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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20. 2018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기획자#1

요점정리 : 3기 2강#1 with 정수현(앤스페이스)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 3기의 두 번째 수업, 첫 번째 강의는 앤스페이스의 대표 정수현님과 함께 했습니다.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기획자'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의에서는 '공간기획'을 시작하게 된 수현님의 20대 활동가시절부터 꿈을 키우며 사업을 해나가는 사업가로서의 현재까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나에게 100평이 주어진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실제로 공간기획을 해보는 시간도 가졌어요. 사업가이자 공간기획자인 수현님의 커리어패스와 기획의 이모저모를 정리해봤습니다. 


본 포스트는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 기획팀이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강의는 총 2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자기다움이 있는
도시를 기획하다


안녕하세요, 요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부동산 회사로 성장하고 있는 앤스페이스의 정수현입니다.


대부분 많은 분들이 ‘부동산’ 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실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부동산 회사가 혁신적이어야 하고, 또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재밌는 회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높아가는 공실률을 재미있게 해결하고 있거든요. 이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말하는 시대는 갔어요. 오히려 건물을 가지신 분들이 공간을 잘 기획하고, 공간을 잘 채워줄 수 있는 기획자를 소개시켜달라고 말하는 시대에요. 그런 사람들과 공간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들이 저희가 주로 하고 있는 비즈니스입니다.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제가 기획자에서 사업가로 변모하는 과정을 곱씹어 봤습니다. 요즘 다른 곳에 가면 사업적인 발표를 할 일이 많은데, 오늘은 기획자들을 만나는 자리다 보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공간 기획자가 되었고, 20대 때 어떤 고민을 했는 지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기획자로서의 삶과 기획이라는 영역에 대해 자기만의 정리를 해보시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일단 제 인생을 돌아보면 크게 4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걸 간단히 한 번 더 정리해보면 꿈꾸던 시기가 있었고, 꿈을 미션화 하는 시기, 지금은 그것을 사업으로 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이 모든 과정은 다 연결이 되어 있어요. 



소셜미션을 가지고 뜨겁게 활동하던
20대 활동가, 정수현


활동가이자 기획자이던 시절의 다양한 활동 ©정수현


제 모든 인생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시기가 바로 20대의 활동가 시절입니다. 사실 지금도 저희 회사는 ‘소셜 미션’을 가지고 있는 부동산 회사라고 하거든요. 공실률을 줄이고 적정 비용의 부동산이 많아질 수 있도록 부동산 공급의 혁신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돈만 벌려고 하는 부동산 회사와는 좀 다르죠.


이런 생각의 기반은 20대 활동가 시절에 많이 형성이 되었어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시기 였는데, 이때의 주제는 “자기다움”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자기다움이라는 키워드로 도시 문제를 풀고 있는데, 사업가가 되기 전, 공간 기획자가 되기 전에 했던 이슈를 어떻게 사업으로 연결시켰는 지 알려드릴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시기예요.


제가 활동했던 분야는 그 중에서도 ‘교육’ 분야 였어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라는 기관에서 캠페인 기획자 활동을 했습니다. 2-30조가 넘어가는 사교육 시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뚫기 어려운 취업 시장 등 여러 문제를 시민사회에 알리고 인식을 개선하는 일을 캠페인으로 풀어가는 기획자 역할이었어요. 너무 재미있게 활동했어요. 쉬지 않고 일해도 즐거웠거든요. 


제가 이 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공명심’의 기저에는 여러 키워드가 있었어요. 첫번째는 제가 청년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20대 때는 88만원 세대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담론이었거든요. 청년들이 타자화되고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졌고, 그래서 그런 불만을 표출하는 시대였어요. 그 다음은 부동산과 교육. 청년들이 자기답게 못사는 이유는 부동산으로 경제가 묶여 있거나, 교육으로 기회 공평이 없거나. 이 두 가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 3가지 주제(청년(당사자 이슈), 주거 부동산, 교육 혁신)로 굉장히 다양하게 활동했어요. 청년 국회의원 만들기 운동도 하고, 글쓰기를 통해 자기 표현을 하기도 하고.. 부동산 자체에 대한 스터디도 열고. 활동가였기 때문에 돈은 좀 부족해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좋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사실 이 시기는 프로페셔널하게 제 영역을 만들어 힘있게 일을 했다기 보다는 다양한 주제와 사람을 풍부하게 만난, 소위 사회적 자본을 쌓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어요. 기획자들은 어떤 분야이든 사회적 자본을 쌓는 것에 노력을 들여야 해요. 인맥을 통해 쉽게 일한다는 개념보다는 서로 일로 만난 동료들이 생겨야 기획자로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좀 덜 주저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시간을 비영리 단체 활동을 통해 쌓을 수 있었고, 좀 구체화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장기가 하나 있었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팬클럽 페이지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혼자 코딩 공부하고, 사이트 만들고… 그런데 잘 살펴보니까 비영리 단체들에 되게 필요한 기술인데, 정작 이 기술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없더라고요. 홈페이지나 캠페인 페이지를 간단한 기술만 알면 만들 수 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간단한 것들을 정리해서 약 3년간 전국의 비영리 단체를 다니면서 미디어 교육을 하기 시작했어요. 저만의 커리큘럼으로 비영리 캠페인에 맞게 미디어 교육을 하게 되었죠. 공명심 + 미디어 관련 기술이 있으니까 이런 활동들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크고 작은 행사를 하며 3000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게 나중에 공간 사업을 하게 되는데 어마어마한 인맥 자원이 됩니다. 


