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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Feb 08. 2023

모태 솔로와 크레이터

“동호야 넌 연애 안 하냐?”

“안 하냐고 묻기 전에 소개는 한 번 시켜주고 말할래?”

“미안… 나 왕따야”

“왜 내가 여자 소개 해달라고 하면 다 왕따가 되냐…”


 나의 대학 친구 동호는 그 유명한 모태 솔로이다. 모태 솔로라는 말은 누군가를 기죽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게 동호는 아니다. 페라리를 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페라리를 사지 못한 게 불편하지 않듯이 동호도 그렇다. 커플이 되지 못해 슬퍼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모태솔로이든, 호빗쌤(동호의 천문대 닉네임) 이든 그저 아이들을 웃기는 도구로 쓰는 멋진 강사일 뿐이다.

 그래도 ‘언젠가 동호도 여자친구가 생기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왔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동호 역시 나처럼 천문대에 일하기 시작해버렸다. 여기서 ‘해버렸다’고 말하는 이유는 밤에 일하는 탓에 보통 직업보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훨씬 더 힘든 직업의 전선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동호는 뚝심이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제 짝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맹렬하게 목적지를 향해가는 스포츠카처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버스 정류장에 서서 언젠간 버스가 오겠지 하며 하릴없이 기다리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인연을 찾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게 취미인 동호는 사진 동호회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동호에겐 멋진 사진만 남았다. 학원도 다녔다. 훌륭한 지식만 남았다. 간단한 소모임에선 다양한 잡지식을 쌓았고, 소개팅에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뱃살만 두둑이 챙겼다. 모든 것이 다 여자친구 만들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지만, 여자친구가 생길 뻔한 적은 전혀 없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우리나라는 애인이 없으면 위로받는 이상한 사회라고. 나는 동호를 위로하고 싶지도 않고, 위로할만한 형편도 못된다. 동호 역시 연애를 집 어딘가에 처박혀있는 향초처럼 여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오히려 연애에 목매는 사람과는 별개로 항상 행복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실한 청년이다. 그래도 나와 동호는 함께 궁금하다. 그의 여자친구는 어디 있을까?



“공룡 멸종은 소행성이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 까지도 과학자들은 연신 싸워대고 있었다. 공룡 멸종의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폭발적이고도 거대한 연쇄 화산 폭발이 대멸종을 야기했다는 것이 주류 의견이었다. 하지만 과학자 알바레즈는 공룡이 우주를 떠다니는 커다란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며 멸종했다고 주장했다. 공룡의 대멸종이 일어난 지층에서 엄청난 양의 이리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리듐은 지구에는 극소량만 존재하지만 태양계를 떠도는 소행성에 유독 많은 물질이다.


 알바레즈는 발견된 이리듐의 양으로 지구에 충돌한 소행성의 크기를 추정했다. 계산된 소행성의 크기는 10km에 달했다. 하지만 지구 크기에 비하면 동전만 한 소행성이었다. 사람들은 지구 크기의 1/1200에 불과한 소행성의 충돌 한방으로 전 지구의 공룡이 멸종했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정도 크기로는 뉴욕과 서울에 존재하는 공룡을 모두 전멸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크레이터가 발견되지 않았는 것이 문제였다. 왜, 흙바닥을 한 번 걷어차도 땅이 움푹 파이지 않는가. 거대한 소행성 충돌이 있었다면 아마도 커다란 운석 구덩이, 즉 크레이터가 생겼을 것이다. 지름 10km의 소행성이라면 지구에 200km 직경의 크레이터를 만들고도 남았다. 이 정도면 양 끝이 서울에서 강릉 거리정도 되는 초 거대 크레이터다. 하지만 그 정도의 거대한 크레이터는 발견되지 않았다.

 어느 겨울날, 전날 만들어둔 눈사람이 박살 났다고 생각해 보자. 산산 조각난 눈사람을 보면 분명 누군가 와서 주먹질을 해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눈사람 주변엔 그 어떤 발자국도 없다. 그저 새하얗고 평평한 눈밭 안에서 눈사람만 덩그러니 조각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강렬한 햇빛이 하필 눈사람에게만 조준되었다거나, 눈 사람이 혹독한 야외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파괴했다거나…


 하지만 범인을 잡아내는 형사는 ‘어딘가에는 증거가 반드시 있다’고 믿으며 끝까지 물고 놓지 않는 진돗개 같은 형사다. 과학도 그렇다. 결국 일을 내는 이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크레이터를 발견했습니다!”


 1991년 겨울이었다. 지구물리학자였던 앨런 힐데브랜드는 멕시코 연안, 칙술루브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180km에 달하는 크레이터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크레이터가 만들어진 시기와 크기, 성분 까지도 모두 기대했던 바와 일치했다. 공룡과 더불어 당시 모든 지구 생명체의 70%를 멸종시킨 소행성의 발자국이 사실 멕시코 바닷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알바레즈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바닷속에 숨겨져 있었기에 쉽게 발견될 수 없었음을, 그토록 커다라고 파괴적인 크레이터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조명받지 못했음을. 공룡 멸종이 소행성 때문이라는 논문이 발표된 지 10년도 더 지나서야 비로소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어느덧 동호는 천문대의 팀장이 되었다. 멋진 강사로서도, 주변을 챙기는 리더로서도 인정받은 결과다.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동호지만 그는 여전히 기다린다. 어디선가 이 즐거움을 함께 나눌 사람이 나타나기를.

 나는 확신한다. 동호의 여자친구가 공룡보단 크레이터에 가까워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면 분명 나타날 것이다. 칙술루브 바닷속에 잠들어있던 크레이터처럼 우연한 순간에, 가벼운 기회에 동호와 마주칠 것이다. 운명처럼.

 그러면 여자친구 덕분에 방긋 웃는 동호의 얼굴을 나도 생에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실체와 기다림이 있다면 결국은 만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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