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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Jerk May 29. 2018

[살인자의 건강법] 밑줄 읽기

아멜리 노통브

  아멜리 노통브는 국내에도 꽤 잘 알려진 작가다. 사실 나도 썩 잘 아는 작가라고 할 수는 없으나, 두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 특유의 전개 방식, 그리고 언어적 장치와 대화의 흐름 구성에 감탄할 때가 적잖이 있어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데뷔작이기도 하면서 출세작인 [살인자의 건강법]은 [적의 건강법]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힌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독설가이자 대문호인 프렉테스타 타슈를 니나라는 여기자가 인터뷰 하는 내용으로, 하나의 공간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이 소설의 전부이다. 하지만 이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조금도 지루하지 않으며, 매우 전개 속도가 빨라 흡입력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야기 전체의 줄거리와 별도로, 나는 '의미'의 뜻에 대한 타슈의 통찰과 의견에 주목하며 읽었다. 타슈에 따르면 '의미가 있다'는 것은 '영향력'이라고 다시 쓰일 수 있겠다.

  노통브의 소설은 늘 반전적 요소가 있다. 때문에, 밑줄 읽기는 스포일링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서 읽을 것을 권함.

  



전세계 언론사들은 작가의 임박한 죽음을 가십거리로 만드는 것에 대해 일제히 분노를 표시했다. 그들의 자아비판에 호응하는 독자들의 편지가 쇄도했다. 그럴수록 엄선된 극소수 기자들의 인터뷰 기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현대의 정보 공유 법칙이란 게 그런 것이다.


실제로 그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요인들이 더해지면서 선생의 죽음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성공적인 죽음이었다.

: 통찰력 있는 이야기란 거리를 둘 때 가능해진다. 객관화가 통찰의 첫 걸음. 나의 삶에 통찰을 발휘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그들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두려움이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종군 기자 같은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인터뷰 #1

(자기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들을 두고) "그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늘어놓는 작가가 있다면, 십중팔구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에 속할 거요. 첫번째는 자기가 책 속에 써놓은 내용을 목청껏 떠들어대는 거지. 앵무새란 얘기요. 두번째는 책에 써놓지 않은 것들에 대해 흥이 나서 이야기 하는 것이고. 이 경우는 실패한 작가지. 쓰고자 하는 걸 책 속에 담아내지 못했으니까."


"악취미도 악취미 나름이오. 우선 건전하고 생산적인 악취미가 있소. 그런 악취미가 불러일으키는 공포는 건강에 이롭지.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해주는 공포, 명랑하고 남성적인 공포란 말이오. 우리 몸에 꼭 필요로 하는 구토 같은 거지. 또 다른 악취미는 사도 행세를 하는 악취미요. 건전한 악취미가 멋지게 게워놓은 토사물을 보고 화를 내는 악취미, 잠수복을 갖춰 입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악취미지. 이 잠수부가 바로 메타포요. 메타포를 통해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은 마음 푹 놓고 외치겠지. '타슈를 다 가로질렀는데도 난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았어!'"


"그 밀랍상인을 계속 물고 늘어지는구먼. 그가 왜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밀랍으로 떠내느냐고? 모르긴 해도 당신과는 정반대의 이유에 의해서일 거요. 즉 그 밀랍 거푸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고, 그것이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고, 그것을 사는 사람이 없고, 그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정보도 전해줄 수 없기 때문이오."

: 의미를 쫓는 자와 의미를 따돌리려는 자. 의미는 뒤집어도 의미가 된다. 진리는 부조리한 법이다. 필요로해서 기자가 된 자, 불필요로 해서 소설을 쓰는 자.


"박쥐처럼 음험한 데다 쓸개즙처럼 쓴 소리만 해대고!"


인터뷰 #2

"왜 금속제 잔을 쓰십니까?"

"난 투명한 게 싫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뚱뚱한 거요. 남들이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게 싫어서."


인터뷰 #3

인간이라는 게 원래 그런 존재이다. 그리하여 건강한 정신을 가진 이들이 젊음과 육신과 사랑과 우정과 행복과 기타 등등 영원이라 불리는 환상의 제단에 바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 여기서 영원은 세기의 명작, 역사적 인물을 뜻한다. 과연 그런 것들은 우리의 젊음과 육신, 사랑, 우정보다 더 가치있는 것일까?


인터뷰 #4

"암, 내 책은 전쟁보다 해롭다오. 죽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니까. 반면에 전쟁이란 건 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잖소. 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자살해야 마땅하오."

"독자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이 없는 건 왜일까요?"

