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로 살아남기
병원에서 일한 지도 5년째입니다. 학교를 떠나 병아리 심리학자이자 직장인으로서 많은 경험과 배움을 주었던 곳인데요. 이제 어떤 면에서 안정감을 주는 걸 보면 병원 세팅에 적응도 되고 정도 들었나 봅니다. 수련 기간에 자살생각척도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자살위험 연구팀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병원 생활이 길어졌는데요. 당시에는 '일단 해보고 맞으면 박사를 가고 아니면 옮겨가자'라는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고 연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상심리전문가가 되어 자유도가 높은 연구실에서 보람도 있고 워라벨도 좋아졌어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연구란 보상이 아주 오래 걸리고 가끔 나타나는 일인데 그걸 계속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또 '임상 활동의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이 갈증으로 남았어요. 더 늦기 전에 내담자를 만나는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임상 및 상담 심리학을 처음 전공했을 때에는 심리평가나 연구활동보다 심리치료만이 진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었거든요. 이제는 치료 우월주의자가 아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맥락을 펼쳐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아름답고 보람 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많은 내담자가 그렇듯 저 역시도 일상을 살아가면서 지금-여기에 존재하기 어려운데요. 상담자로서는 그 순간 마음챙겨 존재하고 상대방과 관계의 상호작용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도 매력적이에요.
그러면서 다음 커리어로 기업상담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병원 이외의 조직에서 생활해보고 싶고 장기상담을 안정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세팅이라고 보았거든요.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준비하면서, 기업상담에 대한 논문을 찾아보고 기업상담 현직자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상담자인가? 왜 상담을 하고 싶은가? 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왜 기업에 가고 싶은가? 기업에서 직원이자 상담자로서 역할의 충돌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와 같은 세부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습니다. 나에게 어떤 강약점이 있는지, 기업에 들어간다면 어떤 어려움이 일어날지, 어떤 상담자로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 정리하게 됐어요.
특히 기업상담의 틀 안에서 나의 강점이 무엇일까 고민해보니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어요. 먼저 일대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함께 상호작용하고 시너지를 내는 조직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시절 집단상담 코리더로 꾸준히 참여하면서 비구조화 집단상담 코리더, 구조화 집단상담 리더까지 경험했구나 새롭게 이해했어요. 병원에 와서 집단인지행동치료를 진행하게 되고, 리더로 집단을 이끌 때에는 마음챙김에 기반한 인지치료를 새롭게 적용해서 치료성과가 개선되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들을 저만의 스토리로 이해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의외의 즐거움이 있었어요.
두번째는 자살위기에 대한 연구 경험인데요. 전문가 수련을 받으며 자살위기 사례를 경험할 일이 꽤 많죠. 저는 우연한 기회로 자살생각척도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됐어요. 자살위기는 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을 접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미국 인지행동치료학회에서도 안전계획과 같은 자살위기 개입에 대한 세션을 찾아 들었습니다. 이후로 또한번 우연한 기회로 자살위험 연구팀에서 일하면서, 계속해서 자살위험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어요. 이 부분을 정리하면서는 나를 이끌어가고 만들어가는 기회들이 주어진 것에 감사를 느꼈어요. 그리고 인생의 불확실성은 참 불안한 녀석이지만 한편으로는 미지의 즐거움일 수 있다는 걸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회고해보니 채용 과정은 지원자에게도 새로운 전환점이자 기회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스토리를 갈무리하고 이 직업과 새로운 역할에 대한 마인드셋을 정리해 보도록 하니까요. 나의 위치를 점검하고 개인적인 목표를 정리해 보는 작업이 앞으로 펼쳐질 난관에 이정표가 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