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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07. 2024

Save The Queen

 지프를 타고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을 달리던 중이었다. 운 좋게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사자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사자 무리는 수컷 사자로만 이루어진 '컬리션'과 우두머리 수컷 사자가 여러 마리의 암컷 사자와 새끼 사자를 거느리는 '프라이드'로 나뉘는데 우리가 만났던 무리는 '프라이드'였다. 여러 대의 지프가 사자 무리가 쉬고 있는 나무 주위로 몰려들자 몇몇의 암컷 사자들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중 암컷 사자 한 마리가 지프 차량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사람들의 방문이 익숙한듯한 암사자는 지프 차량 앞까지 걸어왔다. 목에는 반려동물에게나 있을만한 목줄이 매어 있었다. 목줄에는 위치 추적기와 암사자의 맥박과 체온을 실시간으로 체크해 주는 장치가 들어있다고 가이드가 설명을 했다.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야생동물을 촬영하는 동안 놀라웠던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었다. 최상위 포식자인 사자 역시 멸종 위기종이라는 현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사자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경악스러웠던 것은 트로피 헌팅이었다. 트로피 헌팅이란 현지 가이드에게 금액을 지불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것인데, 그 목적이 단순히 개인의 오락을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학살과 다를 게 없었다. 참가자들은 코끼리나 하마, 사자 등의 야생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한 마리당 수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한다. 그들은 여러 대의 지프를 나눠 타고, 국립공원 구역밖으로 야생동물을 몰아서 사냥을 해왔다. 본인들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합법적으로 사냥을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사냥한 동물의 사체 앞에서 자랑삼아 인증샷을 찍어 SNS에 업로드를 하는 걸 보면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렇게 사냥한 동물을 박제로 만드는 것이 그들에게는 일종의 트로피가 되면서 트로피 헌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런 행위가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트로피 헌터들은 수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아프리카 몇몇의 나라에서는 여전히 트로피 헌팅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현실은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야생동물의 사냥을 오히려 장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야생동물을 죽이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목줄은 이러한 인간들로부터 건강한 암컷 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개체수가 줄고 있는 사자들을 지키기 위해 국립공원에서 마련한 최후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최악의 경우, 수컷 사자가 멸종당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건강한 암컷 사자만 있다면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인공 수정으로 새끼를 낳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야생동물의 생태계를 등한시하다 보니 최근에는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마지막으로 생존해 있던 북부 흰코뿔소의 수컷이 2018년에 생을 달리하게 되면서 현재 지구상에 북부 흰코뿔소는 암컷 두 마리만 남게 되었다. 케냐 정부에서는 심폐소생술을 하듯 남아있는 암컷 북부 흰코뿔소 두 마리에게 인공수정을 시도했지만 실패를 거듭했고, 그중 한 마리는 더 이상 생식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사실상 번식이 불가능해진 북부 흰 코뿔소는 멸종된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인간의 오만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였다. 소중한 것일수록 사라지기 전에 지켜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우리는 은연중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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