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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09. 2024

Dead Vlei

 발이 움푹움푹 들어가는 모래 위를 걸어갔습니다. 평평한 바닥이 시작되는 곳부터 고목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분지 형태의 공터 주변으로는 콜로세움의 벽처럼 둘러진 사구가 태양으로부터 받은 열기를 중앙으로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데드 블레이는 TV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넓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뜨거웠습니다. 가이드는 맨발로 다니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꼭 신발을 신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데드 블레이 위로 띄엄띄엄 서있던 나무들은 죽어서도 900년이라는 세월 동안 꼿꼿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장면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연의 신비를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구에 둘러싸여 앙상한 몸뚱이만 남아있던 나무들은 데드 블레이의 이름 그대로 저에게 죽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싹을 틔우고 꽃잎을 피워낸 시간보다 수분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이 더 오래되었을 나무의 모습은 왠지 측은하게 느껴졌습니다. 한때는 늪이었던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안개가 머금은 물기로 목을 축이며 살았을 텐데, 주변으로 사구가 높게 쌓이면서부터 늪은 시나브로 마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부족하게 된 수분은 이내 갈증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그늘 한 점 없는 곳에 꼼짝없이 서서 오롯이 햇볕을 받아내다 보니 몸 안에 있던 수분마저 금세 메말라갔겠지요. 지금은 미라처럼 바짝 굳어버린 몸으로 사막 한가운데 서있습니다. 그 갈증을 누가 알까요.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고는 가만히 나무를 쓰다듬었습니다. 숯처럼 바짝 마른 나뭇가지는 오랜 세월을 견뎌 낸 만큼 단단했습니다.

 데드 블레이를 걸어 나오면서 수많은 여행자들을 스쳐 지나왔습니다. 이제 막 데드 블레이에 도착해 감탄을 하며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꺼내던 사람들. 불과 한 시간 전,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저의 모습도 그들과 다를 것 없었지요. 그 경이로운 장면을 마주했는데 어찌 카메라를 꺼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900년을 넘도록 한결같은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나무들은 산 사람들을 계속해서 데드 블레이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나 아직 여기에 있어요.’, ‘모습은 변했지만, 아직 건재하답니다.’라며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만약 분지 주변으로 사구가 쌓이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막 속에 피어있는 오아시스처럼 그 나무들이 물기를 흠뻑 머금은 채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랬다면 저도 나무들을 보며 한 번쯤은 웃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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