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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Jun 19. 2022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예능 피디가 되고 싶었던 한 회사원의 고찰

"이 회사에서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면접관은 잠깐 웃더니 옆 동료를 보며 답변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5분간의 짧은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2012년 일 년간 휴학을 마치고 온 막 학기에 취직 준비라는 것을 처음 시작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 학점도 3.5에 간신히 가까운 특별할 것 없는 구직자였기에 학교 취업지원센터 구직지원 상담 프로그램도 수강했고 취업설명회가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당시 구직자의 스펙보다 가능성을 본다는 취지로 짧은 면접을 통해 서류통과 패스권을 부여하는 채용설명회가 종종 있었고 방금 그 면접을 마치고 나온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창의성을 발휘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노래를 제법 부른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뮤지션으로서 삶을 영위할 자신은 없어 목표로 한 것이 피디였다. 현실적인 확률로 따져보면 뮤지션이 되는 게 더 확률이 높았을 텐데 당시에는 나의 길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 신촌 한겨레문화센터에 언론사 준비반에 들어갔다. 음악피디가 되고 싶다는 첫 수업에 예능 피디가 있음을 알았고 EBS 스페이스 공감이나 KBS 스케치북 같은 공중파 음악프로그램 피디 공채를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필기시험 한번 통과하지 못한 피디 지망생은 졸업을 앞두고 취준생이 되어 기업 공채를 기웃거리며 밥벌이를 찾고 있었다.


첫 직장도 현장면접을 덕분에 들어간 케이스다. 캠퍼스 리쿠르팅이라는 제도였는데 현장 접수처에 응시원서를 내면 3인 1조를 이뤄 면접을 보고 합격하면 전형을 이어가는 시스템이었다. 아름다운 가게 매장 봉사를 하며 현장에서 고객을 응대한 경험, 비영리 단체운영 경험 등 내가 가진 경험의 총집합체를 연결시켜 면접을 봤다. 넥타이 브랜드를 물어보고는 싸구려라는 면접관의 말에, 면접관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집 앞에 있는 귀사 백화점 매장에서 어머니가 사주신 것이다라며 답변했다. 당일 저녁 현장 합격자들을 모아놓고 식사자리에서 면접관이 일부러 그렇게 물어본 것이라며 마음에 두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깨달은 점은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아예 획기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형의 창의성은 없다. 다만 기존에 있는 아이디어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거나 변주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있다. 씨줄과 날줄을 엮어 직조물을 짜내듯이 이질적인 것을 연결시켜 이야기가 되게끔 만드는 능력은 면접을 보거나 글을 쓸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이폰을 만들어내는 스티브 잡스가 아닐지라도 맡은 일을 조금 더 수월하게 만드는 것도 충분히 창의적인 일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반복적인 업무도 있고 때로는 머리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존에 없던 것을 특출하게 만들기보다는 경험을 축적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며 이런 측면에서 충분히 창의적으로 업무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이런 요지의 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장도 익숙지 않은 취업준비생의 질문에 과장쯤 되어 보이는 사회 선배의 답변에 지금에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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