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Sep 30. 2019

N잡러가 불안과 함께 사는 방법

누구나 불안한 시대, 불안과 잘 지내보기

"직장이 여러 개고, 하나는 4대 보험도 안되는데, 그러면 불안하지 않으세요?"


N잡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바로 '불안'에 관한 것이었다. 이건 신문사 인터뷰든, 강연이든, 개인적으로 만난 미팅에서든, 빠짐없이 나오는 질문이었다. 처음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누구나 불안하죠'라는 말로 대답을 하다가 그 횟수가 늘어나면서 대체 불안은 현대인들에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왜 우리는 불안에 이렇게 관심이 많을까. 아마도 모두 불안하기 때문이고, 불안이 미치는 영향(불안이 가져오는 무기력이나 불쾌함)에서 벗어나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과연 감정을 가진 인간에게 가능한 것인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불안해질 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직장이 하나이고,
안정적인 하나의 일만 계속할 수 있다면
불안이 없어질까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누군가는 안정적인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으로 소속과 관련된 불안은 없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 4대 보험이 해결되고 매달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 상상하게 하는 삶의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정말 이것은 가능한 이야기일까. 2019년의 한국 사회에서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한 직장에서 평생 일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말이다. 국제 정세가 불안해서, 나라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 회사가 어려워서, 사내 정치 싸움에서 밀려서, 네트워크가 없어서, 여자이기 때문에, 경력 개발을 잘하지 못해서. 이런 이유들로 우리는 하나의 일을 계속할 수 없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노동 시장이 점점 더 유연해지고, 사용자들은 어떻게 하면 비용을 덜 들이며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시대. 버티면 자산을 모으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런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 불안하지 않기 위해 버티며 하나의 일을 하기보다는 불안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는 것이 나에게 좋다고 생각했다. 


불안하지 않은 삶을 택한 것이 아니라
기꺼이 불안한 삶을 택한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 '불안하지 않으세요?'라는 말에 제대로 답을 해보자면, 나는 불안하지 않은 삶을 택한 것이 아니라 기꺼이 불안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불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면, 불안과 함께 어떻게 잘 살아볼까를 고민하는 것이 내게 좋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불안한 마음이 되면 '아 내가 불안한 상태구나'라는 것을 바라보는 연습,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려고 애썼다. 불안하지 않은 인간이 없다면,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고, 오히려 이를 이용해서 신호를 보낸 나의 욕구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는 기회로 전환해보자는 것이 삶의 전략 중 하나가 되었다. 불안할 때 내가 뭘 하는지 관찰했고(잠을 많이 자거나 끊임없이 넷플릭스를 보며 누워있고만 싶으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거더라), 좀 더 그 상태에 머물도록 할지 아니면 나만의 처방을 통해 불안에서 나올지 선택할 수 있도록 불안과 살아갈 때 내게 필요한 목록을 작성해보기도 했다. 


불안과 함께 살 때 도움이 되었던 것들

나는 불안이 무기력과 함께 오곤 했다. 다 귀찮고, 가라앉고, 에너지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유 없이 잠이 많아지거나 누워서 동영상을 엄청나게 많이 보는 상태가 지속되면, 뭔가 불안하거나 내 안에서 풀리지 않는 뭔가가 생겼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불안할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 관찰하면, 이를 알아채고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쉬지 못해서 기운이 없는 것인지, 뭔가 모를 걱정과 비관 때문에 기운이 없는 것인지를 알고 스스로에게 적절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쉬지 못해 기운이 없다면 잘 쉬고,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불안 때문이라면, 근원이 되는 신호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생각을 전환하거나 상황을 해결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되었다. 다음은 내게 도움이 되었던 노력들.