"그건 말이오, 아까와는 달리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소. 아무도 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지. 따지고 보면 내가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거요. 내가 이렇게 유명해진 건 아무도 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오."

: 아무도 자신의 책과 이야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좋은 결과들을 초래했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타슈는 그런 독자들을 비웃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이해받지 못하는 문학을 하는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천박한 시선을 피하실 양이었으면 아예 출간을 안 하셨으면 되잖습니까?"

"그건 너무 단순한 방법이잖소. 암, 최고로 세련된 방법이란 건 말이오, 수백만 부가 팔려도 읽는 사람이 없게끔 글을 쓰는 거요."

(...중략...)

"돈을 좋아하시다고요? 선생님 같은 분께서요?"

"암, 예쁘니까. 쓸모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오. 5프랑짜리 동전은 데이지 꽃처럼 깜찍하지."

"저 같으면 그런 비유는 생각해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당연하지. 기자 양반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아니니까."


"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책을 읽을 거라 생각했소. 나는 음식을 먹듯 책을 읽는다오. 무슨 뜻인고 하니, 내가 책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책이 나를 구성하는 것들 안으로 들어와서 그것들을 변화시킨다는 거지. (...) 대부분 사람들은 프루스트를 읽건 심농을 읽건 한결같은 상태로 책에서 빠져 나오거든. 예전 상태에서 조금도 잃어버린 것 없이, 조금도 더한 것 없이. 그냥 읽은거지."


"'사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해도 잊어버린다.' 이토록 실상을 명쾌하게 요약하는 말이 어디 있겠소. 안 그러오?"

: 독자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발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담은 뜻에 대해 묻고 나누는 사람 없이 자신이 주목 받는다면 가능한 평가이기도 하다.


"이 시대만큼 가증스러운 시대는 없었다오. 한마디로 허위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시대요. 허위적인 건 불성실하거나 이중적이거나 사악한 것보다 더 나쁘지. 허위적이라는 건 우런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 남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지. 암, 아니고 말고. 사이비 거짓말, '라이트'한 거짓말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미소를 띤 채로 욕을 해댄다고. 호의를 베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오."


"인간 감정의 밑바닥을 보고 싶거들랑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에 대해 관찰해보시오. 그 지독한 위선과 질투와 악의와 비열함에 몸서리를 치게 될 거요. 여자들 둘이서 건강하게 주먹질을 해대며 싸우거나 억세게 욕지거리를 퍼부어대는 걸 본 적은 없을 거요. 여자들의 주무기는 비겁함이오. 야비한 말을 쏘아대는데 그게 턱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는 것보다 훨씬 나쁘지."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작가의 일이란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란 말씀이십니까?"


"좀 단순화하시는 것 같은데요?"

"아니 기자 양반,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내가 사람이 어질다 보니 기자 양반의 수준에 맞추려 한 걸 가지고!"


"그러니까, 불알이란 어떤 개인이 제 주변에 만연한 허위적인 것들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오. 과학적이잖소?"


"입술은 두 가지 역할을 하오. 첫째, 말을 관능적인 행위로 만들어준다오. (...) 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 그게 바로 입술의 두번째 역할이오.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지 못하게 입을 다물게 해 준다는 거지."

: 입술의 두 역할. 말을 아름답게 하거나, 더러운 말을 막거나.


"딱히 추잡한 것들을 말해선 안 된다는 게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지. 자기 안에 깃들인 추잡함에 대해서는 언제든 이야기를 해야 하오. 그건 건전하고 유쾌하며 원기를 돋워주는 일이지. 암,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은 다른 차원에 속하는 것들이오...... 그게 뭔지 성명해줄 거라곤 기대하지 마시오. 그것이야말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말이오."


"글을 쓰면서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작가는 당장 절필해야 하오. 쾌감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글을 쓴다는 건 패륜이오."


"그렇게 책을 사서 읽는 불운아들이 얼마나 지루할지, 책을 사놓고도 읽지 않는 파렴치한들이 얼마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지, 읽으면서도 이해 못 하는 속 좋은 멍청이들이 얼마나 울적할지, 끝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독서 혹은 비독서와 결부된 대화가 얼마나 거만함으로 가득할지. 그리고 또 기타 등등하며! 그러니 나한테 글쓰기가 강간처럼 해롭지 않다느니 하는 얘기일랑 하지 마시오."


"글을 쓰면서 얼마나 자주 느꼈는지 아시오? 손이 손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야릇한 느낌, 손이 두뇌에게 자문을 구하는 일 없이 혼자서 술술 미끄러져 가는 듯한 그 야릇한 느낌을?"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요. 사랑을요."

