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키와 쟈니>
첫 영화를 보고, 다음 영화를 보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고, 긴 장거리 연애가 이어졌는데, 댓글과 전화로 일상을 나눌 수는 있었지만, 같이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전화는 6시간의 시차에 갇혀 함께 할 수 없는 우리의 아쉬움을 달래주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가끔 그 아쉬움이 버거워질 때엔, 같이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만들면서 버텨냈다.
그때마다 그이는 <프랭키와 쟈니>를 같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며, 그 영화에서 알 파치노의 연기가 가장 빛난다고 말했다. 심지어 가끔 알 파치노를 따라 하기도 했는데, 영화를 보지 못한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프랭키와 쟈니>는 개봉한 지 거의 30년도 더 지난, 종이가 노랗게 빛바랜 오래된 책과 같은 영화다. 그이는 손에 닿는 곳에 낡은 영화를 꽂아두고, 마음이 동 할 때마다 꺼내 보내듯 했다. 그래서 <프랭키와 쟈니> 얘기가 나올 때마 궁금했었다. 어떤 영화길래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그 영화에서 그이는 무엇을 보았을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프랭키’와 ‘쟈니’다. 어떤 영화는 줄거리를 요약하면 영화에 담긴 이야기나 감정이 지나치게 단순해질 때가 있는데, <프랭키와 쟈니>가 그렇다. 프랭키가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식당에 쟈니가 새로운 직원으로 등장한다. 쟈니는 프랭키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밀어내기만 한다. 그러다 결국 쟈니는 프랭키의 마음을 받아들여 둘은 연인이 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끝내 연인이 되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털어내고 새로운 관계를 꾸려나가는 과정 그 자체다. 특히, 프랭키가 아주 조금씩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이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프랭키처럼 과거의 사랑이 아픔으로 남은 사람이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프랭키는 상처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에 쟈니가 내미는 손을 뿌리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쟈니의 진심에 흔들리고, 이번만은 다를까 싶어 그를 믿어보고 싶지만, 다시 한 걸음 물러서고 만다. 쟈니도 그녀가 망설이는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혼자서 살 수는 없는 거라고, 과거의 아픔을 없애주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힘든 시간이 온다면, 옆에 항상 있어주겠다고.
<프랭키와 쟈니>는 너무 많은 것들이 보태지고 더해져 이제는 어쩐지 낯설기까지 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삶은 복잡해지기만 하고, 좀처럼 쉬워지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거기에 실망하고, 좌절하게 되는데, 이렇다 할만한 해결책을 주지 못해도, 내 옆을 지켜주는 존재가, 그의 온기가 큰 도움이 된다. 혼자에서 둘이 되었다고 인생이 쉬워지겠냐만, 그래도 같이 버텨보자고, 미약하나마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겠노라-다짐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만일 사랑을 시각화할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랭키에게 내미는 쟈니 손이, 두려움을 뒤로하고 그의 손을 맞잡는 프랭키의 손이 포개지는 모습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