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명왕성이 사라졌대요!”
천문대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종종 명왕성의 행방불명설을 제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알파벳 노래처럼 외치던 부모 세대와 달리 ‘수금지화목토천해’로 싹둑 잘려버린 주문을 외우자니 적잖이 의문스러웠을 것이다. 도대체 왜 명왕성은 행성 주문에서 빠진 것일까. 명왕성은 정말로 사라진 것일까?
사실 명왕성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 그저 저 멀리 지구에서 명왕성을 구경하는 인간들이 멋대로 행성이라는 분류에 끼워 넣었다 빼버렸을 뿐이다.
명왕성은 미국의 천문학자들에게는 애잔한 존재다. 명왕성이 발견되기 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행성은 유럽의 천문학자들이 발견했다. 음악보다 천문학에 더 재능이 있었던 작곡가 겸 천문학자 허셜은 1781년에 망원경으로 천왕성을 발견했다. 그 기운을 받은 것일까. 허셜과 마찬가지로 독일 태생인 천문학자 갈레는 1846년에 해왕성을 발견했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근대 천문학 지식은 유럽 천문학자들에 의해 정립됐다. 당시 인간의 우주 지식은 유럽에서 발현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던 1930년 미국의 천문학자 톰보가, 그것도 가장 멀고 희미한 9번째 행성인 명왕성을 발견했다. 미국인들에게 명왕성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보다 무려 40배나 떨어진 행성을 발견했으니까 말이다. 이는 미국의 우주 과학 기술 발전을 증명하기에도 충분했다. 덕분에 명왕성은 미국인들에게 매우 큰 사랑을 받았다. 오죽하면 디즈니가 명왕성을 캐릭터 이름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명왕성의 발견은 많은 불편함도 만들었다. 새로운 행성을 발견한 것은 분명 위대한 업적이지만 기존에 생각해 오던 행성의 특징들과 명왕성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일단은 지나치게 작았다. 명왕성의 지름은 약 2,400km로, 지름이 3,500km에 이르는 달보다도 작다. 고작 러시아의 면적과 비슷한 크기다. 게다가 통상적으로 태양계 안쪽에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과 같은 암석형 행성들이 위치하고 바깥쪽에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의 거대 가스 행성이 있다고 여겨졌는데, 작고 암석형 행성인 명왕성은 이 간단한 규칙마저도 깨버렸다.
명왕성이 지니고 있는 이단성은 가랑비가 옷을 적시듯 천문학자들에게 퍼졌다. 그러던 중 명왕성을 가장 큰 위기로 몰아넣을 일이 벌어졌다. 명왕성과 비슷한 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해왕성 바깥쪽에는 차갑고 작은 천체들이 가득했고 천천히 태양 주변을 돌고 있었다. 그 천체들의 집합을 카이퍼대라고 부른다. 그곳에서 명왕성과 비슷한 크기의 천체들이 우후죽순 발견됐다. 지나고 보니 명왕성은 비교적 밝았던 덕분에 카이퍼대의 천체 중 가장 먼저 발견된 것에 불과했다. 그런 천체들을 모두 행성으로 삼자면 언젠가 태양계의 행성은 2,000개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2006년 국제천문연맹 (IAU: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은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놓고 표결하기에 이르렀다.
명왕성의 행성 지위 논란에서 가장 크게 논의된 것은 작은 크기도, 상당히 찌그러져 태양을 돌고 있는 명왕성의 궤도도 아니었다. 명왕성이 거느리고 있는 위성들 때문이었다. 지구에게는 달이라는 위성이 있는 것처럼 명왕성에게도 위성이 있다. 그것도 무려 5개. 크기는 지구의 1/5도 안 되는 명왕성이 위성은 5배나 많이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중 가장 커다란 위성인 카론 지름은 1,200km에 달했다. 이는 명왕성 크기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인데, 이 정도 차이면 태양계에서는 도토리 키재기로 본다. 행성이란 녀석이 위성과 별 차이가 없던 것이다.
심지어 멀리서 명왕성과 카론을 보고 있자면 누가 누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구는 달보다 확실히 중력이 강하기 때문에 달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명왕성과 카론은 무게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돌고 있다. 마치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고 도는 것처럼 말이다. 위성을 터프하게 리드하지 못하는 명왕성의 연약함을 약점 삼아 천문학자들은 결국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박탈시켰다. 더불어 이때 만들어진 행성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1. 태양 주변을 공전해야 한다.
2. 둥근 모양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무거워야 한다.
3. 자신의 궤도에서 주도적이어야 한다.
놀랍게도 명왕성의 행성 지위 논란이 있기 전까지 행성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한 번도 내려진 적이 없었다. 마치 인간이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듯 천체들 역시 그럴듯해 보이는 분류에 관습적으로 넣어왔다. 하지만 명왕성 논란으로 인해 정확한 행성 정의가 정립됐고, 1번과 2번은 들어맞았지만 3번 조건은 만족시키지 못한 명왕성이 행성 지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명왕성을 보며 수천 년을 이어온 과학의 역사도 때론 빈틈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 가운데 희생당한 명왕성의 애잔한 운명을 애도한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고, 큰 이별을 겪은 후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처럼 과학도 논란 뒤에 더 탄탄해진다. 명왕성 논란이 오히려 천문학적 분류를 더 섬세하게 만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논란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덕분에 명왕성은 평범한 9번째 행성에서 유일하게 ‘과거에 행성이었던 천체’가 됐고, BTS의 노래 제목 <134340 (PLUTO)>이 될 만큼 특별대우도 받고 있다. 더 유명해지고 더 사랑받고 있다. 사실 명왕성은 내심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본 글은 성신여자대학교 학보사 학술면에 동시 게재중입니다.
(http://hakbo.sungshin.ac.kr/news/articleView.html?idxno=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