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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 Oct 28. 2015

다시 혼자

(4)

사실 아빠가 증거를 잡기 위해서라며 엄마가 주로 운전해 다니는 차에 GPS 장치를 달았었다. 그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엄마가 그 남자가 모텔에서 함께 나오는 장면까지 잡았다고 했다.

아빠가 따지고 들자 엄마는 뻔뻔하게 날 미행했냐며 따지고 들고 아빠가 그 남자를 때리자 때리지 말라며 막아서기 까지 한 모양이었다.

그날 아빠가 먼저 씩씩되면서 들어오더니 나에게 이 얘기를 해주었고 모르는 척 하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10분 뒤에 엄마가 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여기서부터 이해가 안되었다.

나 같았으면 바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고 내쫓았을 텐데......

아빠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기까지 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가 이혼하기로 제대로 마음 먹은 건 그 뒤로부터 일주일 뒤인 추석을 1주일 남겨둔 때였다.

아빠는 그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 아빠가 서로 말을 더 안 할 뿐 겉으로는 평소랑 똑같았다.


너무 태평스러워 아무 일이 없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아빠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에게 하는 말이 엄마가 차례를 지내면 추석 때 조용히 넘어가고 차례 준비를 하지 않으면 친척들 앞에서 다 말해버리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내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례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었다. 심지어 우리 집이 종가집도 아니었다.

엄마는 당연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으니 미련하게 차례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아빠는 당연히 조용히 넘어갈 것 같았다.


난 그때부터 주변에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취업한지 한 달이 겨우 지나 월급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집에 있기 싫었다.

돈이야 안 모으면 되고, 결혼이야 포기하면 되었다.

남들도 다른 이유로 포기하는데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추석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아빠도 평소처럼 행동했고,

엄마도 평소처럼 행동했다.

나도 평소처럼 행동했다.


예년처럼 차례를 지냈고, 예년과 같은 추석날 아침이 지나갔다.

조금 다르다면 아빠가 성묘를 안 갔다는 정도?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없었다.


나는 계속 집을 구하고 있었지만 얼마 안 되는 돈에 

보증금도 없이 집을 구하기란 힘이 들었다.

지방이라 서울에 비해 월세가 싼 편인데도 보증금 때문에 막막했다.

고시텔도 여기저기 둘러보며 퇴근한 후에는 집을 쭉 보러 다녔지만 마땅한 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일주일 후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전화 벨소리에 잠에서 깼다.

발신자를 보니 엄마였다.

통화를 거절하자 또다시 전화가 왔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안방으로 오라고 말했다.


안방으로 갔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서 손을 까닥거렸다.

오라는 신호였다.

방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자 엄마는 물컵을 들고 까딱거렸다.

물을  떠 오란 소리였다.


그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되어있는 상황이지만

아침부터 바로 옆방에 있는데 전화해서 깨우는 상황도 화가 났고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척하는 것에도 화가 났다.

혀끝까지 욕이 차올랐지만 차마 할 수는 없었다.

화를 억누르며 가만히 서있으면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빠가 나에게 방으로 들어가라고 말했고

나는 주저 없이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엄마가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큰소리로 아빠에게 물도 못 떠오게 하느냐고 따져되니 

아빠가 '내 딸에게 그런 거 시키지 마라!'라고 했다.

내 딸이라....


아파서 곧 죽을 거 같다던 엄마는 있는 대로 소리를 치며 

아빠를 때리기 까지 했다.

물 떠주는 그것 하나 못해주냐면서.

아빠는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고 했고

둘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워되었다.


나는 이부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손에 휴대폰을 들고 

인터넷으로 집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얼른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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