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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Jerk Oct 12. 2018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밑줄읽기

장영희

장영희 교수님의 글은 특별한 따뜻함과 감동이 있다.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한 줄마다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축복처럼 타고난 성정인 건지, 어려서 부터 겪은 장애와 투병 속에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환경과 주변의 좋은 사람들로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글마다 담겨 있는 뿌리 깊은 인간적인 마음과 고백들이 나는 너무 너무 좋았다.

때로 질투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또 반성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다시 슬퍼하고 그 솔직한 마음의 굴곡이 활자만으로도 이미 우리의 삶보다 더 솔직하고 사실적이어서,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교수님의 삶까지 응원하고 아끼는 마음이 들었다. 그어 놓은 밑줄을 읽을 때마다 나와 주변인들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는 건 교수님이 남겨준 큰 축복이자 선물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서문

나는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적을 원한다. 암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더 크고, 확률에 위배되는 것은 ‘기적’이기 때문이다.



본문

나는 아직도 그때 짝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 그 ‘미리’라는 단어가 주는 평안함, 당당함, 우아함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가끔 내 마음속에는 이렇게 평화를 싫어하고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도깨비 같은 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평화와 질서, 화해 찬미론자지만, 내 속 어딘가에는 분명히 질서에 반항하고, 완벽한 조화를 불편해하고 일탈을 꿈꾸는, 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 어른이기 때문에, 사회적 체면 때문에, 남들의 기대와 요구 때문에 입고 있는 옷을 다 벗어 버리고 싶은 충동, ‘착함’을 거부하는 존재가 분명 어딘가에서 심심찮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중략)

어쩌면 누구든지 마음속에는 작든 크든 그런 도깨비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무슨 커다란 범죄 욕구는 아니더라도 가발을 쓴 사람을 보면 가발을 벗겨 보고 싶은 충동, 평화롭게 잠자고 있는 사람을 한 번쯤 쿡 건드리고 싶은 충동….


그런데 정 교수가 보내준 글에는 두 문장이 더 남아 있었다.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은 사랑하는 사람들, 내일을 위한 희망, 그리고 나의 능력과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나쁜 생각이 있어도 3퍼센트의 좋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준다’


마침 옆에서 한가롭게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학생들이 영문학 전공인지 ‘비트 제너레이션’이 어쩌고 ‘잭 케로악’이 어쩌고 하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암만 생각해도 말이 안 되었다. 벌떡 일어나 “야, 이 바보들아, 그 사람들은 다 죽은 사람들이야. 무덤 속에서 꼼짝 못 한다고. 시퍼렇게 살아 있는 나에 대해 이야기해 봐!” 하고 크게 욕해주고 싶었다. 그것도 우리말로 하고 싶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남의 나라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비위가 상했다.


우리는 때로 마이클처럼 마음속의 어린아이를 부끄러워한다. 아니, 무섭게 덤벼드는 세파와 싸워 이기고 살아남는 길은 내 속의 어린아이가 나오지 못하게 윽박지르고 숨기고 딱딱하고 무감각한 마음으로 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짓눌러도 우리 마음속 어린아이는 죽지 않는다. 아무리 숨겨도 가끔씩 고개를 내밀고 작은 일에도 감동하는 마음,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슬퍼하는 마음으로 우리 가슴을 두드린다. 아무리 무시해도 가끔씩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와! 되게 예쁘다” 감탄하고, 함께 행복해하고 싶어 한다.


옥시모론(Oxymoron)모순형용법

운명처럼, 십자가처럼 어머니는 나를 업고 10년 세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종로의 어느 침술원에 다니셨다.

‘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옆문으로 빠진다’라는 말을 보았다. 가난이 싫어서 어떤 때는 그와 헤어질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중략) 미국 속담에 ‘빈 자루는 서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돈이 있어야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자존심 내세우며 살 수 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서머셋 모옴 <과자와 맥주>

(중략) ‘무위의 재능’ 즉,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만은 넘치게 가진 것 같다.

새삼 돌이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많은 경험 끝에 이제 넌 이 넓고 험한 세상에 두 살짜리 아기와 혼자 남게 되었구나. 아프고 지친 너는 이제 무심히 너를 지나쳐 앞으로 가는 사람들 뒤에 홀로 남아 이 무서운 삶을 살아내야 한다.

정말 ‘불행’이라는 단어는 네게 어울리지 않는데, 내 눈앞에서 네가 ‘불행’해지는 것을 나는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행복의 양에도 한계가 있고 최고의 행복조차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별로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듯이, 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절망에도 한계량이 있는 모양이라고. 예쁜 아가가 있어서 행복하고, 그런 아가를 위해 전에는 푼돈이었던 얼마간의 돈을 버는 게 소중하고, 그리고 이런 작은 축복들이 정말적이고 불행한 삶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더라고. 의연한 네 모습에 더욱 가슴 아팠다.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 -  이 지대 나무들은 무릎 꿇은 모습으로 서 있다. 이 나무로 명품 바이올린을 만든다.


순명(順命)

내가 살아 보니까 그렇다는 말이다.

(중략)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일상-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이 끝없이 질투나고 부러웠다.


“괜찮아”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 몰랐다. 돈 없이 깨엿을 공짜로 받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목발을 짚고 살아도 괜찮다는 말인지…….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날 마음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것이라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고, ‘괜찮아’라는 말처럼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략)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난 너의 가능성이 보이는 데 넌 안보이니?”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어라.’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무서운 말이다. 지금 그대로, 아무런 변화 없이, 의미 없이, 이 세상에 해만 끼치며 살다가 모든 사람들이 박수 치는 가운데 죽어 버리라는 말이다.


“그렇게 야단법석 떨지 마라. 애들은 뼈만 추리면 산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시는 나 같은 바보가 만들지만
나무는 오직 하느님만 만들 수 있는 것
-조이스 킬머 [나무]
“나무는 땅이 하늘에게 말하는 언어”
-타고르


‘당당하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어떤 옳은 일을 실행할 때 쓰는 말이다.

네 마음이 너무 깜깜해서 유감스럽게도 내가 그날 네게 해주었던 말들이 빛이 되지 못했다고,

다시 이북으로 떠나기 전, 백 살 된 어머니를 돗자리에 앉히고 마지막으로 절을 올리며 어떤 아들은 말했다. “오마니, 통일 되어 아들 다시 보기 전에 눈을 감으면 안 돼요. 알갔시오? 그게 오마니가 해야 할 일이야요.” 어머니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을 ‘오마니가 해야 할 일’이라고 자꾸 우기던 아들은 울며 떠났다.


“내가 나를 알지요. 이렇게 하지 못하면 아마 죽을 때 눈을 감지 못할 거예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필생의 역작을 써볼 겁니다.”


토마스 머튼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


한마디로 그녀는 그녀가 그려내는 그림처럼 내 눈앞에 실체로 존재하는 아름다운 환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그 사람, 사람은 좋은데……” 라는 말을 하며 말 끝에 보통 ‘맺힌 데가 없다’든지 ‘악착 같은 데가 없다’든지를 덧붙여서, 약삭빠르지 못하고, 세상의 경쟁에서 살아남기에는 부적격한 사람으로 판정할 때의 선제조건(?)으로 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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