기획자의 중요 자산 중 하나인 인맥 관계를 저의 얄량한 미디어 교육으로 채운 거죠. 6주 정도의 수업을 들으면 홈페이지 구축과 유투브, 포토샵을 할 수 있게 되는 미디어 스쿨을 열었더니, 지금은 카카오가 된 다음의 사회공헌팀과 계약을 하게 되었고, 3년간 저의 사이드프로젝트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서 모아준 비영리 단체를 대상으로 다음의 IT팀(기획자, 개발자)과 같이 활동했어요.



자기다움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어떤 기획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넘치는 공명심을 가지고 소셜 미션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던 시기에(입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캠페인 기획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전국에 3000명이 넘는 다양한 분야의 비영리 단체 활동가 분들, IT 서비스 하시는 분들을 만나다 보니 너무나 창의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거예요. 그 전까지는 만나는 사람의 폭이 좁고 보수적인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데 세상에는 사회적, 공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런 공적 가치를 사업이나 이노베이션으로 풀어가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모여서 교류할 수 없었을까? 라는 질문이 들게 되었어요. 이 시기가 자기답게 사는 사람들을 위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을 넘어서 기획자로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움튼 시기에요. 


사이드 프로젝트로 ‘스타트업 친구들은 어떤 진로를 통해 이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라는 포커스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20명의 청년 창업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어요. 그랬더니 다들 한결같이 ‘공간이 필요하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더라구요. 임대료에 대한 부담없이 실험도 해볼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거죠. 기술 하는 사람들은 오피스, 가게하는 사람들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하고요. 아직 아이템이 확정되지 않았어도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보니 부담스러워서 도전하기 어렵다는 친구들도 많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크리에이터들이 실험하려고 할 때 공간비용만 낮아져도 창업도 활성화 되고 다양한 진로들에 대한 기회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공실률에 대한 이슈도 있었어요. 우리나라 공실률이 15% 정도 되는데, 사실 엄청 높은 편이거든요. 지어져있지만 공간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는 얘기예요. 공실이 많아지면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사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다루어지기도 해요. 


그러다가 우연히 코워킹 스페이스에 대한 흐름을 이 때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워낙 다양한 코워킹 스페이스가 많지만 이때만 해도 개념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요. 어쨌든 코워킹&코리빙의 개념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조금씩 관심이 가지던 시기였고, 저도 관심이 있었던 때 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쓰니까 임대비가 낮아지고, 단기 협업이 촉진 되는 공간이라니, 매우 매력적이잖아요. 그래서 코워킹 스페이스를 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때 마침 좋은 제안을 주신 한 치과 선생님과 함께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되었어요. 이게 ‘스페이스 노아’라는 제 첫번째 사업의 시작입니다. 

첫번째 프로젝트였던 '스페이스 노아'. ©정수현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원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간 자원이 필요해요


저희가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세운 원칙이 있었어요. 코워킹 스페이스로는 돈 벌지 말자, 라는 의견은 일치 했고, 처음 생각처럼 사람들이 임대료에 대한 부담 없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는데 입주자들에게 월 10만원만 내게 하고, 돈은 대관비를 통해 벌자고 생각했습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일했어요. 대관료도 저렴하고 코워킹 스페이스가 생기니까 다양한 아이디어와 일을 하는 청년들이 모이게 되었고, 영감과 기회를 연결하며 같이 프로젝트도 하고 회의도 하고, 그런 공간이 되었죠. 실제로 지금은 대표님이나 큰 일을 하게 되신 분들도 있는데 이때는 어렸을 때라 다들 재미있게 일하면서 코워킹 커뮤니티도 형성이 되었고요, 같이 식사도 하고 국적과 분야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친구들도 사귀고, 끊임 없이 여러 콘텐츠가 생성되었어요. 또 대관도 엄청 비싼 비용을 부르지 않아서 활발하게 이용을 하시기도 했고요. 일부러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놔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끔 한 것도 있고요. 사실 코워킹 스페이스의 핵심은 시설을 공유한다기 보다는, 그 공간에 모이는 사람들이 삶을 교류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리소스를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그래서 공간 하나를 공실 없이, 낮에는 코워킹 스페이스로 밤에는 이벤트 공간으로 끊임 없이 채웠어요. 


