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태영 Jan 12. 2024

매너가 만드는 것

 평소 랜드마크나 관광 명소보다는 발길 닿는 데로 걸으며 마주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편입니다. 이런 사진 취향은 해외여행을 가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포트루이스의 시내를 걸으며 사진을 찍던 중이었지요. 거리 위의 낯선 풍경에 얼마나 심취했었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여기가 어딘지, 숙소로 가는 방향은 어느 쪽인지, 버스는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서 있었습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거리였지요. ‘이러다 숙소로 못 돌아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자 겁부터 났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큰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제일 먼저 마주친 아주머니에게 알비온으로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야 하는지 영어로 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질문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아주머니. 제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신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제 영어 발음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 숙소 주인분께서 모리셔스는 프랑스 식민지 지배를 오래 받았던 탓에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게다가 인구의 60% 이상이 인도계 사람이어서 프랑스어 다음으로는 힌디어를 많이 사용하며, 영어는 여행자를 상대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거나 정규 교육으로 영어를 공부한 젊은 세대들이 사용한다는 것 또한 말이지요. 휴양지로 유명한 모리셔스에서 영어가 안 통할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분께 길을 여쭤봐야 하나.’라고 고민을 하던 중에 아주머니께서 지나가던 다른 아주머니를 붙잡고 무언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지 물어보시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아주머니께서도 영어를 하지 못하는 분이셨지요.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 아주머니께서도 가던 길을 멈추시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기 시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길을 잃은 저보다 더 다급하게 말이죠. 두 분의 간절함 덕분이었는지 다행스럽게도 세 번째로 멈춰 선 여성분께서 영어를 할 줄 아셨고, 저에게 버스 타는 위치를 알려주셨습니다. 먼저 길을 여쭤봤던 두 분은 길안내가 끝날 때까지 제 옆에 서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혹시나 이 여성분께서 길을 잘 모르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말이죠. 제가 여성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야 두 분은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쿨하게 손인사만 하고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사실 두 분도 각자의 일로 바쁘셨던 것이었지요.

 방향치인 데다가 영어도 서투른 탓에 해외여행을 가면, 종종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소매치기를 잡았을 때나, 홍콩에서 카페에 지갑을 두고 나왔을 때, 그리고 지금처럼 모리셔스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혜성처럼 나타나 뚝딱하고 그 상황을 해결해 주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가끔 길을 묻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면 저도 최대한 친절하게 안내를 하는 편입니다. 제가 여행지에서 받았던 배려를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서 말이죠.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현지인의 따듯한 배려는 평생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 현지인들 덕분에 다시 또 그 나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매너가 만드는 건 어쩌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언젠가 다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