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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Jul 14. 2022

종이의 집

그 많던 종이는 어디로 갔나 

집은 튼튼해야 한다. 첫째 둘째 돼지도 엉성한 재료로 집을 지은 탓에 늑대에게 쫓길 수밖에 없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집이 주는 어감은 친숙함과 포근함도 있겠지만, 안전한 공간이라는 특성이 전제된다. 종이는 약하다. 동전처럼 부식이나 마모에 강하지도 않다. 그런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역시 종이, 돈이다.


종이의 집이라는 타이틀을 보았을 때 다소 생경했다. 보통 초가집, 양옥집 이렇게 가옥의 특성을 직관적으로 표현하지 무엇의 집이라고는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스페인어 의역체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종이 집도 아니고 종이의 집은 무엇인지 제목을 보고는 내용을 추측하기가 어려웠다. 돈을 만들어 내는 조폐국이 이야기의 배경임을 알았을 때 수긍이 갔다. 종이로 만들어진 집이 아니라 '종이를 만들어내는 집'에 대한 내용임을 말이다. 


초반부에 도쿄라는 캐릭터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데 그녀의 목적은 돈, 즉 개인적인 부가 아님을 암시한다. 자본주의에 상처를 입고 범죄자가 된 북한 여성은 왜 교수의 계획에 동참하는가. 돈을 훔치는 게 아니라 4조 원을 찍어내 가져가면 누구도 피해보지 않는다는 게 교수의 믿음이다. 도쿄는 이 신념을 기반으로 교수의 계획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실행한다.


정작 종이의 집에 살고 있는 건 우리다. 팬데믹을 극복하겠다며 무차별하게 찍어낸 종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돌고 돌아 인플레이션을 선물했다. 이제는 종이를 거둘 때라며 정부와 재정전문가들은 미디어에 연일 긴축 메시지를 보낸다. 정작 그 많은 종이는 내게 없는데 육천 원에 임박한 빅맥세트 가격은 누가 선물했을까. 오늘도 튼튼한 벽돌집을 가진 셋째 돼지는 빌린 벽돌 값을 치르기 위해 열심히 종이를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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