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동생이 있다. 남동생. 나보다 3살 어린......
동생은 나와 달리 태어나기 전부터 모두가 태어나길 바랐던 아이였다. 남자애이기 때문에. 동생이 태어난 날에 할머니는 택시를 타고 병원까지 오셨다고 한다. 사촌들을 모두 합쳐서 태어난 당일날 할머니가 얼굴 보러 병원에 간 건 동생뿐이었다.
할머니는 항상 동생만 찾았다. 같이 가면 항상 동생 이름만 부르며 인사를 건네셨다. 사촌들과 함께 있어도 항상 인사를 하는 건 동생뿐이었다. 그리고 시골에선 음력으로 생일을 챙겼기 때문에 추석마다 항상 내 생일이었지만 '참, 너 오늘 생일이지?'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축하도 없었고, 생일을 안 이후에는 너가 추석에 태어나서 엄마를 얼마나 고생시켰는지에 대해서만 들어야 했다. 동생은 생일이 설날이랑 가깝지만 항상 그 전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는데, 한 번은 어쩌다 보니 동생과 할머니 댁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고모들에게 미역과 고기를 사오라고 전화까지 하시고 얼른 오라고 재촉까지 하셨다. 그리고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한상 가득 차려주시면서 생일을 축하해주셨다.
엄마도 별로 다르진 않았다. 항상 동생만 챙겼다. 항상 동생이 좋아하는 거, 동생 몫만 챙기셨다. 둘 다 잘못해도 내가 혼났고, 동생이 잘못해도 내가 혼났다. 가끔씩 성적을 가지고 엄마와 내기를 걸 때가 있었는데, 난 목표를 넘어서도 항상 트집을 잡으며 안 사주셨다. 하지만 동생은 목표에 미치지 못해도 열심히 한다고 수고했다며 약속했던 선물을 사주시곤 했다. 그리고 나에겐 항상 성적으로 혼을 내셨지만 동생은 못해도 뭐라 하시진 않으셨다.
아빠는 동생을 대놓고 더 좋아하는 티는 내지 않으셨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빠가 나를 좋아하나?'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내 착각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나에게 말해주길 동생이 게을러서 그 점이 좀 싫은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게 동생이 아빠 성격이었거나 내가 아빠 성격이랑 안 비슷했으면 난 쳐다도 보지 않았을 거라고 말해주셨다. 즉, 동생이 성에 다 차지 않은 덕분에 아빠가 동생에게 잔소리를 해댄 거고, 난 아빠 성에는 조금 차는 정도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혼이 덜 난 것뿐이었다.
난 그래서 동생이 부모님이랑 있어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엄마가 너무 감정적이라 동생에게도 아주 가끔 그렇게 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잘해주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난 대학에 가게 되면서 내 생각밖에 안 했다. 나만 지옥에서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만 탈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떠난 뒤에 그 지옥은 동생이 겪어야 했다.
물론 나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 그건 부모님도 인정했다. 동생이 못할 때만 혼을 낸 정도였지만 동생이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내가 있을 땐 혼도 나지 않았고, 성적에 대한 관심을 부모님이 동생에게 갖지 않았는데, 내가 사라지니 그 관심은 모두 동생에게로 갔다. 못하면 혼나는 수준이었지만 동생은 갑자기 늘어난 잔소리와 관심에 버거워했다. 그리고 그쯤 부모님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동생말로는 거의 매일 싸우고 집에서 큰소리가 났다고 한다.
동생을 그 길로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부모님한테 대들기 시작했다.
한 번은 내가 동생과 얘기를 했었다. 동생에게 부모님이 잘못하는 것도 있지만 너도 이런 면은 잘못하지 않았냐, 그리고 너는 부모님이 예뻐라 하니깐 이렇게만 말해도 부모님이 미안하다고 하실 거다라고 말했더니 동생은
"내가 오히려 차별받았지!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나도 못했잖아!"
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게 있었냐고 해서 들어보니 자기가 노력을 안 해서 결과가 안 나와서 못한 걸 차별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로 수능 성적이 서울에 웬만한 대학에는 못 넣는 수준이었다. 전문대도 넣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는데 동생이 서울로 가겠다고 우겼었다. 그때 부모님이 그냥 가까운 곳에서 다니라고 했더니 누나는 보내주고 난 왜 안 보내주냐고 따졌었다. 동생은 그게 차별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는 나는 동생에게 이런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