어내고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기업은 여러 인사 시스템을 통해 성과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게 만들고 있죠.


  기업에 와보니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상담자이면서 조직원이라는 역할이 충돌하게 될 수 있다는 말이 와닿았어요. 병원에서도 우리의 역할을 내보이고 성과를 내야 하는 건 같지만, 어쨌든 다른 전문가와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지향점은 같습니다. 바로 내담자/환자의 유익, 그리고 임상가/상담자로서의 성장이죠.


  그런데 기업의 많은 조직들이 '상담'이라는 전문 영역과 그에 따른 '상담사'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이란 애당초 이익을 내기 위한 조직이지, 내담자의 성장과 변화가 주요한 조직이 아니니까요. 기업상담 장면에서 상담자이면서 조직원이라는 역할이 충돌하게 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겠죠.


   그렇기 때문에 조직원으로서 우리의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일도 맡아서 해야 한다든가, 우리가 지향하는 전문성과는 다른 일들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빚어지는 어려움이나 갈등이 일어났을 때, 조직의 요구를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떻게 주장하고 조율해볼 것인지가 무척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나아가 그럴 때에 상담사이자 조직원으로서 세련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 하산할 때가 된 것이구나 생각해 봅니다.



2. 상담자로서 어디에 초점을 두고 성장할 것인가?


Photo by Jeremy Bishop on Unsplash


  지금까지의 짧은 이해로 남겨보는 것이지만, 또 한 가지 기업상담 장면의 특징이 있다면, 나만의 강점 영역을 스스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사실 이건 병원 임상심리 수련 환경에서 수퍼바이저 선생님들도 자주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가령 너무 많은 심리평가와 심리치료를 소화하다 보니 모든 사례를 촘촘하게 들여다보면서 작업하기란 어렵거든요. 그래서 내가 특히 마음이 가는 주제나 대상, 혹은 한주에 1-2사례를 마음 써서 공들일 필요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기업 장면에서도 다양한 역할과 과제들을 수행하다 보면 나만의 영역을 발굴하고 성장해나가는 동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제너럴리스트 generalist는 될 수 있지만 스페셜리스트 specialist가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각자 부부 상담에 관심이 있는지, 20-30대에 관심이 있는지, 명상에 관심이 있는지, 이런 자신만의 주력 분야를 공부하고 임상에 활용해 보는 작업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만의 전문 영역을 정하는 일은 박사 과정 입학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에 하나인데,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습니다. 전문 분야를 정한다고 해서 되돌릴 수 없는 종착지가 아니기 때문에 일단 과감하게 두세 가지 분야를 정해서 시도하며 좁혀가봐야겠습니다. 다양한 상담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기업 상담에 도전하기도 했으니까요. 그간 제가 관심을 가졌던 영역은 명상을 활용한 개입, 범진단적 치료, 대상관계와 같은 주제들인데 이외에도 어떤 관심사가 있는지 찾아보려 합니다.




  2주 동안 좀비처럼 회사-집-잠을 반복하며 구름처럼 떠다니던 생각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나니 명쾌해지고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글을 써서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네요. 두렵기도 하고 또 설레기도 하는 시작입니다. 내담자들을 만나니 제가 좋아하는 연결감을 느끼며 따뜻했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초점을 잡아야 할지 책임감도 들었습니다. 또 배울 점이 많은 고년차 선배들을 보며 막연한 목표를 세워보기도 했고요.


  이제 비가 오고 나면 추워진다고 합니다. 모두 따스한 겨울 되시기를 바라봅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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