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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빠가 증거를 잡기 위해서라며 엄마가 주로 운전해 다니는 차에 GPS 장치를 달았었다. 그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엄마가 그 남자가 모텔에서 함께 나오는 장면까지 잡았다고 했다.
아빠가 따지고 들자 엄마는 뻔뻔하게 날 미행했냐며 따지고 들고 아빠가 그 남자를 때리자 때리지 말라며 막아서기 까지 한 모양이었다.
그날 아빠가 먼저 씩씩되면서 들어오더니 나에게 이 얘기를 해주었고 모르는 척 하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10분 뒤에 엄마가 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여기서부터 이해가 안되었다.
나 같았으면 바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고 내쫓았을 텐데......
아빠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기까지 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가 이혼하기로 제대로 마음 먹은 건 그 뒤로부터 일주일 뒤인 추석을 1주일 남겨둔 때였다.
아빠는 그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 아빠가 서로 말을 더 안 할 뿐 겉으로는 평소랑 똑같았다.
너무 태평스러워 아무 일이 없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아빠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에게 하는 말이 엄마가 차례를 지내면 추석 때 조용히 넘어가고 차례 준비를 하지 않으면 친척들 앞에서 다 말해버리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내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례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었다. 심지어 우리 집이 종가집도 아니었다.
엄마는 당연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으니 미련하게 차례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아빠는 당연히 조용히 넘어갈 것 같았다.
난 그때부터 주변에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취업한지 한 달이 겨우 지나 월급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집에 있기 싫었다.
돈이야 안 모으면 되고, 결혼이야 포기하면 되었다.
남들도 다른 이유로 포기하는데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추석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아빠도 평소처럼 행동했고,
엄마도 평소처럼 행동했다.
나도 평소처럼 행동했다.
예년처럼 차례를 지냈고, 예년과 같은 추석날 아침이 지나갔다.
조금 다르다면 아빠가 성묘를 안 갔다는 정도?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없었다.
나는 계속 집을 구하고 있었지만 얼마 안 되는 돈에
보증금도 없이 집을 구하기란 힘이 들었다.
지방이라 서울에 비해 월세가 싼 편인데도 보증금 때문에 막막했다.
고시텔도 여기저기 둘러보며 퇴근한 후에는 집을 쭉 보러 다녔지만 마땅한 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일주일 후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전화 벨소리에 잠에서 깼다.
발신자를 보니 엄마였다.
통화를 거절하자 또다시 전화가 왔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안방으로 오라고 말했다.
안방으로 갔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서 손을 까닥거렸다.
오라는 신호였다.
방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자 엄마는 물컵을 들고 까딱거렸다.
물을 떠 오란 소리였다.
그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되어있는 상황이지만
아침부터 바로 옆방에 있는데 전화해서 깨우는 상황도 화가 났고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척하는 것에도 화가 났다.
혀끝까지 욕이 차올랐지만 차마 할 수는 없었다.
화를 억누르며 가만히 서있으면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빠가 나에게 방으로 들어가라고 말했고
나는 주저 없이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엄마가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큰소리로 아빠에게 물도 못 떠오게 하느냐고 따져되니
아빠가 '내 딸에게 그런 거 시키지 마라!'라고 했다.
내 딸이라....
아파서 곧 죽을 거 같다던 엄마는 있는 대로 소리를 치며
아빠를 때리기 까지 했다.
물 떠주는 그것 하나 못해주냐면서.
아빠는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고 했고
둘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워되었다.
나는 이부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손에 휴대폰을 들고
인터넷으로 집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얼른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