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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06. 2024

Welcome to the Jungle

 어스름한 새벽부터 푸른 안갯속을 달렸습니다. 고릴라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른 시간부터 늦지 않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지요.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렸습니다. 잠깐 조는 사이에 조금씩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골길의 푸른 새벽은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와는 다른 정겨움이 있었습니다. 이른 시간부터 농기구를 메고 일을 나가는 사람들. 비탈길을 올라갈수록 반듯하게 정리된 논밭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나무를 베어내고 화전으로 땅을 일궈낸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조금씩 넓혀가는 중이었지요. 그 한적한 풍경을 즐기다 보니 고릴라가 살고 있는 브윈디 천연 국립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브윈디 천연 국립공원은 고릴라 보호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고릴라를 만날 수 있는 인원은 40명.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힘든 곳입니다. 게다가 고릴라에게 옮길 수 있는 감기나 전염병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예 트래킹 예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사람과 고릴라의 면역체계가 비슷한 데다가 고릴라를 지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보니 질병 관리가 철저할 수 밖에 없었지요. 고릴라 트래킹의 비용은 1인당 720달러였습니다.(2016년 기준, 헬퍼를 고용하는 팁 별도) 우리는 나무 지팡이를 하나씩 받은 후 총을 멘 레인저를 따라 산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평탄한 길을 걷다가, 정글도로 숲을 헤치며 내리막길에 들어섰습니다. 고릴라의 울음소리를 들은 레인저가 방향을 감지하고 길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전날 내린 비 때문에 미끄러워진 길을 몇 번이나 넘어지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때, 마침내 눈앞에 커다란 고릴라의 뒷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발길이 멈춘 곳에는 고릴라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입을 막고 작은 소리로 감탄을 하는 중에도 고릴라는 무심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지요. 고릴라와는 열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 이렇게 가까이서 야생 동물을 마주하는 상황은 경이로웠습니다.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지만 고릴라는 나뭇잎을 뜯는 데에만 열중했습니다. 종종 새끼 고릴라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지만 이내 어미 고릴라가 나타나 나무 뒤로 끌고 가버렸습니다. 가이드가 정글도로 고릴라를 가리고 있던 나뭇가지를 쳐내주는 덕분에 우리는 고릴라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불편했는지 결국 고릴라는 사람들을 피해 수풀 사이로 도망을 쳤습니다. 레인저는 다시 수풀을 뚫고 길을 만들어 주었지요. 그렇게 쫓고 쫓기는 고릴라와의 술래잡기가 한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사나운 눈빛과는 다르게 고릴라는 순한 동물이었다. 맹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포획당했던 걸까요. 잠깐 스친 고릴라의 눈에서 그동안 인간에게 당한 설움이 느껴졌습니다. 고릴라와의 만남이 끝나고 다시 걸어서 숲길을 되돌아 나왔습니다. 나무 지팡이를 반납하고 레인저와 헬퍼들에게 팁을 지불한 후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차량에 올랐습니다. 출발을 하려는데 레인저 한 명이 쫓아와서는 팁이 모자라다며 돈을 더 요구했습니다. 길을 막고 서있는 레인저 때문에 우리는 결국 돈을 더 줄 수밖에 없었지요. 그 지역에서 레인저가 갖고 있는 권력은 막강했습니다. 돈을 더 받고 나서야 레인저는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욕심이 가득했던 그 미소는 부뇨니 호수로 돌아가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습니다. 고릴라를 찾으러 갔다가 만난 장면들은 사회가 갖고 있는 이면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레인저와 헬퍼의 갑을 관계. 인구 증가로 인한 야생동물 서식지의 파괴. 우리 주변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것들. 그래서 여전히 쉽게 바뀌지 못하고 있는 것들. 우간다에서의 여정은 지구에서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숙제를 던져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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