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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Jan 13. 2024

손목 시계

'너 이거 찰래?'

아부지가 거실장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집어 들어 건넨다.

아부지가 차고 다니시던 오래된 손목 시계다.


국민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친구네가 하던 '고려당' 빵집 옆에 시계 가게에서

피노키오가 그려진 손목시계를 받아들고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손목에 시계줄을 두르고 구멍으로 걸쇠를 넣어 채우고는 연신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비닐가죽에 달려있던 플라스틱이었을 동그란 시계 커버는 그래도 반짝거렸다.


그 때 몇 달을 빼고는 딱히 시계를 차고 다닌 적이 별로 없다. 

몸에 무얼 달고 다니는 것이 거추장 스러워 가방도 가지고 다니기 싫어하는 편이기도 하고, 물건을 손에 들고 다니다가 잘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군대에 있을 때도 알람과 타이머까지 되는 전자시계를 며칠 동안 차고 다니다 이내 관물대에 넣어 두기 일쑤였고, 요즘에는 스마트워치를 구입해서 두 세달 차고 다니다가 영 걸리적거려 지금은 어디에 두었는지도 잊어버렸다.


'이거 아부지가 차던 건데 아직도 잘 간다. 시간도 잘 맞고'

오래전부터 아부지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금색 손목시계가 낯익다.

아부지의 손목에서 아부지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기쁨의 순간에도 슬픔의 순간에도 희노애락의 길이를 다시 일어서야 할 때를 알려주었을 아부지의 시계.


나도 모르게 '네, 저 주세요' 하면서 냉큼 받아 들었다.

아부지가 지고 오셨던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묵직했다.


피노키오 손목시계를 차고 세상을 얻은 것 마냥 기뻐하던 철부지가 이제 지천명을 넘어선 세월이 되어 한 달이면 한 두어번은 친구들의 어버이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게 된다.


이제 엄마, 아부지와 함께 살아온 날보다 함께 살아갈 날이 무척이나 짧아졌음을 안다. 

시계를 받아 든 날부터 아부지의 시계는 계속 내 왼쪽 손목에서 반짝거린다.


손목에 착 감겨 버렸는지 하나도 거추장스럽지 않다.

손목에 채워진 아부지의 오래된 시계를 보면서 아부지의 시간을, 아부지와 함께 했던 시간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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