"그런 건 심장이랑 아무 상관없소. 불알이며 자지며 입술이며 손 등이랑 관련된 것이지. 그거면 충분하오."

"너무 냉소적이십니다. 그 말씀에 대해선 절대 동의할 수가 없군요."

"그러니 아무도 기자 양반의 견해엔 관심을 갖지 않는 거요."

: 감정적인 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 더 자연적인 것에 대해서 써야 한다는 주장


"난 누군가를 흠씬 두들겨 패는 걸 감정이라 하지. 기자 양반은 여성 잡지의 <연애 상담>란이다 징징대는 걸 감정이라 하고."

"선생님께 후자는 뭡니까?"

"난 그런 걸 두고 기분이라고 하오. 기분이란, 인간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허위로 꽉 찬 깜찍한 이야기오. 인간의 존엄성을 획득했다고 느끼기 위해서, 응가를 하는 순간에도 정신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기 위해서 말이오."

: 감정은 기분보다 각 개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것이다.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고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의미화 되는 것. 기분은 그냥 혼자 해소하고 마는 단선적인 것.


"여자는 남의 삶을 파괴하는 걸 탁월한 정신력을 입증하는 일로 여기거든. '나는 남의 삶을 어지럽힌다. 고로 나는 영혼이 있다.' 이런 식으로 추론하는 거요."

: 정신분석학에서 히스테리가 여성에게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부분.


"박사 과정 학생들, 참 귀여운 녀석들이오. 대가들을 흉내낸답시고 제목만 복잡다단하고 내용은 시시하기 짝이 없는 바보 같은 글을 써댄다니까. 꼭 잘난 체하는 레스토랑에서 삶은 달걀에 마요네즈를 뿌려 내놓으면서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이는 거나 매한가지지."


"난, 오직 나 자신만을 대표해서 기자 양반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소. 나를 보증할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데, 난 기자 양반의 기준에 맞추지 않겠소. 그리고 내 사생활에 있어 어떤 걸 비밀로 할지, 어떤 걸 비밀로 하지 않을지는 내가 정할 거요. 난 동정 같은 것에는 일절 신경쓰지 않는다오."

: 내만이 나 자신을 대표한다는 자세를 갖기 쉽지 않으나, 매우 당연하고 모두가 가져야 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고독은 축복이오. 당신네들이 노는 진흙탕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게 해주니까. 내 삶은 추하오. 하지만 당신네들의 삶보단 낫소."


"그랬겠죠. 하지만 천재 밑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경험 아니겠어요."

"천재라는 게 괜찮은 핑곗거리가 되는군요."


인터뷰 #5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아무도 선생님의 책을 사지 않죠. 지금으로선 막말과 욕설만이 선생님의 존재를 세상에 환기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건 저한테도 아주 재미난 놀이였답니다. 허위를 깨부수기 위해 투쟁하노라고 주장하는 작가의 글 곳곳에서 허위의식을 찾아낼 수 있었던 건 정말 유쾌한 경험이었으니까요."


"허위에 허위로 맞서는 것, 지적인 테러로 맞서는 것, 적보다 훨씬 더 음흉스러워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탁월한 전략 아닙니까. 어쩌면 지나치게 탁월하다고 할 수 있죠."


"나머지는 사실상 전적으로 내 작품이오. 그 당시엔 내 인생이 내가 가진 유일한 종이였고 내 피가 내가 가진 유일한 잉크였으니까."


"믿어질지 모르겠소만 난 어려서는 늙은이 같았고 늙어서는 어린애 같아졌소. 내 기질은 결코 변한 적이 없거든."


"당신은 나를 살인자로 생각하지만 사실 난 아무도 죽인 적 없는 지구상에 몇 안되는 인간들 중 하나라오. 당신 주변을, 그리고 당신 자신을 바라보시오. 이 세상은 살인자들로 득실대고 있소.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놓고 그 사람을 쉽사리 잊어버리는 사람들 말이오. 누군가를 잊어버린다는 것,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소?"


"그애는 전적으로 동의했소."

"선생님을 사랑했던 거겠죠."

"나도 그애를 사랑했다오."

"선생님 방식대로였겠죠."

"내 방식이 마음에 안 드시나 보오?"

"에둘러 말한 겁니다."


"그 누구도......아시겠소......그 누구도 사람을 죽여보지 않고는 사람에 대해 잘 아노라고 말할 수 없는 법이오."


"이목구비가 어찌나 티 없이 반듯하고 몸매가 어찌나 호리호리한지, 개다가 얼마나 중성적인 모습인지......천사가 따로 없더군요."

