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Aug 06. 2020

Hello, Sunshine

진짜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하게 된 이야기를 시작하며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


2년 전, 처음으로 냈던 책의 제목이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창업기를 책으로 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내가 아니라 인터뷰를 했던 여덟 명의 여성 창업가들이었다. 창업을 준비하고 있긴 했지만, 정말 창업을 하게 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던 시기에 자기만의 아이템으로 일터를 만든 여덟 명의 여성들을 만났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은 그냥 될 줄 알았던 때였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창업이라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터를 만들어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업을 해보니 정말 그랬다. 일단, 정말 '역경'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힘이 들고, 모르는 것이 거의 100%에 가깝기 때문에 매일이 배움이고 인사이트다. 얼마나 좋은 이야기의 재료인지. 역경을 이겨내고(아직 못 이겨냄), 성장(대체 언제까지)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기 때문이다. 자기를 대입하기도 좋고, 성장 과정이 주는 인사이트도 많고. 


N잡을 할 때 일 얘기를 쓰고, 또 이야기하면서 나는 꽤 기록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서도 '너는 망하면 망한 얘기로 전국 순회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따로 다짐하거나 계획을 세우진 않았지만 창업한 이야기도 기록하고, 기록을 공유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글을 하나도 못 쓰다니
내 이럴 줄은 몰랐지


하지만 '빌라선샤인을 시작합니다'라고 말하고 나서는 창업과 관련된 글은 한편도 쓰지 못했다. 한겨레에 기고를 하기도 하고, 빌라선샤인 뉴스레터 <디어 뉴먼>에 4주나 5주에 한 번 일하는 이야기를 쓰긴 했지만 일터를 만드는 과정에 집중한 글은 아니었다. 매체에 기고를 할 때도 '여성의 일'을 주제로 글을 썼다. 일 얘기나 회사에 관한 얘기는 하루가 끝나면 자기 전에 인스타그램을 열어서 몇 줄 적는 것이 전부. 도처에 좋은 재료가 있었지만 그걸 글로 엮어내기엔 시간이 없고,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글을 쓰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쓰기 전에 어떤 글을 쓸지, 왜 그 글을 써야하는지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또 시간을 쓴다는 일은 에너지를 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뜻 글을 쓰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있으면 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 고민이 끝나지 않은, 아직 만들어 지지 않은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의 어려움'이 진짜 이유가 아닐었을까. 창업을 하고 하루도 '아 개운하다'라는 느낌으로 퇴근을 한 적이 없다. 기쁜 일이나 뿌듯한 순간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성장시키는 아하 모먼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지만, 그만큼 주저 앉히는 현타가 오는 순간도 찾아오는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어떤 순간이나 사건, 생각을 정리해서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속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기록한다는 것은 이런 복합적이고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을 내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이 되는 것이고. 좀 더 근사하고, 다듬어지고, '이정도는 껌이죠, 뭐'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를, 이제는 과거가 된 역경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시선을 갖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고, 에너지가 없다는 아주 납득 가능한 말들로 글쓰기를 미뤄왔다.



내 이야기가 내가 갈 곳을 결정한다


빌라선샤인의 다섯 번째 시즌의 테마는 '기록 :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모닝 뉴먼스 클럽>의 첫 번째 스피커로 N잡을 하면서 했던 기록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기록을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록은 과거를 돌아보는 일도 되지만, 앞으로 내 일과 내 태도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는 얘기를 하면서 문득, 완벽한 것을 공유하고 싶은, 완벽한 것만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내 마음이 내게 희망이나 미래의 자리를 내어주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좌충우돌하는 내 경험을 모아서 글로 쓰는 과정에서 내 일에 N잡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 내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존재하는지 글로 정리하며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나와 회사가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글을 쓴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내일과 앞으로를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진짜 써본다. 매일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하는 이야기. 매일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기만 하는 창업가의 이야기. 함께 일하면서 왜 우리는 같이 일할 수 밖에 없는지 느끼는 팀선샤인으로서의 이야기. 그 속에서 만드는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고, 그걸 어떻게 더 크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2020년, 홍진아의 일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드디어,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