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불면증은 있었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잘 수 없다 보니 자연스레 잠이 잘 안 오게 되었다. 친구들은 잠을 자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잠에 드는 게 싫었다. 어차피 잠을 자도 불안해서 금방 깨기도 했고 악몽도 곧잘 꾸었다. 수업시간에도 거의 졸은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이 자지 못했다.
대학생이 되었다. 혼자 살게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뒤척이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잠도 늘었다. 대학생 때는 많이 잘 때는 7~8시간을 잤다. 잠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마음 편히 안심하고 잘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끔 집에서 연락이 오거나 엄마와 다툼이 있을 땐 다시 수면 시간이 줄었다.
다시 집에 내려왔다. 수면시간이 줄었다. 밤을 지새우는 날도 다시 생겼다. 잠을 아예 자지 않으면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기 때문에 무조건 하루에 최소 3시간 정도는 자던 나였는데 집에선 잘 수가 없었다. 더욱이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내 방이 안방과 바로 옆에 위치하면서 나는 더 잠에 들 수 없었다. 안방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어도 깼다. 귀마개를 끼거나 이어폰을 끼고 노래도 들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온통 신경이 안방에 가 있었다. 자주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가 났다. 가끔 무언가 깨지는 소리도 났다. 그럴 땐 더 잘 수 없었다. 언제 불똥이 나에게 튈지 몰랐다. 쪼그려 앉아 덜덜 떨었다. 다행히 20살이 넘은 뒤로는 날 물리적으론 때리진 않았다. 하지만 말로 때리는 건 여전했다.
이따금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릴 때가 있었다. 엄마였다. 그리고 엄마는 내 방에 들어와 앉아 나를 앉혀놓고는 술을 마시며 아빠욕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욕의 끝은 나였다.
"너가 안 태어났으면 더 행복했을 텐데 말이야."
"너 태어나는 거 다들 싫어했지. 누가 좋아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지."
듣기 싫은 말이었지만 가만히 들어야 했다. 내가 제대로 듣지 않거나 무시하는 것 같은 행동을 보이면 엄마는 욕을 하며 나를 때렸었다. 학창시절에 이미 이런 경험들이 많아서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았다. 그리고 엄마 손엔 맥주병과 유리컵이 있었다. 가만히 있어야 했다. 듣기 싫은 말이지만 알고 있다는 듯이 동의한다는 듯이 표정을 짓곤 억지로 들어야 했다. 몇 시간이고 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술이 떨어지기나 엄마가 잠이 오면 해방될 수 있었다. 간혹 엄마가 내 방에서 잔다고 하는 날엔 끔찍했다. 자는 척을 하다 엄마가 자는 걸 확인하고 거실에서 잤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점점 늘어갔다.
방문을 잠그고 싶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평소에도 불안해서 잘 수가 없었고, 문을 열자마자 엄마가 나를 때릴 수도 있기 때문에 더 불안했다. 한 번은 엄마, 아빠가 크게 싸우는 소리가 났다. 평소보다 훨씬 큰소리가 나서 무서웠다. 문을 잠갔다. 한참 뒤 엄마가 내 방문을 열라고 했다. 방문이 닫혀있는 걸 알자 엄마는 문을 부술 듯이 두들겼다. 큰소리로 욕까지 하며 문을 두들겼다. 별 수 없이 난 문을 열어줘야 했다. 그리고 다시 욕을 먹으며 해가 뜰 때까지 앉아있어야 했다.
한 번 문을 잠근 뒤로는 문만 닫아도 엄마가 욕을 하거나 예민하게 반응을 했다.
잠이 다시 줄었다. 학생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6시간 이상은 잠들지 못했다. 잠귀는 더 예민해져 갔다. 매일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왜 나는 맞설 생각도 못하고 무서워만 할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맞서긴 힘들었다. 다른 이유로 자책이 늘어났다. 자책이 늘어날수록 불면증은 더 심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