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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NI Jul 25. 2018

이해하는 시간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2-

남자친구와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두세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벌써 만난 지도 5년째, 남자친구는 나의 영향 때문인지 평등에 대해 전보다 생각이 깊어진 듯했다.




나는 결혼이라는 틀에 얽매이는 것이 싫었다.


명절이되면 꼭 어른들을 찾아뵈어야 한다거나, 얼굴을 하나도 모르는 집에 가서 집안일을 강요당하거나, 여태껏 제사도 챙기지 않았는데 챙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과 같은 것들.


생각만해도 숨이 막혀, 결혼이 싫었다.

그래서 내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온전히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룬 성인으로, 독립을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때 하겠다고 다짐했다.


부모님은 우리를 똑같이 가르쳤지만, 평등한 역할을 배우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늘 강조하셨다. '나는 아들, 딸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가르쳤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는 걸 이제는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엄마의 가치관은 뚜렷하셨다. '하고싶다는 것은 내 능력이 되는 한, 전부 다 해주자. 지금 이 순간이 아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


엄마의 확고한 가치관 덕분에 우리 3남매는 다방면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셋 다 피아노, 태권도,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고3때까지 피아노과 진학을 위해 입시 준비를 했고, 여동생은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고, 막내는 과학상자, 로봇, 작곡, 컴퓨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집안 일에 대해서는 차별아닌 차별이 있었다. 나와 여동생은 엄마가 혼자 집안일을 하시는 것이 힘들까봐 하나, 둘 도와드리기 시작했다. 설거지도 도와드리고, 청소도 도와드리고, 빨래도 도와드렸다. 깜빡 잊고 내가 설거지를 해놓지 않으면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막냇동생은 모든게 다 용서되었다. 왜 막내에게는 집안일을 시키지 않느냐고 수십번을 얘기하고 그러면 안된다고 누누히 얘기를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결혼하면 알아서 다 하겠지.'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반대한다. 집에서 청소, 빨래, 설거지를 하는 것이 습관이 안 됐던 사람이 결혼한다고 갑자기 뿅! 하고 달라져서 가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절대 아니라고 본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본 모습이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지배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앞으로 동생의 아내가 될 사람에게 미리 미안하다는 얘기를 해주어야 할 것 같다.


나를 더 화나게 했던 것은, 왜 너는 설거지며 빨래를 하지 않느냐는 나의 분노에도 뻔뻔하게 '엄마가 있으니까'라는 대답을 내놓는 막내. 누굴 보고 배운 것일까.


사람의 생각은 변한다


나는 아직 경험하지도 않은 시댁에 대한 스트레스, 두려움, 그리고 내가 자라면서 직접 느낀 차별에 대해 남자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남자친구는 반대 입장이었다.


제사에 가면 어른들보다 어림에도 불구하고 음식상을 받는 입장이었고, 부모님과 집안 행사는 여동생이 챙기기에 본인은 신경쓰지않고 편하게 살아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집과는 달리 맞벌이 부모님이셔서 집안일을 가족 구성원이 나누어서 했기 때문에 가사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정도였다.


직장에서 임신과 출산으로 육아휴직에 들어갔던 동료 직원들이 일터에 복귀하고나서 적응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둘째 임신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퇴사의 길을 보면서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남자친구가 이상한 이 상황들을 문제로 인식해주길 바랬다.


제삿날 친척들을 만나면 작은 것 하나라도 도와드리려고 해보라고, 하다 못해 과일이라도 직접 깎아 먹어보라고 했다. 본인의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인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음식을 차리고 '대접까지' 해야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고 얘기했다.


같은 학교,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났다. 그러나 성적도 내가 더 좋았고,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아 나는 전공을 하나 더 이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커플이 결혼 후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해 나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했다.


이렇게 하나 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이 몇 년째 반복되자 남자친구의 공감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성장하며 겪었던 문제들을 남자친구에게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했다.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은 척, 그렇게 외면하며 내가 편히 살았다는 것을 인정해. 그리고 성장하면서 어떤 일을 겪었을지 조금은 그려져."


이렇게 우리는 문제를 문제로 끄집어내고, 토론하며, 어른이 되기위해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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