: 중성은 완벽/완성에 가까운 걸까?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부여되는 어떤 성(性)이 우리에게 박탈해가는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의 성을 갖게 되면서 다른 한 성을 갈망하며 산다. 이성(異性)을 갈망할 필요 없는 것은 양성 혹은 중성일 것이다.


"하찮은 둔탱이, 이 프레텍스타 타슈에게 쓰기 힘든 건 없소!"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그 용두사미 격의 결말 부재가 더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당신이 뭔데 내 결정에 대해 부조리하다고 단정하는 거요?"

"전 단정하는 게 아니라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사이비 독자들은 잠수복을 갖춰 입고, 유혈이 낭자한 내 문장들 사이를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유유히 지나가게 마련이거든. 가끔씩 탄성을 지르기도 할 거요. '멋진 상징인걸!' 이런 게 이른바 깔끔한 독서란 거요. 기막힌 독서법이지."

: 타슈가 일관적으로 비웃고 조롱하는 독자란 이런 것이다. 니체가 말했던 책은 도끼가 되어 독자를 부수어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영향을 받지 않는 독자, 읽고 잊는 독자의 독서 행위는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기 힘든 것이다.기교와 구조에 감탄하면서 평론만 해대는 이들은 독자가 아니라 한다.


"당신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이오? 당신이 살아 있는지 아닌지, 당신이 행복한지 아닌지? 당신은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잖소. 당신이 어린시절을 지상 낙원이서 보냈다면 모를까. 레오폴딘과 나처럼 말이오."

"아, 됐습니다. 특별한 경우로 자처한, 마세요. 아이들은 다 행복하게 마련이니까요."

: 니나의 말도, 타슈의 말도 맞다. 헌데, 지상 낙원에서만 자란다면 행복을 알 수 있을까? 불행을 알아야 행복이 행복인 줄을 알지 않을까.


"대개의 살인자들이란 희생자의 피를 보게 마련인데, 난 피를 보기는 커녕 난 레오폴딘을 죽여서 계속 되풀이될 출혈을 미리 막아주었을 뿐 아니라 그애를 원초적인 불멸의 상태, 출혈이 없는 불멸의 상태로 되돌려놓았잖소."


"난 생각하오. 이 호수야말로 레오폴딘에게 어울리는 수의라고 말이오."


"그들을 비탄에 빠뜨린 건 레오폴딘 드 플라네즈 드 생 쉴피스가 아니라 레오폴딘 위고며 오필리아며 기타 등등, 물에 빠져 죽은 비련의 여주인공들이었지. 그들에게 앨리우스의 꼬마 사제는 추상적인 관념으로서의 시체, 달리 말해 순수하게 문화적인 현상이었소. 그러니 그들이 그애의 죽음을 애통해하면 할수록 그들이 감수성까지도 철저히 문명화되어 있다는 사실만 계속 드러날 뿐이었다오. 암, 진짜 레오폴딘을 알고 있었던 사람, 그애의 죽음을 슬퍼할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던 사람은 단 한 사람, 나뿐이었다오."


"정해진 형태도 의미도 없는 우주와 마주하여 작가는 조물주 노릇을 할 수밖에 없소. 작가가 대단한 글재주로 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지 않는 한, 사물들은 제 윤곽을 지니니 못할 테고 인간의 역사 또한 놀란 입만 쩍 벌리고 있게 될 거요."


"죄송합니다, 타슈 선생님. 그럼 자수하시죠. 전 남이 던져주는 빵은 먹지 않는답니다."

"그런 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거요? 당신은 최악의 부류에 속하오. 파멸시키기보단 더럽히기 좋아하는 부류 말이오."


"뜻밖이군요 . 죽기 위해 죽는 것, 즉 멋진 살인을 당하는 게 암에 걸려 골골거리다 죽는 것보다 낫지 않아요?"

"이게 무슨 멋진 살인이오?"

"살인자의 눈엔 모든 살인이 멋있게 보이는 법이죠. 불평은 희생자가 하는 것이고. 지금도 죽음이 예술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신경쓰이십니까? 아니라고 고백하시죠."


"어제까지만 해도 내게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이었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다만 사라지는 것이 불과했지. 그 죽음이란 것과 죽어가는 순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모르고 있었던 거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른단 말이오?"


"그 동사(사랑하다)는 단수 주어만 가질 수 있다는 말이오. 복수 주어를 갖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는 단수 주어가 복수 주어로 위장되어 있는 것뿐이라오."


신에게로 향하는 길은 뚫기 힘들다. 그보다 더 뚫기 힘든 것이 성공으로 향하는 길이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부터 프레텍스타 타슈의 책을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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