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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환희 May 24. 2022

부마항쟁과 신영복의 관계는?


이 책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책 소개로는 사료를 많이 접하지 못한 부산· 마산 항쟁(이른바 10.16 항쟁)의 숨은 이야기를 다룬다고 들었다. 부산, 마산 사람들에게 당대의 항쟁은 5.18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일로 여겨진다는 평가를 접한 적이 있다. 열흘 동안의 공세에 유신 정부가 무너졌다는 기념비적인 일인데 세상은 그보다 서울의 봄 이후 전국 계엄령 속에 혈혈단신 싸우던 광주만을 기억하는 듯해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책이 이 문제의식을 담은 건 아니었다. 목차를 보면 첫 장은 ‘신영복의 비석’이라는 제목이다. 부마 항쟁 기념 비석은 부산대 교정 서쪽 끝인 건설관(구 도서관 자리)에 있다. 이른바 다큐 소설 속 주인공들은 여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우선 첫째로 부산대의 10.16항쟁이 시작된 곳은 인문사회관과 상대 건물에서 시작됐다는 점과 통일혁명당의 하부 조직책인 신영복의 제자(題字)가 왜 10.16의 기념비에 담겨있어야 하는 점이었다. 희생자들이나 기여자들의 이름 한 자도 들어가지 못한 비에 말이다. 


  책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주인공들은 어떤 의미로 좌경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 그 가운데에서도 부산, 경남에 퍼져있는 왕년 주체사상의 잔여세력과 정신들에 대해 사료를 뒤지고 취재를 하며 파헤쳐간다. 


  이를테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첫 도전 당시의 주요 포스트에서 선거운동을 했던 인물 중엔 옛 반제청년동맹(김영환의 그것보다 3년 전에 탄생한 부산 자생의)의 조직원들이 가담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후에 문재인 캠프에서 활약하기도 하는데 장관의 보좌관이 되고, 해양 공기업의 핵심 자리에까지 진출하기도 한다(‘다큐 소설’이라는 이름이라 사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의 영역인지 알 수는 없다). 


  최근의 대안연대의 민경우 대표가 국정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박지원 국정원장 취임 후 새로 원훈석을 교체했는데 역시 제자를 신영복 전 교수가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영복 교수는 통혁당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깨끗한 묵향의 수필이라는 절찬을 받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지으며 지식인 세계는 물론 대중들 앞에 등장했다. 문통이 그를 존경한다고, 은사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수차례 했는데 그래서였는지 이른바 문통의 지지세력 가운데 많은 수가 그의 영향권에 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신 교수는 전향서에 도장을 누르고 나왔다는 전언이 있었는데, 나오고 나서 동양인문학의 세계로 천착하며 자신의 정치, 사상적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행보를 보인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이 무슨 트집 잡을 일이라고 보이지는 않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의심이 눈길을 보냈던 것이 사실이었고, 통혁당으로부터의 사상적 추존성이 국정원 원훈석에 제자를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점에 민경우 대표의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신 교수는 책에 따르면 이른바 독립좌파 세력이다. 중국이나 미국 등 어느 한 세력을 옹호하거나 사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반면, 우리 사회 좌경 사상의 다른 한 지점인 『태백산맥』의 조정래 같은 경우 친중사대의 혐의가 농후하다는 평가를 책은 내린다. 대장정과 마오쩌둥을 높이 친다는 이유인데 소설은 부마항쟁에 참여했던 육십 무렵의 세 명과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와 토론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 새로운 권력이 돼버린 좌경세력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식으로 전개된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많이 못 읽고 덮어버릴 줄 알았다. 그러나 책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내용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으나 일정 부분 공감이 가는 대목이 있었다. 저자는 이병주의 소설 작법 방식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법을 빌려왔다고 모두에서 밝히는데 나림의 작법은 책에서 보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것은 잘 모르겠다. 


  책은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부산대 건설관 앞에 있는 10.16의 기념석을 타도하는 대목으로 끝이 난다. 신영복의 비석으로 대표되는 좌경세력을 꺾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 것일까. 


  역사라는 걸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을 한다. 사람이 쓰는 것일 수밖에 없는 역사이기에 편향성과 경도는 어쩔 수 없이 벌어질 부분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편향성보단 그 편향성의 경로를 따라가는 확증편향일 것인데, 그걸 경계하려 냉정하고 어쩔 땐 기계적으로 좌, 우의 사관과 인식을 교차로 읽어나간다. 이번에 읽은 책 역시 그러한 경향을 이어가고자 하는 선택이었다. 


  부, 마 지역 운동권의 계보(부림 사건의 속살에 대해서도 책은 서술한다)나 이른바 좌경화된 사회에 불만을 두고 균형을 잡거나 반박의 근거를 찾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을 만한 책이었다. 저자는 부산에서 태어나 사회운동을 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경제학으로 박사를 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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