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의 멋을 알자
젓가락은 중국, 한국, 일본을 비롯한 몽골이나 동남 아시아 일대 젓가락 문화권에서 일상생활에 필요 불가결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식사도구이다. 뿐만 아니라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문화 속의 이방인들도 그 지역을 방문할 때는 젓가락 사용이 기본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우리가 처음 경양식 집에서 포크와 나이프로 접시 위에 음식을 잘게 썰어 먹는 문화에 신선함을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젓가락을 사용해 음식을 집어 먹는 것에 경이로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새록새록 느낀다.
얼마 전 남편의 서양인 동료가 한국 여행을 앞두고 자신의 개인 나무 젓가락을 챙겨 간다고 해서 한참 웃었던 일이 있다. 한국의 젓가락은 쇠로 되어 있어 서양인이 사용하기에는 두툼한 나무 젓가락 보다 힘든 기술을 요하기 때문이다. 식당마다 일회용 나무 젓가락을 달라고 하면 된다고 전했지만 여행을 앞두고 들뜬 그들은 젓가락도 짐 가방에 챙겨 갔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젓가락 보다 숟가락이 더 오래된 그리고 중요한 식사 도구였다고 한다. 식사 도구로 되기 전의 젓가락은 기다란 브론즈로 된 꼬챙이로 끓는 물 속의 음식물을 젓거나 꺼내는데 쓰이는 요리 도구 일 뿐이었다.
고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북부 지역에서는 기장이 재배되고 있었다. 기장은 쌀보다 입자가 작아 쌀로 밥을 짓듯이 요리를 하여 윗 부분 까지 익히려면 바닥에 있는 부분이 많이 타게 되므로 대부분 죽으로 많이 쑤어 먹었다. 죽을 먹기에는 숟가락만큼 우아한 도구가 없었을 테니 숟가락이 발달되고 기본이 되었으리라.
다른 지역에서 그러하듯이 그리고 기장 죽과 마찬가지로 '끓는점'은 다른 재료들을 요리하는데도 기본이었다. 한나라 시절 중국에서는 비 곡물 음식을 찌게 형태로 요리해 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고 찌게의 음식물을 집어 먹는 데는 젓가락이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젓가락을 사용해 미소 국을 먹는 모습과 그릇에 입을 대고 국물을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면 될 듯하다. 곡물이 주식인 이유로 비곡물의 식사 도구였던 젓가락은 그렇게 숟가락을 보충하는 도구로서 저(箸)라는 중국 이름으로 탄생된다.
계속 기장 죽 식문화가 이어졌다면 지금의 우리는 배 곯았을 듯 싶다. 다행히도 1세기경 중국에서 밀이 재배되면서 젓가락이 도약을 한다. 밀로 만든 국수를 먹기에 젓가락 만한 도구가 또 있으리오. 10세기경에는 중국 북부의 최고 소비 곡물이 되면서 한국에도 밀이 도입이 된다. 국수나 만두 같은 곡물과 비곡물의 혼합 요리들은 젓가락의 위상을 드높인다.
동 아시아 지역뿐 아니라 동남 아시아에도 국수가 유입되면서 젓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더욱 젓가락의 활용을 장려한 것은 11세기 경 중국을 비롯한 동남 아시아, 한국, 일본 등의 쌀의 소비 증가였다. 밥알은 기장 보다 잘 뭉쳐지므로 젓가락의 사용도 가능 하지만, 쉽게 흝어지기에 또한 의외로 입까지 전달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숟가락을 사용한다. 이에 비곡물 요리인 반찬류는 거의가 젓가락을 필요로 하게 되어 숟가락과 젓가락은 한쌍으로 식탁에서 나란히 빛을 발하게 된다.
곡물의 변화 이외에도 기름의 탄생으로 볶음이라는 새로운 요리법이 발달하면서 지금 까지도 중국 요리의 기본이 되고 있다. 빠르게 볶음 요리를 완성하기 위하여 모든 재료들을 잘게 썰어 요리하게 되고 잘게 썬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를 원하는 양만큼 입까지 운반하는 도구로도 그리고 위생적으로도 젓가락이 최상의 도구였다.
지역마다 젓가락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중국의 젓가락은 끝이 무디고, 일본의 젓가락은 조금 짧다. 물론 한국의 젓가락은 중국의 그것 보다 짧기도 하고 쇠로 된 것을 많이 사용한다. 옛날에는 부유함과 계급에 따라 옥이나 상아, 산호 등으로 만든 젓가락도 사용되었다는데 음식물의 독이 닿으면 검게 변하는 특성으로 은제품이 인기 있었다고 한다.
고대 중국 어느 곳에서 시작된 젓가락은 오늘 날 대부분의 젓가락 문화권 나라에서 음식 섭취를 돕는 주요 도구가 되어있고, 그 이전에 나온 숟가락은 국물을 개인 공기에 덜어내는 용도로 많이 사용한다. 이와 다르게 한국의 식탁에서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밥상 위에 올라 각기 저마다의 용도를 뽐낸다. 한국인인 나의 관점에서 젓가락으로 모든 음식물을 섭취하는 모습 보다는 숟가락과 젓가락의 용도 별로 나누어 섭취하는 모습이 더 예의가 반영된 모습으로 비치어지긴 한다.
오늘날, 일본에서 발명되어 널리 쓰이는 나무 젓가락이 많이 쓰이지만 왠지 한 끼를 먹어도 예쁜 젓가락이면 더욱 멋스럽지 않을까. 자신의 젓가락을 챙긴 남편의 동료도 그런 생각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