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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 Oct 06. 2015

유리가면

난 그날 이후로 가면을 좀 더 제대로 썼던 것 같다. 좀 더 밝은 모습으로... 아무 일 걱정 없는 것처럼. 걱정을 한다고 해도 보통의 내 또래들이 할 만한 걸로. 그리고 우리 집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그리고 나에게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 가면은 유리가면 같아서 언제든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너무나 쉽게 가면을 깨뜨려버렸다. 


그 전에 나는 학교 상담소에 상담 신청을 했었다. 몇 개월을 기다려 상담 시작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난 힘들었던 얘기를 했지만, 내 감정을 거의 숨겼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상담사분도 친절하게 내 말을 들고 주고 같이 걱정해주고, 공감해주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치유되는 마음이 조금 생겼지만 그건 상담실에 있는 일주일에 단 한 시간뿐이었다.  그때만 이뤄지는 마법 같았다. 상담실 밖으로 나가면 나는 다시 우울해졌다. 하지만 밖에선 웃으며 괜찮은 척을 했다. 주변에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함께 신나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은 점점 더 비어갔다. 거의 다 텅 비어 살짝만 충격을 주어도 부서질쯤 그 애와 다시 마주쳤다. 


나는 그 애를 보자마자 겁이 났다. 그 애가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했던 일도 그때 느꼈던 감정도... 내가 무너질 거란 걸 알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러한 일을 겪었다고, 도와달라고. 하지만 나는 그 애와 다시 마주쳤고, 모든 게 부서져졌다.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내가 그 해 초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 순간 모둔 게 부서져 내렸다. 더 이상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이 무서워졌다. 믿을 수 없으니까 무서워졌다. 그리고 무기력해졌다. 뭘 해도 안될 것 같았다. 난 죽는 것조차 실패한 사람이었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대로 집안에서 나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먹지도 못했고, 마시지도 못했다. 무언가를 먹거나 하면 모조리 토해버렸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멍하니 있거나 잠을 자는 것밖에 없었다.


4일이 지났다. 날 찾으러 온 사람이 있었다. 학교 친구들이었다. 제대로 말도 못한 체 나는 다시 병원에 가게 되었다. 친구들은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부모님이 병원으로 왔다. 그때 나는 다시 사색이 되었다. 그립거나 반갑지 않았다. 무섭고, 소름 끼쳤다. 엄마는 눈물을 흘렸고, 아빠도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친근한 척을 했다. 너무 가식적인 모습에 나는 더 무서워졌다.


입원을 했다. 검사도 받았고, 상담도 받았다. 상담 전에 우울증 환자이고, 자살시도자이기 때문에 병실에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남기로 했다. 내가 싫다고 의사에게 말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24시간을 엄마와 같은 장소에서 함께 있어야 했다. 거기다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소름 끼쳐서 도저히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땐 계속 울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했지만 둘만 남게 되면 말도 걸지 않았다. 말을 한다고 해도 


"너 때문에 이 무슨 고생이냐."

"너 때문에 놀러도 못 가고... 친구들은 다 놀러 가는데."

"너 때문에 병원비 엄청 깨지게 생겼다. 이젠 괜찮을 쯤 되지 않았나?"

"그깟 남자 하나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해야 하니?"


입원한 지 2일째부터 엄마는 저런 말들을 내게  계속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들어야 했다. 엄마에겐 반성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좋은 핑계가 되어서 쉴 수 있게 되었고, 남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이렇게 말을 한다고 내가 아무리 말해보아도 이미 의사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말하면 약만 바꿔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곳도 나를 도와줄 곳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24시간 엄마랑 같이 있어야 하는 사실이 제일 끔찍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괜찮은 척을 하는 것뿐이었다. 얼른 괜찮아져서, 멀쩡해 보여야 잠시라도 엄마와 떨어질 수 있었다. 적어도 그 가식적인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가면을 썼다. 괜찮은 척을 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괜찮은 척 말도 하고 웃어도 보였다. 그리고 다 괜찮다고 말했다. 다 괜찮다고 말하니 병원에선 3주 만에 날 풀어주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끔찍했지만 병원에서의 상황보단 훨씬 나았다. 집에서도 불안 때문에 조금만 소리가 들려도 잠을 못 자고 수면유도제를 먹는데도 불면증에 시달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더 최선은 얼른 내가 완전히 독립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더욱 멀쩡한 척을 해야 했다. 아니 난 괜찮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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