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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Oct 15. 2023

'감정에 접촉하고 머무른다'는 것의 의미

상담자 노트

  오늘은 요즘 상담하고 공부하고 수퍼비전 받으면서 느끼고 노력하는 5가지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1. '감정을 접촉하고 머무르기' 위해,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돌아가고, 매 순간 깨어있기


  상담자들은 '감정을 접촉하고 머무른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게 됩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감정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감정을 탐색하고 접촉하고 머무르도록 돕습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그것은 억압되고 방어되는 감정의 맥락에서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관찰하고 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현대 정신역동적 관점에서, 자기 관찰 능력을 촉진하고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의 주체가 되면, 관계와 행동의 측면에서 자유롭고 유연해질 수 있다고 보았어요. 게슈탈트 치료의 관점에서는,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정서를 경험하며 다른 정서로 변형하고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고요. 인지행동치료의 관점에서는, Hot cognition, 즉 강렬한 정서가 담긴 인지를 활성화하여 정서를 조절하는 연습과 동시에 새로운 정서 학습과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보았어요. 정서의 역할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요한 치료적 접근에서 정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죠.


  자, 이제 대부분의 치료적 접근에서 정서를 강조한다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감정을 접촉하고 머무르며, 상담자는 그것을 어떻게 담아내준다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구체적인 에피소드'에 있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을 신청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무엇인지, 내담자가 일주일 동안 괴로웠는데 그것이 강렬했던 단 한 장면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계속 초점을 구체적인 일화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이, 그 에피소드의 기승전결을 촘촘하게 훑으며 내담자의 주관적인 경험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감정도 비로소 일부분 다시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물론 치료의 초기에 활성화했을 때 명료화와 반영 이외에 깊은 개입에는 제한이 되겠지만, 내담자가 반복해서 겪는 핵심 감정과 생각이 무엇인지를 탐색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 부분을 놓치는 순간을 알아차립니다. 내담자의 생각에 함께 휩쓸려가 사변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을 때 어느 순간 저는 답답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 꽉 막힌 느낌을 신호로 초점을 돌릴 시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죠. 이걸 알아차렸다면 다시 초점을 가져올 수 있지만, 때때로는 수퍼비전을 준비하거나 받으면서, 아 내가 또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들어가지 못했구나 매번 새롭게 느껴요. 생각은 과거 혹은 미래에 있을 때 일어나기 때문에, 현재에 있지 않고 생생한 경험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때 설득하거나 섣부른 공감을 하고 싶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의 첫 회기부터 매회기를 준비하고 또 임할 때마다 이 부분을 떠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매 순간' 깨어있는 건 비현실적인 기대이지만요.


2. 내담자의 경험에 주목하기


  어쩌면 앞선 이야기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입니다. 내담자가 주체가 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에는, 단지 내담자가 경험했던 감정에 접촉하고 머무르는 것만 있지 않습니다. 상담 관계에서, 지금 여기에서 너와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도 개방적으로 다루는 데에도 있습니다. 오히려 더 직접적이고 또 가끔은 강렬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이 말이 어떻게 느껴지세요? 들리세요? 어떻게 이해되세요?', '지금 우리 사이에서도 말하고 있는 패턴이 드러나고 있다고 느껴지는데 00님은 어떠신가요?' 와 같은 질문으로 내담자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저의 경우에는 섣불리 공감하고 싶거나 문제해결적으로 옮겨갈 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지라도 상담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험에 대한 질문이 중요한 브레이크가 되어 내담자의 경험으로 돌아갈 수 있더라고요.


  중요한 건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경험 그 자체에 있고, 나아가 상담자의 말에 대한 반응을 살피면서 다시 내담자의 경험을 중심에 놓고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상담자의 관점에서 이러한 질문을 통해 상담자가 내심 기대하고 있는 '건강하다, 바람직하다'라는 지점에서 떨어져서 내담자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3. 상담자의 경험에 주목하기


  앞서서 상담 관계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을 알아차린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답답함은 어떤 면에서는 상담자의 반응이 내담자의 경험을 존중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내담자가 반복해온 관계 패턴을 상담자도 모르게 또다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상담에서 상담자 자신의 경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묵은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두사람의 심리학이자 상호작용이므로, 상담자는 내담자의 경험에 한발을 두고 있으면서도, 성찰적 자기로서 내담자 경험과 상담 관계로부터 떨어져 한발을 두고 있어야 하죠. 그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면, 의도적으로 다시 생생한 에피소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한편으로는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진정 무얼 말하고 싶은걸까 고민해보게 됩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요.


4. 첫 회기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심리평가의 경우, 수검자의 다양한 측면을 경제적으로 파악해서 압축해야 하고, 또 검사부터 면담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 수검자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평가자의 주도성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상담에서는 그런 태도가 오히려 내담자의 경험을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상심리사가 상담을 임할 때에는 모드 전환이 중요하더라고요. 심리평가가 내담자의 경험을 요약하는 과정이라면, 심리상담은 내담자의 경험을 펼쳐내는 과정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수련을 하면서 그리고 지금 상담을 하면서 이 모드 전환이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에 오게 된 계기와 주호소에만 몰두하다가 상담에 대해 궁금하거나 걱정되는 점을 묻지 못하거나 첫 회기가 어땠는지 충분히 듣지 못할 때가 있었거든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대략 30분은 내담자가 오게 된 경위와 경험들을 충분히 듣고, 그런 다음에는 혹시 말하지 못한 부분은 없었는지 점검하고, 남은 20분은 상담에 대해 궁금하거나 걱정되는 부분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상담에 대한 구조화와 심리교육을 하는 게 균형적이라고 느껴요. 상담자의 욕심보다 내담자가 안전하다고 느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5. 무엇이 치료적인가


  상담을 통해 어떻게 변화가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정답은 없고 저의 잠정적인 정의도 계속 변화해나가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반복되는 있는 핵심 감정과 대처방식을 과거 경험과 연결지어 인식하며 연민을 느끼고, 과거에는 필요했지만 현재는 필요하지 않음을 알아차리도록 한다. 그리고 상담이 무르익으면, '결국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서 그친다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답답할 수 있다. 결국 두렵지만 새로운 행동을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걸 제안하기도 합니다. 수용과 연민을 기반으로, 이제는 필요하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배우기 위해서, 새로운 행동을 함께 연습하고 계획해봅니다.


  한편, 내담자의 관점에서, '내가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한 내담자는 이렇게 답했어요. '찌질해도 괜찮다는 경험'이 나다워지게 했던 것 같다고요. 처음에는 자신이 이렇게 이야기하는게 어떻게 보일까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감이 없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상담 관계에서 이래도 되는구나, 지질해도 괜찮구나, 하는 경험을 하면서, 자유로워지고 나의 감정과 욕구를 살피고 그것대로 느끼고 행동할 수 있었다고요. 이렇게 보면, 상담에서 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치료자의 새로운 태도이자 관계 경험이구나, 다시 느끼게 됩니다.



  이제 여유를 찾아서 그동안 경험했던 것들을 정리하게 되네요. 역시 저는 기록하고 정리하는 행위에서 시원해지고 즐거워지나 봅니다. 기업상담사 1년차 회고 만큼이나, 상담에서 느꼈던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적어내려갔어요. 여전히 한명 한명의 내담자가 어렵고 헤매지만, 깊이 있게 만났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어려움이 잊혀지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들이 늘어나기를 깊이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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