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같은 걱정입니다

로마의 밤이 뭔가요?

by 조승현

도착했다. 무려 로마에. 무려 나 홀로 여행객으로. 멋있고, 매너 좋고, 한약보다 쓴 에스프레소를 달콤하게 머금으며 로맨스를 논할 것 같은 사람들의 도시에 내가, 여행객으로 도착한 것이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수려한 도시와 달리 나는 쫄보가 따로 없었다. 주변에서 쏟아진 조언 때문이었다. “로마에서 백팩을 메고 다니면 ‘제 물건을 공짜로 나누어 드립니다!’ 하는 거랑 똑같대” 그 말에 나는 옆으로 매는 가방을 알처럼 품고 다녔다.

“알지? 해지고 돌아다니면, '여기 돈 많은 여행객이 여러분께 납치할 기회를 드려요!' 하는 꼴인 거” 덕분에 신데렐라도 아니면서 12시 아니 6시만 되면 꼬박꼬박 숙소로 기어들어왔습니다. 잘 몰라서 무서웠고, 잘 몰라서 겁먹었습니다. 첫 여행이었다고요. 로마의 밤이라면... 숙소에서 바라본 천장 같은 건가요?


잘 모르는 것이 주는 공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언제나 있었다. 우리에게는 검은 고양이로 더 친숙하지만, 로마의 황제 네로도 그랬다. 세상 위에 군림한 그도 덜덜 떨며 바라본 대상이 있었다. 혜성이다. 언젠가 천문대를 찾은 아이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옛날엔 혜성을 엄청 무서워했어"

"네? 왜요? 혜성은 그냥 더러운 얼음 덩어리잖아요"

"그렇지. 그렇지만 그걸 몰랐던 옛날 사람들은 무서울 수밖에 없었어. 난데없이 튀어나와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니 마귀로 착각한 거지. 심지어 로마의 황제 네로는 혜성이 나타날 때마다 대신들을 모아 놓고 죽였어"

"혜성이 나타났는데 왜 사람을 죽여요?"

"잘 모르는 것일수록 더 공포스럽잖아. 갑자기 정전이 나면 무서운 것처럼!"


(왼쪽)지구에서 바라본 혜성과 실제 혜성의 모습(오른쪽)

네로 황제는 혜성이 나타날 때마다 대신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신하들 중 반역자가 나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 마귀가 아니라 고작 더러운 얼음 덩어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대신들은 얼마나 허무할까.

비슷한 일은 중국에서도 있었다. 일식을 두려워한 중국의 황제가 일식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천문학자를 사형시켰다. 개기 일식이라 하면 달이 태양을 가렸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그저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난 것이다. 고작 대박 큰 그림자 때문에 절명한 사람들. 잘 몰라서 죽은 사람들이 있다. 진실은 무겁고 허튼 추축은 날카롭다.


로마를 떠나 베니스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이탈리아의 밤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을. 물에 잠긴 도시는 빛으로 흔들거렸다. 노란 조명이 바다 앞을 채웠다. 산마르코 광장의 악사들은 해가 지고 나서야 연주를 시작했다. 음악에 따라 전 세계 여행자들이 차별 없이 춤을 췄다. 내 마음도 춤을 췄다.

악기가 많아서, 사람이 많아서, 맑은 눈빛이 환해서 밤이 환했다. 광장 옆으로 나있는 항구에 털썩 앉았다. 그 빛들을 와인과 함께 잔에 담았다. 푸른 바다가 넘실 발 앞에 쏟아질 때마다 행복이 한 줌 더 다가와 발을 적혔다. 이게 밤이구나. 이탈리아의, 유럽의 밤이구나. 로마의 밤은 어디에 있었을까. 아쉬워하며 가슴을 탕탕 쳤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로마의 밤이 너무 아쉬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걱정이 나의 여행을, 나의 과거를 갉아먹고 있었다.


잘 모르는 것은 두렵다. 이 사람과 지금은 행복한데 늙어가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회사를 옮겼다가 괜히 더 힘들어 지진 않을까. 김치찌개에 소시지를 넣으면 망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답은 늘 껍질 안에 담겨 있기에 깨보기 전 까지는 알 수 없다. 삶은 계란인 줄 알았는데 생계란일 때도 있고, 병아리가 태어날는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오리알일 수도 있고.


티베트 속담에 그런 말이 있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네. 물론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걱정은 골리앗이고 긍정은 다윗인 것을. 체급 차이가 자꾸 나서 자꾸 진다. 걱정이 걱정을 물고 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고작 혜성 같은 걱정이야'라고. 천문학의 길로 가면 밥은 먹고살 수 있을까? 싶었던 청년이 월급날이면 소갈비도 용기 내 사 먹을 수 있게 되었지 않냐고.(물론 용기를 많이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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