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그이와 처음 본 영화다. 뭔가 불명예스러운데... 타이밍이 그랬다. 그때 나는 영화관에 너무 가고 싶었다. 지난 1년 동안 영화관에 간 적이 없었던 터라,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너무 그리웠다. 이상하게도 러시아에서는 영화관을 가는 것이 일처럼 느껴져서 거의 가지 않고, 꾹꾹 마음을 눌러 놓았다가 한국에 오면 바로 영화관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그때가 그랬다. 그래도 그이와 영화를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처음 얼굴을 보러 나간 자리였고, 약속 장소로 가는 길 내내 그이를 만나도 괜찮은가-에 대해서 고민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첫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데, 평범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블로그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오랜 일기장처럼 쓰는 블로그가 있는데, 그이가 처음 댓글을 달아주었다. 해외 생활의 고단함과 공부의 어려움을 푸념같이 늘어놓은 글이었는데, 외국에서 고군분투하는 내가 짠했었는지, 정성스러운 글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의 소소한 일기에 그가 댓글을 달아주고, 내가 거기에 답글을 달고. 펜팔인 듯, 접속인 듯. 그리고 상대의 댓글을 기다리게 됐을 무렵, 내가 잠시 한국에 가게 되었다.
어떤 사람일까. 한 번 만나도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기회가 생기니, 걱정스러웠다. 괜히 만났다는 생각이 들면 어떡하지, 나를 보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고민 끝에, 밥만 먹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어쩐지, 밥을 먹고, 차도 마셨는데, 헤어지기 아쉬웠다. 글을 통해 내밀한 감정을 먼저 보여주고 만나서인지, 어색함이 있긴 했지만, 조잘조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헤어짐을 미루기 위해서, 영화를 보았다. 마침 '신과 함께'가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유명 배우들도 나오고 감독도 어지간하고, CG에 몇 십억을 썼다는 광고를 보니, 영화관에서 보기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이었으면, 나를 설득하려고 했을 것 같다. "이건 우리랑 결이 다른 영화 같은데, 다음에 보는 게 어때?"
하지만 우리는 '신과 함께'를 보러 들어갔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좌불안석이었다.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옥, 지옥의 형벌 등을 시각화하고, 액션을 더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장점 외에 다른 것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서사가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흥미가 반감되었고, 권선징악, 부모의 사랑, 우정 등을 너무 일면적으로 그려내어 영화를 본 이후에 다시 곱씹을 만한 것들이 없었다.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익숙한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를 만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하나의 단어로 설명되지 않은 삶의 또 다른 단면을 포착한 영화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영화관을 나오면서, 결국 나는 그이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차라리 다른 영화를 볼걸 그랬다고. 그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직도 가끔 이야기할 때가 있다. 우리가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가 '신과 함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