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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Jerk Oct 02. 2018

[키친] 밑줄읽기

요시모토 바나나

밑줄을 다시 읽고자 옛노트를 뒤적이면 예민한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와 감격하곤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은 이것 밖에 안 읽은 거지만, 글에 담긴 정직하고 투명한 느낌이 좋았다.

음식은 우리의 지친 육신만을 달래는지 모르지만 요리의 정서라는 건 우리의 마음도 어루만져 준다. 김이 가득 오르는 접시, 끓어 오르는 우둑한 뚝배기, 노릇한 전의 기름 냄새..

함께 부엌을 쓰는 사이라는 것도 생각해 봄직 하다. 노동이 겹친 자리에서 위로가 돋아난다.




1부-키친


이사는 노동이다. 힘이다.


너무도 환하게 웃어,  현관에 선 그 사람의 눈동자가 한층 가깝게 느껴졌다.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 믿음직스러웠다. 눈앞의 어둠 속으로, 마가 낄 때면 늘 그렇듯, 외길이 보였다. 공원을 지나는 길은, 무성한 밤의 초록내음으로 숨이 다 답답했다.


조그만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얌전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식기류, 빛나는 유리 잔.


그럼에도 그녀는 압도적이었다. 다시 한번 만나고픈 생각이 들게 하였다. 마음속에서 따뜻한 빛이 잔상처럼 여리게 반짝거려, 그게 매력인 모양이라고 느꼈다.


"......황송하네"

라고 나는 말했다.

그는 한 차례 설명을 끝내자 잘 자라 말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아르바이트는 빠짐없이 다녔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청소하고 텔레비전 보고 케이크를 굽고, 주부 같은 생활을 하였다.

마음으로 조금씩 빛과 바람이 통하여, 기뻤다.


지금,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생각나지 않으니 나는 행복했다.

늘 그렇다. 나는 한계점까지 다다르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이번에도 정말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이렇게 따스한 침대가 주어진 것을, 나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신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를 찾으려면 녹음 속을, 이란 말이 전설처럼 떠돌 정도였다.


그래, 그 건전함이 좋고, 부럽고,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었다. 옛날에는.

그는 대가족의 장남이고, 그가 집에서 별 뜻 없이 가져오는 활기참이 나를 푸근하게 해주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ㅡ저 다나베네 집의 묘한 편안함ㅡ이다, 그에게 그 점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유이치를 사랑하지 않으므로 잘 안다. 만년필에 대한 그와 그녀의 생각이 질과 무게에 있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세상에는 만년필을 죽기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점이 너무 슬프다. 사랑하지 않기에 알 수 있는 일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항상 전력으로 질주하는 나지만, 구름진 하늘 틈 사이로 보이는 별들처럼, 지금 같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조금씩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두 번 다시란 말이 지니는 감상적인 어감과 앞으로의 일들을 한정하는 뉘앙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생각난 <두 번 다시>의 그 엄청난 무게와 암울함은 잊기 어려울 만큼 박력이 있었다.


내가 말했다, 텅 비어서 목소리가 울렸다.


마치 살인범한테 자수하라고 설득하는 사람처럼 성의있게,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는 한마디 한마디를 담담하게 말했다.


에리코 씨가 정성껏 키운 그 아들은, 이런 때면 순간에 왕자님이 된다. 그가 말한다

;비루한 노동자도 누군가의 하늘이 되는, 영웅이 되는 순간이 있을까.


시간은 많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밤과 아침,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때가 꿈이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인생이란 정말 한번은 절망해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라는 걸 모르고 어른이 돼버려."



2부 만월


전화는 아무것도 전해주지 않는다. 나한테는 유이치가 보이지 않았다. 울고 싶어하는지, 컬컬 웃고 싶어하는지, 차분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인지, 그냥 혼자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우리 둘이서, 죽고 싶은 사람 곁에 살아주면 장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소극적인 일꾼으로"

빛이 흩어지듯 서글프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에리코의 유언 편지 중

-제 아무리 열심히 괴로워해도 동정의 여지가 없어. 안 그렇겠니, 난 몸 하나로 당당하고 활기차게 살아왔는 걸. 난 아름다워. 난 빛나고 있어. 나는 혹 뜻하지 않은 사람이 나한테 매료되었다 해도 내 아름다움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세금쯤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하고 있단다-


여기(다나베네 부엌)에 서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고, 무언가가 다시 돌아온다.


(요리는) 그런 사소한 요소들이 결과적으로 색이나 모양에 어김없이 반영돼 있어, 놀랐다.


그녀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제멋대로 배우는 것은 좋지만 그 행복의 영역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세뇌되어 있다. 아마 그들의 자상한 부모들로부터. 그리고 진정한 기쁨이 뭔지를 모른다. 어느 쪽이 좋은지, 인간은 선택할 수 없다. 각자는 각자의 이생을 살도록 만들어져 있다. 자신이 실은 혼자라는 사실을 가능한 한 느끼지 않을 수 있어야 행복한 인생이다.

