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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08. 2024

태초의 아름다움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일을 하고, 잠을 잡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24시간의 일상. 그 일상 중 태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것이 있다면 일출과 일몰일 것입니다. 지구가 생겨나고,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밤과 낮을 만들어내는 현상. 사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이런 현상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말이죠. 출근 전에는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이불을 끌어와 덮었고, 석양이 지고 달이 뜬 퇴근길에는 가로등 불빛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년 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바다인 줄 알았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잔잔히 넘실거리던 물결. 하지만 아프리카 내륙을 여행하고 있는데 바다가 보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트럭이 멈춘 곳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습니다. 영토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적당히 푸르고, 적당히 투명한 호수. 사람들은 그 나라의 이름을 따서 ‘말라위’ 호수라고 불렀습니다. 바다처럼 수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는 이 호수는 북동쪽으로 ‘탄자니아’, 남동쪽으로는 ‘모잠비크’까지 넓게 뻗어 있었지요. 하지만 ‘말라위’가 차지한 호수의 영역이 가장 넓기 때문이었는지 ‘말라위’의 이름을 붙인 것 같았습니다. 이 커다란 호수의 존재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환경오염과 가뭄으로 사막화가 일어나고 있는 아프리카 내륙에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연과의 만남은 그 존재만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맞춰놓고 잠이 들었습니다. 지난밤 가이드인 ‘알렉스’가 말라위 호수의 일출이 정말 멋지다고 귀띔을 해주었기 때문이지요. 그 이야기 때문이었을까요. 다음날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눈이 떠진 김에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를 들고 호숫가로 나갔습니다. 사실 '일출이 멋져봐야 얼마나 멋지겠어?'하는 생각을 하면서 텐트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새벽. 아프리카였지만 호숫가 주변이라 그런지 기온은 조금 쌀쌀했습니다. 말라위 호수에는 그 시간부터 물고기를 잡기 위해 나와 있는 현지인들이 있었습니다. 일출을 기다리며 카메라 노출값을 조정하고 있는데, 하늘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부터였는지 모를 붉은 빛은 푸른빛을 밀어냈고, 그 붉은 빛은 다시 연분홍빛에 밀려 나갔습니다.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하늘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지구의 반을 에워싸고 있는 빛이 넓게 퍼져 나가면서 하늘은 이내 그 특유의 색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늘색으로 말이지요. 그렇게 짧고도 강렬한 말라위 호수의 일출이 막을 내렸습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말라위 호수의 일출입니다. 야생의 사자가 보내는 강렬한 눈빛도, 지근거리에서 만난 고릴라의 카리스마도,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새끼 하마의 움직임도 한 편의 오페라 같았던 색채의 향연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아무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말라위 호수의 일출이 더 인상적이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본 영화가 인생 영화로 등극하거나, 잠깐 스치며 들었던 멜로디를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경우처럼 말이죠. 그 이후로 호수가 있는 나라에 여행을 가게 되면 새벽마다 일출을 찍으러 나갑니다. 말라위에서 감동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죠. 하지만 아직까지 말라위 호수보다 아름다운 일출을 만나진 못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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