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읽고 가시는 여러분께
글이 오는 시간이 있다. 흔히 말하는 영감이 떠오르는 타이밍으로 이것저것 쓰거나 무엇인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차오른다. 메모장에 적어놓았던 글감이나 야외로 연결된 대곡역 플랫폼에서 여름 풀냄새와 바람이 살랑거리는 생경한 장면을 복기하면 내리 적고 싶은 욕구가 든다. 두 번째 취업준비를 하며 특히나 이런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는 사진을 찍고 시를 쓰고 이미지를 엮는 작업도 했다. 수입이 없으니 무엇이라도 만들어서 존재가치를 찾으려고 했는지 허세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브런치 첫 글*을 써냈다.
(* https://brunch.co.kr/@j2gt1010/1)
글을 쓰고 나면 양가감정이 든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내용이 있어 개인정보유출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에 약간의 불안감도 있다. 반면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볼거리가 넘치는 미디어 세상에서 기꺼이 내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공감 표시까지 해주시면 기분이 좋다. 나만의 대나무 숲에 알림이라는 초대장을 보내 모르는 분들과 담소를 나누는 느낌이랄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봉준호 감독 말처럼 나만이 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에 개인이 들어가는 건 필연적일 테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이 유일하게 시간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창작이다. 그중에서 글쓰기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살아남았다. 하다못해 전기가 끊어져 인터넷이 되지 않는 세상이 와도 세상이 종이책 위에 텍스트는 빛만 있다면 볼 수 있다. 작가와 대화까지는 아니라도 독자가 이 사람은 살아있었을 때 이런 말과 생각을 전해주고 싶었다고만 이해할 수 있어도 성공이다. 나는 여기 없더라도 그 당시에 내 시간을 전할 수 있는 건 흡사 타임캡슐과 비슷하다.
내게 온 글은 결국 누구에게 간다. 아니 가야만 한다. 머물기만 한 글은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다시 입겠다는 옷장 속 청바지와 같아서 종국에 기부 또는 리폼하거나 정말 독하게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올 때는 설레고 반갑지만 막상 마주하면 막막하고 절망할 때도 있지만 결국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글이 오는 시간을 기꺼이 기다린다. 지금 마주하는 당신에게 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