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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ght Aug 27. 2015

순하리와 콩나물국밥

달큰한 비릿함에 잔을 내려놓다


계단을 오르는 우리에겐 일단 이 밤을 길게 보낼 콩나물국밥과 술이 필요했다.




세종시 버스 티켓을 끊었다. 십년지기 고등학교 친구를 보러 표를 끊었다. 술을 제법 좋아하는 그가 퇴근 후 홈플러스로 픽업을 왔다. 주차 후 오피스텔 근처 카페에 들러 생맥주를 시켰다. 생맥주가 그립다며 친구는 홍대 펍원과 주엽 와바를 그리워했다. 원액과 탄산의 황금배합과 청결한 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알싸함이 떠올랐다.

번화가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고 2차를 갈 겸 버스를 탔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빠지는 탓에 밤 10시가 넘으면 대부분이 문을 닫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저 멀리 전주 콩나물국밥 간판이 보였다. 빌딩 한 곳을 밝히는 그 불빛이 유독 빛났다. 계단을 오르는 우리에겐 일단 이 밤을 길게 보낼 콩나물국밥과 술이 필요했다.

순하리를 시켰다. 인스타그램을 점령한 핫 아이템을 처음 봤다. 깍두기에 한 잔을 넘기자 달콤한 내음이 입 안에 퍼졌다. 웃으며 또 한 잔을 나눴다. 십분 뒤 콩나물국밥이 나왔다. 수란에 국물을 조금 부어 호로록 마시고, 은종지에 담긴 꼬릿 한 새우젓으로 간을 했다. 심심한 콩나물과 아릿한 마늘맛이 좋았다. 한 수저 후 순하리를 입에 털어 넣었다. 순간 어릴 적 과학실 알코올 램프마냥 비릿한 유자향이 솟구쳤다. 친구도 찡그리며 잔을 털었다. 삼분 전 짜릿했던 순하리의 신세계는 본래 쓴 소주도 달곰한 매화주도 아닌 비릿함만이 가득했다.

달큰한 유자향 혹은 콩나물 냄새인지 애초에 궁합이 안 맞는 둘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누구나 먹어봤다는 순하리니까 나도 뒤처질 수 없다는 오기를 가장한 호기심이 부른 참극일 수도 있다. 아님 덤덤한 콩나물국밥엔 쓴 오리지널 소주라는 '정도'를 알면서도, 타인의 욕망에 사로잡혀 순하리를 찾은 죗값일지도 모른다. 자몽, 블루베리, 석류 각종 과일 향 소주가 인기다. 그날의 비릿한 추억을 누군가는 또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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