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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06. 2024

그저 미안하다는 말

 탄자니아를 여행하던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트럭에 기름을 넣기 위해서 잠시 주유소에 정차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이들이 하나, 둘 트럭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중에는 이제 막 걸음을 뗀 듯 아장아장 걷는 아기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차창을 두들기며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기 시작했습니다. 캔이나 빈 병도 괜찮으니 달라던 아이들의 외침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그 순간, 마음이 급해진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었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아이들로 인해 트럭 안은 분주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뭐라도 하나 나눠줄 게 없는지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지요. 누군가는 창밖으로 바나나를 건넸고, 다른 누군가는 동전과 지폐를 꺼냈습니다. 뙤약볕 아래에서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안쓰러워 물이 든 병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현지 가이드는 모두에게 창문을 닫아 달라고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조심스레 창문을 닫았습니다. 트럭 주변으로 아이들이 점점 몰려들고 있었지만 가이드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지금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준다면 당장의 굶주림은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저 아이들의 미래는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구걸하는 행위를 받아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 아이들은 아프리카의 미래가 될 아이들입니다.”


 가이드의 이야기가 끝나자 트럭 안은 숙연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다시 창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려던 작은 선행이 아이들의 미래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트럭 안을 바라보던 아이들. 그 눈을 마주 보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트럭에 주유가 끝나고 시동을 거는 순간,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도망치듯 주유소를 빠져나오는 동안 트럭 안에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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