(...)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 있는 기분이 안 든다. 그래서, 이런 인생이 되었다.


"취해서 비틀비틀 밤길을 걸어오다 보면, 전화 부스 보통 밝게 빛나잖아. 캄캄한 밤길에, 멀리서 봐도 잘 보이잖아"


"(다 이해해 줄 거라는)그런 행복한 기대를 갖는 게 두려웠지. (...) 그런 감정을 네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자신도 끈기도 없었어."


인간을 통찰하는 그녀의 안목은 상당히 이기적인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지만, 그 언어의 폭력은 내 아픈 곳을 정확하게 찔렀고, 내 마음은 몹시 상처입었다.


ㅡ차가 달린다. 거리가 미끄러진다. 이제 5분이면 내가 사는 아파트에 닿는다.


언어란 언제나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런 희미한 빛의 소중함을 모두 지워버린다.

;A라 하면 A일 뿐이다.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에 있어서는 폭력적인 수단이다.


나의 감각은 그때, 소름끼칠 만큼 깨어 이었다. 나는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었다.

둘의 마음은 죽음으로 에워싸인 어둠 속에서, 완만한 커브를 그리며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커브가 지금 거의 맞닿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지나면 서로 다른 회로를 따라 덜어지고 만다. 지금 여기를 지나면, 두 사람은 이번에야말로 영원한 친구로 남는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나무 젓가락을 갈랐다.


"앞으로 나와 함께 있으면 괴로운 일이며 성가신 일, 지저분한 일도 보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 유이치만 좋다면, 둘이서 더 힘들고 더 밝은 곳으로 가자."



3부 달빛 그림자


그는 늘 그 분위기와 표정에 어떤 유의 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다, 닮았어"

라고 내가 말한다. 그러면 그는 항상 <히토시 흉내>라면서 히토시를 흉내냈다. 그리고 둘이서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희화하며 노는 정도밖에 달리 길이 없었다.

;상처를 공유하는 사이는 그 상처를 보듬는 방법도 공유하게 된다.


그의 세일러 복은 나의 조깅이다.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만큼 유별난 인간이 아니라서 조깅으로 충분할 뿐이다. 그는 조깅 정도로는 전혀 효과가 없고 자신을 지탱하기에 부족하여 변주로 세일러 복을 선택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형을 절대로 무너뜨리지 않는 주제에, 반사적으로 친절을 베푸는 그 냉담함과 순진함에 나는 항상 투명한 기분이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운명은 한 단도 헛디딜 수 없는 사다리였다. 단 한 장면을 빼놓아도 끝까지 올라갈 수 없다. 그리고 오히려 헛디디는 편이 쉬웠다. 그럼에도 나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아마 죽어가는 마음속의 빛이었으리라. 그런 건 없는 편이 차라리 편히 잠들 수 있다고 여겼던 어둠 속의 빛이었다.


생명력으로 넘치는 아름다움 풍경 속에서 내 마음은 메마른 겨울 길과, 새벽녘의 강가를 그리워한다.

;헐벗고 굶주린 감정이 필요한 시간이 있다.


내게 그 강은, 히토시와 나의 국경이었다.


늘 그렇게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품이 많이 든 세월이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 고생은 공수가 든다. 마음의 품이 필요하다.


남자는 일부러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만큼 그의 전신이 눈동자가, 한 가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말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 하자면 아주 힘든 말이다. 아주 고통스러운. 그것은,

ㅡ돌아와 줘.

말이라기보다 기도였다. 나는 안타까웠다.


히토시를 잃었음이 아프다. 너무 아프다.

그와 서로 껴안을 때마다 나는 말이 아닌 말을 알았다.


밖에서 싸늘한 바람이 들어와 따끈따끈한 볼을 식혔다. 청렬한 공기가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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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하면 아주 간단하지. 세계는 딱히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는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일에는 대범하게, 되는 대로 명랑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 고.


"드디어 고아가  되고 말았어."
유이치가 말했다.
"난 두 번이나 그랬어. 자랑할 건 못 되지만."
내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유이치의 눈에서 눈물이 똑똑 흘러 떨어졌다.
"너의 그런 농담이 듣고 싶었어."
팔로 눈을 비비면서 유이치가 말했다


"왜 너랑 밥을 먹으면, 이렇게 맛있는 거지."

나는 웃으며,

"식욕과 성욕이 동시에 충족되기 때문 아닐까?"라고 말했다.

"아니야, 달라. 그게 아니야."

웃음을 터뜨리며 유이치가 말했다.

"아마 가족이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저 행복한 여름, 그 부엌에서. 나는 불에 데어도 칼에 베여도 두렵지 않았다. 철야도 힘들지 않았다. 하루하루, 내일이 오면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다는 즐거움으로 가슴이 설레였다. 순서를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만든 당근 케이크에는 내 혼의 단편이 들어 있었고, 수퍼마켓에서 새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발견하면 나는 뛸 듯이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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