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장 빛나는 가족에게
작년 12월 29일 아이를 씻기고 정리하는데 막냇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태양이가 죽었다고 한다. 급격히 악화된 심장비대증으로 약을 먹고 있었고, 언젠가라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며칠 전 가족 모임에서 숨소리가 불편하긴 했지만 간식도 잘 먹고 반갑게 맞이해줬었는데. 아내에게 소식을 알리고 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얇은 천으로 덮인 태양이는 사지가 굳었고 눈을 뜨고 있었다. 온기가 아직 남아 있던 소중한 가족이 12년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태양이는 이모네서 달이와 함께 태어났다. 엄마는 별이인데 마르티즈 잡종견이라고 한다. 수놈이라 그런지 달이 보다는 확연히 몸집이 컸다. 생후 이주일이 지났을까 사촌과 함께 이모네 집에 놀러 갔는데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채 꼬물대던 것이 기억난다. 어떤 연유인지 강아지를 키우는 쪽으로 이야기가 돌아갔다. 집 근처 롯데마트에서 다른 강아지를 입양하려고 했었고 결국 태양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배냇 털도 자르지 않은 채 케이지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낑낑대던 첫 만남이 생각난다. 어디서 본건 있어서 따로 재우려고 했으나 밤새 울어대는 바람에 부모님 침대에서 쭉 잤다.
삼 형제만 있던 다소 삭막했던 집에 태양이는 활력소였다. 특히 예전에 강아지에 쫓겨본 기억이 있어 은연중에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나도 태양이는 예외였다. 새끼 때부터 봐서 그런지 거부감도 없었고 파란색 방울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뛰어다니는 게 참 신기하고 좋았다. 태양이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이 많아졌고 덕분에 한마디라도 더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기 키우는 것과 비슷했는데 레몬향이 나는 배변패드에 쉬를 가려 손뼉 쳤던 기억도 난다. 운동장에 나가면 사정없이 뛰곤 했는데 심장이 쿵쿵 뛰면서 숨을 할딱거렸다.
감정적으로 의지도 많이 했지만 작은 제약도 있었다. 집에 사람이 없으면 워낙 힘들어해서 불침번처럼 돌아가며 태양이 옆을 지켜야 했다. 어려서부터 혼자 자라서 그런지 산책 나가면 다른 개들에게 죽자 사자 달려들어서 애를 먹기도 했다. 무엇보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곁을 내달라고 앞발로 쳐서 귀찮기도 했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제약도 아닌 함께 있기에 기억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감정표현이 서투른 내게 태양이는 있는 그대로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였다. 종종 나는 벽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태양이를 만나고 더 누그러진 것 같다. 태양이를 사랑했던 마음이 본가에서 멀리 직장을 얻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조금씩 옅어지는게 항상 미안했다. 하지만 막상 마지막을 보자 참을 수 없는 뜨거움이 터져 나왔다. 그날 새벽 화장터에서 태양이를 보내줬다. 장마가 들이치려는 요즘 태양이가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