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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l 01. 2022

예쁜 건 왜 이렇게 비쌀까?

 ‘예쁜 건 왜 이렇게 비쌀까?’


나는 우아하지만 더럽게 비싼 애플 컴퓨터를 쳐다보다 토닥토닥 자판을 두드렸다.

 ‘감성은 돈을 지불했을 때 가장 빨리 다가오니까’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스타벅스를 손에 들고 걸을 때 더 감상적이니까, 피 같은 월급을 쏟아 떠난 파리에서는 길거리의 쓰레기통에서도 낭만이 피어나니까, 지불을 통해서 감성을 사는 거다. 그 순간의 가치를 내가 결정한다. 

 그런 터무니없는 핑계와 감각적인 낭비 정신으로 어제 유럽행 비행기를 끊었다. 팬데믹 이후 첫 여행 계획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2주간 렌터카도 예약을 해버렸다. 50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카드로 긁으며 마음으로 울었다. 무슨 감성 값이 이리도 비싸단 말인가. 텅장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텅텅텅텅텅텅장 정도는 되어야 내 잔고를 설명할 수 있다. 이러다간 은행에서 전화가 올런 지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계좌는 완전히 비었는데, 필요 없으시다면 삭제해드릴까요?'

 

 사실 절약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두 명이서 유럽 내 렌터카 여행을 하는 것은 사치다. 적당히 열차와 버스를 섞어타며 유럽 여행을 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 특히 유럽 내 비행기는 제주도 항공권 엉덩이를 걷어찰 만큼  싸다. 짐만 없다면 스위스에서 스페인까지도, 프랑스에서 이탈리아까지도 단 돈 2만 원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글을 쓰려면 감성이 넘쳐야 한다'며 아이패드를 최고 사양으로 사고, '딱딱한 코딩을 하려면 우아함이 절실해!'라며 맥북을 구매한 인간이다. 노란 불빛으로 꾸며진 펍이면 나방이 불빛을 만난 듯 달려들어 감미로운 풍경에 지갑을 털리고 만다. 과연 돈보단 낭만인 것이다. 국경을 통과하는 유럽의 감성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겠다는 욕망 하나로 나의 계좌는 다시 한번 짓이겨졌다. 


 아이들과 밤하늘의 별빛을 세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초롱 거리는 별들이 모두 저마다의 색으로 반짝이며 제 주변의 어두움을 흔들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 시작되어 어떤 우주까지 나아갈지 모르는 빛이었다. 몇몇 작은 별들은 어두움을 덮고 눈만 빼꼼 내밀어 지구를 구경하고 있었다. 망원경 너머론 수 십 씩 모여 찬란함을 뽐내는 녀석들도 있었다. 마치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있겠냐는 듯, 태양계의 수 백 배 규모로 존재를 과시했다. 

 그러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듯 별 하나가 긴 선을 그으며 떨어졌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별똥별이라고 부르는 작은 모래 알갱이 었다.

 별이 태어나는 곳인 성운도, 별이 수천개 모여있는 성단도, 별이 수천억 개 군집한 은하도 별똥별 앞에서는 그저 마른 자갈이 된다. 빛을 잃고 누군가의 눈에서 띄지 않는다. 밤하늘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배운다. 천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꼭 마음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게 되는 데는 이유도 중요하고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저 이뻐서일 때가 더욱 강력하다. 빛을 내며 떨어지는 모래 알갱이가 수억 배 더 큰 별들보다 환영받는 것처럼.   


 통장에 0을 탈탈 비우고 대신 감성 채워 떠나려는 자동차 여행은 아직 시작도 않았다. 하지만 여행의 반은 예약이라 하지 않았던가. 피눈물을 흘리며 예약한 렌터카는 일종의 '낭만 무기'가 되어 나를 꿀처럼 흐르는 감성의 세계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날이 오면 오늘의 나를 끄집어내어서 잔뜩 칭찬해 마지않을 것이다.

 역시 질러놓고 쓰는 핑계 글이 제일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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