1. 그렇게 하면 왜 안되지? : 작은 단위로 생각하기


'이렇게 하다가 전문성이고 뭐고 내 커리어가 이상해지면 어떡하지?', '두 개의 직장에서 일했다고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없으면 어떡하지?' 뭐 이런 질문들이 마음속에 일어나 불안해질 때가 있다. 일을 잘하다가도 아주 작은 부침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는 질문은 곧 그렇게 되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을 하게 하고, '내 인생 망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는 않는 것 같고(?) 또 내 걱정을 제일 많이 하는 내가 인생이 망하는 걸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지! 이런 생각이 들어 가라앉을 때면, 저 질문들을 더 작은 단위로 쪼개는 연습을 했다. '전문성이 뭔데?', '커리어가 이상해지는 게 뭔데?', '두 개의 직장에서 일했다고 나를 평가 절하하는 회사에서 나는 과연 일하고 싶을까?'라는 질문으로. 그러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의 지금 상황을 정리하거나 답할 수 있는 근거를 공부해야 했다. 그 결과 전문성은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고, 커리어를 해석하는 기준을 전통적인 관점으로 두지 않아도 되고, 내가 우연히 두 개의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된 것처럼 나의 선택과 우연이 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할 수 있게 할 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지만, 연습하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아주 크거나 추상적인 질문은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주지만, 압도되기 쉽다. 안팎에서 던져지는 질문이 만들어 내는 불안. 이런 불안한 느낌을 실제적인 언어나 데이터로 정리해보는 일, 이것이 불안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 한 첫 번째 노력이다.


2. 바뀌는 계획들에 쫄지 말기 


상황에 따라 계획을 바꾸면 어쩐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고(나와의 싸움에서?), 타협을 해버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N잡러는 타협을 타협이라고 쓰고 적응이라고 읽는다... 음? N잡을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생기고, 이에 따라 스케줄이나 목표를 조정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기존에 세워놓은 계획을 바꾼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세워놓은 계획대로 가는 것이 빠르고 안전하게 느껴지고, 계획이 틀어진다는 것은 크든 작든 좌절감을 소화해야 한다. 여기엔 쓰지 않아도 될 에너지가 많이 든다. 이렇게 느껴지는 스트레스를 회피하면서 불안하고 무기력해지는 경험을 종종 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내게 맡겨진 일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무기력한 기운을 전환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계획을 바꾸는 일을 회피하는 이유는 계획이 바뀌는 것에 따라오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든지, 내 일상의 작은 계획들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든지. 이것들은 '하기 싫은 일'의 영역에 들어가기도 한다. 때론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고,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일도 있고. 하지만 이런 일들은 지금 하든지 내일모레 하든지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해보니 오늘 하는 것이 내일모레 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또 경험해봐야 안다). 그래서 '계획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변경해야 하면 바로 하자!'라고 매일 보는 수첩에 써두고, 최대한 빠르게 계획을 변경하고, 일을 조정하려고 노력했다. 이것 역시 계속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 해 본 일을 하는데 처음부터 잘 되는 사람은 없고, 해보면 늘더라. 


3. 성공의 경험 기록하기


이것은 평소에 해두면 좋은 일. 크든 작든, 내가 일을 하면서 잘한 것들을 기록해두면 갑자기 드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추상적인 질문에 답을 하기에도 좋았다. 조직에서 업무를 하는 과정이나 좋은 결과, 성장은 팀과의 리뷰를 통해 정리할 수 있었지만, N잡을 하면서 내가 발견한 것, 나의 장점, 성장한 지점들은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으니까. 일주일을 정리하는 나만의 비법을 발견하게 된 일도, 인터뷰를 하며 했던 멋진 말도, 좀 더 쉽게 두 조직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 날도, 기록해두었다. 이렇게 발전하는 스스로의 성장점을 기록하면, 그걸 딛고 그다음으로 갈 수 있다. 내가 하는 일, 내가 시도하는 실험이 의미 없다고 쉽게 말하지 않을 수 있다. 이건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에게도, 그냥 일상의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인 불안과 함께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까 모두 불안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모든 감정에는 양면이 있다. 불안은 더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를 돌아보고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 내면이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면, 그것이 느껴질 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계기로 사용해보자고, 그렇게 스스로와 얘기했다. 하지만 아주 잘 지내는 것은 힘든 일이라 여전히 불안해하고, 그래서 무기력해지고, 다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냥 계속 노력하고, 나를 위해 좋은 선택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할 뿐이다. 어차피 불안할 거라면, 같이 살아야 한다면, 잘 지내려고 해 보자고. 


오늘도 이렇게 생각하고, 기록한 나를 칭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욕망의 바구니를 들여다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