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한국의 우주전파센터가 지자기교란 경보 G5를 발령했다. 이는 태양에서 발생한 강력한 폭발 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태양에서 방출된 고에너지 입자들이 지구의 자기장에 도달해 교란을 일으키면, 이를 지자기폭풍이라고 부른다.
지자기폭풍이 발생하면, 지구의 고위도 지역에서는 대기 상층부의 입자들이 태양에서 방출된 고에너지 입자들과 충돌하여 형형색색의 빛을 발산하게 된다. 이를 오로라라고 한다. 따라서 G5 경보는 곧 전 세계적으로 오로라 관측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나는 급하게 오로라 지수를 확인했다. KP지수라고 불리는 오로라 지수는 1부터 9까지 있으며, 숫자가 클수록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높다. 오로라 관측지로 유명한 캐나다 옐로나이프의 경우 KP지수가 3만 되어도 오로라를 어렵지 않게 관측할 수 있다. 그 KP지수가 9였다. 살면서 처음 보는 숫자였다. 이는 오로라 폭풍이 전 세계에 몰아치고 있음을 뜻했다.
소셜미디어 X에 오로라를 검색하니, 과연 세계 각지에서 오로라가 발생하고 있었다. 북극/남극과 가까운 캐나다, 아이슬란드, 뉴질랜드는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 미국 댈러스 심지어는 일본 삿포로에서도 오로라가 관측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상대적으로 위도가 낮아서 오로라 관찰 소식이 없었다. 게다가 비가 오고 있었다. 비가 오면 땅 위 100KM 이상에서 펼쳐지는 오로라를 볼 수 없다.
"오로라 보러 가실래요?"
함께 일하는 든솔이 물었다. 나와 든솔은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를 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천문대 강사들보다 오로라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있었는데도 오로라를 보러 가잔다. KP지수가 9라고 해도 극지방과는 먼 한국의 위치, 세차게 내리는 비. 뭣하나 희망적인 게 없었다. 중위도 지방의 실질 KP지수도 4 정도로 추정되고 있었다. 확률로 계산해 보자면 오로라를 볼 확률은 5%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든솔은 오로라 헌팅을 가자고 했다. 그에게 답했다.
"안 갈래"
나는 이과인이다. 기분보단 확률에 근거해 말을 더했다.
"한국의 KP지수는 4인데? 5% 확률도 안 되겠다. 날씨도 너무 안 좋고"
그러자 든솔이 말했다.
"후! 낭만이 없으시네. 한국에서 오로라가 뜨는데 안 간다고요?"
그의 도발에 천문대 일이 끝나기 전까지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KP지수와 각국의 오로라 상황을 살펴봤다. 아무리 계산해도 오로라가 보일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말한 '낭만'이 자꾸 귓가를 쳤다. 내가 누군가. 글을 쓰려면 감성이 넘쳐야 한다며 아이패드를 최고 사양으로 사고, 딱딱한 코딩을 하려면 우아함이 절실하다며 맥북을 구매한 인간이다. 노란 불빛으로 가득 찬 낭만적인 펍을 보면 나방이 불빛을 만난 듯 달려들어 지갑을 태운다. 이 시대의 진정한 낭만 호소인이 바로 나다. 만약 오늘이 우리나라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 한국에 찾아온 낭만을 내가 걷어 차는 거라면? 그것을 놓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낭만 호소인이 자존심이 있지. 밤 12시. 천문대 근무가 끝나자마자 강원도로 내달렸다. 날씨와 KP지수, 우리나라의 위치를 모두 감안하고도 오로라를 헌팅을 떠났다. 사실 낭만을 찾아 떠난 셈이다.
강원도 철원, 수피령에 들어섰다. 차문을 열자 그림같이 구름이 개어있었다. 희뿌연 은하수가 하늘을 휘감았고, 별똥별도 수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오로라를 포착했다.
한국의 오로라는 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희미했다. 카메라로 오로라가 있을만한 위치를 찍고, 보정을 통해 오로라의 색감을 조금 더 살려냈다. 고위도 나라들에서 포착된 오로라와 비교하자면 옅고 희미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오로라라니! 믿기지 않는다. 천문학을 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자 낭만 넘치는 광경이다. 2024~5년은 태양 활동의 극대기다. 태양의 활발한 활동으로 흑점과 플레어가 자주 생기고, 이로 인해 오로라가 생길 확률이 더욱 높다. 이게 다, 태양 덕이다.
사실 오로라를 만나게 된 것은 태양보단 든솔 덕분일 것이다. 나를 낭만으로 자극한 것도, 확률이 낮은 오로라를 보러 가자고 한 것도 모두 든솔이다. 낭만호소인인 내 곁에 든솔이가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인 동시에 감동적이기도 했다. 나는 말만 대단히 앞서는 반면, 그는 행동이 먼저 앞서기 때문이었다. 철로 감싸진 내 낭만에 그는 늘 적절한 분위기를 자석처럼 갖다 붙였다. 알앤비가 필요한 순간엔 크러쉬 노래가 어딘가에서 튀어나왔다. 지지가 필요한 순간에 하이파이브가 날아들었고, 대화가 필요한 순간엔 늦은 새벽에도 곁에 있어 주었다. 그러면 메마른 공간에 촉촉한 음악이 내렸다. 척박한 마음에도 위로가 피었다.
내가 소울이라면 그는 메이트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있는 순간이 그토록 연결될 수 없을 것이었다. 나이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낭만은 그와 함께 있을 때 더 자주 넘쳤고, 낭만이야 말로 우리의 오로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