스페이스 노아는 그렇게 크지 않아요. 40평씩 2개 층인데 재미있는 일을 하니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보이게 되었어요. 언론의 관심도 받게 되고, 굉장히 다양한 컨텐츠를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 모이게 되고, 기업도 관심을 가지고요. 스페이스 노아를 운영하면서 3가지를 깨닫게 되었는데, 첫번째는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원한다는 것이고, 그를 위해서는 ‘공간’자원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공간의 콘텐츠를 채우는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많은 분들에게 영감이 되었던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저도 즐겁게 일했습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를 잘 하고 나니까 얻어지는 게 많았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좋은 임팩트를 받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와 함께 뜻이 맞는 동료들과 나오자마자 앤스페이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동그라미 재단과 함께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사실 신생 회사에게 바로 일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데, 스페이스 노아를 운영했던 경력을 좋게 봐주셔서 일이 잘 진행될 수 있었어요. 내용인 즉슨, 본인들이 150평정도의 공간이 있는데, 재단에서 평균 한달에 3~4일 밖에 안쓰니까 공간을 활성화 해주라는 요청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 공간을 커뮤니티로 만들어서 오픈 스페이스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평소에 쓰이지 않는 빈 홀을 작업공간으로 사용하고, 여러 이벤트가 열리는 공간으로 쓰는 거에요. 그래서 대관도 하고 프로그램이 돌아가게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거죠. 이 프로젝트도 아주 성공적으로 하면서 기업의 유휴 부동산이 잘 활용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성공적으로 운영된 덕에 재단의 공식 사업으로 승격되어 지금까지도 운영이 되고 있어요. 


저희한테도 좋은 경험이자 포트폴리오가 된 사업이었어요. 여러분도 혹시 나중에 사업을 생각하시고 있다면 저희처럼 위탁사업을 받아서 기획을 해보며 몸집을 키우는 것을 방법도 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많은 자본금을 가지고 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면 위탁 사업을 통해 기획 레퍼런스를 쌓는거죠. 안전하게 경험을 쌓고 안전하게 레퍼런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공간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자원이 되어줄 수 있는 공동체,
‘무중력지대 대방동' 기획
2500명 이상의 멤버십과 함께 한 '무중력지대 대방동' ©정수현 


공간 기획자로서 했던 세번째 프로젝트는 무중력 지대입니다. 이번에는 정부사업이죠. 이전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한 것들이 레퍼런스가 되어서 캐스팅이 되었어요. 이 사업 때문에 저희도 많이 클 수 있었는데, 무중력지대 대방동 1호점을 운영했거든요. 아 참고로 이 사업은 정부에서 연간 3~4억 나오는 사업으로, 지역이나 청년들이 사업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젝트예요. 


이 때는 공간 운영을 경험한 팀이 많지 않아서 1호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개념만 주어지고 설계, 내부 인테리어, 운영 방향 모두 저희가 만들어야 했어요. 그 때 어떤 걸 해야 의미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죠. 부동산을 할 때는 지역 분석이 중요한데, 그 당시 노량진에 사는 청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했더니, 이들에게는 ‘거실’이 없더라고요. 고시원 처럼 잠을 잘 ‘방’은 있는데 거실이 없다는 것에 착안해서 이들에게 거실을 만들어주는 컨셉으로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거실처럼 공부하고 일하고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여러 활동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일어날 수 있게끔 구성했어요. 그리고 이 공간에는 2,500명의 멤버들이 드나들며 하고 싶은 활동으로 공간을 채워나갔죠.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들, 쓰고 싶은 사람들은 멤버십 등록을 하고, 무료로 쓰게 했어요. 대신 멤버로 가입하고, 규칙을 지키게끔 했습니다. 많이 쓸 수록 많이 책임지는 구조로 만들었죠. 그래서 공간에 로컬 오너십을 가질 수 있게끔 설계했습니다. 이게 잘 돌아가니까 서울 여기저기에 무중력지대가 많이 생기기도 했고요. 불특정 다수의 2500명이 어떻게 서로의 자본이 되어줄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공간기획자에서 본격적인 사업가로서의 여정을 걷게 된 정수현님의 기획 이야기는 다음화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 3기는 아모레퍼시픽과 위워크 을지로점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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