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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l 18. 2024

동생의 사춘기는 미지근했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 동생 원대에게 전화가 왔다. 


"형, 나 군대가."

“드디어 간다고? 잘됐다!”

 나는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동생의 친구들은 이미 다 군대를 간 상황이었다. 원대는 씁쓸하게 말했다.

“잘 된 거겠지? 가기 전까지 팽팽 놀다가 갈래유”

“그래, 입대 전에 여행이라도 좀 다녀와”


 동생은 “됐어유”라는 말로 착잡함을 표현했다. 경기도에 사는 20살의 동생이 어째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원대와 나는 가깝우면서도 먼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형제다. 연락은 드물고, 서로의 일상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이따금 전화를 걸면 한 번에 받는 일이 없다. 문자를 하지도, 고민을 털어놓는 일도 없다. 11살의 나이 차이는 우리를 형과 동생보다는 삼촌과 조카처럼 만들었다.

 함께 한 집에 살때는 얼굴이라도 자주 봤는데, 내가 대학을 가며 집을 나오게 되자 1년에 5번쯤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 때 원대는 겨우 9살이었다. 공간적 거리가 생기면서 우리의 관계도 서서히 멀어졌다. 별들이 은하 내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실제로는 수백 광년 떨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 형제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각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원대가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아버지는 하소연을 위해 내게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원대 좀 어떻게 해봐".

"원대가 왜요"

"너희를 키울 때와는 달라. 세대 차이 나는 막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대는 다소 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었고, 아버지는 이미 환갑이 넘었다. 원대 또래들의 부모님에 비하면 나이가 꽤 많은 아버지였다. 소주 한 병을 드신 날이면 폴더 폰을 열고 여지없이 큰 아들의 번호를 눌렀다. 그리곤 나이보다 더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 늙은이가 이제 뭘 하겠니. 네가 대화해봐."


 사춘기 남자는 빨갛게 달군 쇳덩이 같다. 내리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위험하고 뜨거우며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위협적이다. 정말이지 국가가 ‘사춘기 과목’이라도 만들어 시험 점수가 미달되면 일반인들과의 접촉을 금지시켜야 마땅하다.

 그런데 원대는 그렇지 않았다. 나의 격렬했던 사춘기와는 전혀 달랐다. 여자 친구와 새벽마다 몰래 통화를 하느라 전화비를 60만 원 쓴 일도 없었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며 가출하듯 뛰쳐나가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밤색 코트에 넣어둔 생활비 뭉치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원대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게임을 하며 보냈다. 혼자서,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를 하며, 심지어는 '엄마 없냐?' 따위의 비속어도 쓰지 않았다. 밥을 굶고 피시방을 간 적은 있어도 주변을 굶길 만큼 뾰쪽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동생은 인격적으로 나보다 더 나은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내가 동생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훌륭하게 사춘기를 보내는 사람에게 훈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불타는 시간을 어떻게 그리 얌전히 보내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니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용돈 안 떨어졌어?”

 “응, 아직 버틸 만 해”

 “떨어지면 말 좀 해”

 “응, 어차피 넘치는 일은 없어”


 원대가 언제 오냐고 물었다. 군대 가기 전에는 올 거지?, 하며 빈 소리를 냈다. 곧 가겠다며 빈 답을 건넸다. 그렇게 잠깐 정적이 흘렀다. 우리 둘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말이 딱히 필요하진 않았다. 

 우리 형제 사이에도 일종의 중력과 같은 힘이 작용하고 있다. 우주의 별들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중력으로 인해 상호작용한다. 이 힘은 가끔 서로를 흔들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 결국 별들처럼 각자의 궤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만든다. 나와 원대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각자의 삶에 미묘하게 영향을 미치며 우리만의 궤도를 그리고 있다. 서로를 미지근하게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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