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요즘은 종이로 필기를 하지 않는지.”
“이제는 랩탑 아니면 태블릿으로 필기를 한다. PPT로 수업하시는 교수님의 자료는 학교 내부망으로 공유를 요청하고 판서를 하는 교수님들의 수업 내용은 사진을 찍어둔다.”
과제물로 원고지가 쓰이던 거의 마지막 시대(물론 전공별 특성이 반영됐다)였고 플로피 디스켓으로 과제물을 제출하던 시대에 학교를 다녔던 내게는 생경한 말이었다. 어느 순간, 랩탑과 태블릿만 덜렁 들고 학교에 오던 학생들을 신기하게 바라본 끝에 던진 물음이었다.
한 번은 수업에 참관을 했는데 예의 랩탑, 태블릿은 물론이고 휴대전화까지 자유롭게 만지며 수업을 듣더라. 수업이 끝나고는 조금 늦게 온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말했다.
“OO, 오늘 사진 찍고 필기한 거 톡방에 좀 올려.”
공유를 원한다는 뜻이다. 요청을 받은 학생도 흔쾌히 ‘알았다’고 답했다. 대학이라 그런 건지. 내신 경쟁이 치열한 일선 중, 고등학교에선 상대의 필기 자료를 찢어 변기에 흘리거나 휴지통에 갖다 버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소유와 독점의 시기를 지나 공유와 협업으로 만나는 것인지.
그러고 보니 내가 들고 다니는 장비도 적지 않다. 글을 쓰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기 위해 들고 다니는 랩탑(2대, 맥북은 사용해보고 싶어서 그냥 샀다)과 가볍게 영상을 보고 역시 검색을 위해 산 아이패드 미니(5 시리즈)가 있다. 휴대전화(아이폰 SE2)야 당연히 있는 거고, 노이즈 캔슬링을 지원하는 에어팟 프로, 여행 중 각종 사진과 기록 저장용으로 질러버린 샌디스크 외장하드 500gb, 운동 기록과 각종 신호 등에 빠른 반응을 위해(서는 무슨, 그냥 사고 싶었던 거지)애플워치까지.
브랜드가 너무 쏠려 친구들은 내가 무슨 그 회사 추앙자(추종자라고 쓰려다 트렌드를 반영했다)라고 하는데 그런 건 아니다. 생활에서 꼭 필요한 통화 중 녹음도 안 만드는 전화기를 오래 쓰기가 어려워, 이 전화기의 사회적, 기술적 수명이 다 닳으면 다른 브랜드로 갈아타려고 마음 먹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
아무튼 나만 해도 수많은 장비 속에 살고 있다. 잘은 몰랐으나 헤아려보니 한 움큼이다. 학교 강의실, 실습실을 오가며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소지품을 관찰하면서 인 호기심이 나에게로 미쳤고 나와 꽤나 세대 차이가 나는 그들과 내 삶의 모습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구나 했다. 단지 종이로 필기를 안 한다고, 종이로 된 책을 옆에 끼고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그들의 수업과 생활을 노려보았던 눈이 더 크고 불거져 나를 째려보는 중이다.
장비는 장비일 뿐이고 연장은 그저 연장이다. 그것들이 시대를 지나며 더 작고, 편리해져 우리 곁에서 쓰임을 받을 뿐 거기에 큰 의미는 부여하지 않을 일이다.
아, 하나는 조금 힘들다. 학생들이 미끄럽고 문질문질한 태블릿에 필기를 하다보니 가끔 제 이름을 정서해야 할 때 알아보기 힘들다. 역시 큰 문제는 아닐 터이다. 이상 속도의 세상을 나름의 경주로 살아가는 헨나오지상의 흰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