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z Oct 28. 2015

다시 혼자

(4)

사실 아빠가 증거를 잡기 위해서라며 엄마가 주로 운전해 다니는 차에 GPS 장치를 달았었다. 그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엄마가 그 남자가 모텔에서 함께 나오는 장면까지 잡았다고 했다.

아빠가 따지고 들자 엄마는 뻔뻔하게 날 미행했냐며 따지고 들고 아빠가 그 남자를 때리자 때리지 말라며 막아서기 까지 한 모양이었다.

그날 아빠가 먼저 씩씩되면서 들어오더니 나에게 이 얘기를 해주었고 모르는 척 하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10분 뒤에 엄마가 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여기서부터 이해가 안되었다.

나 같았으면 바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고 내쫓았을 텐데......

아빠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기까지 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가 이혼하기로 제대로 마음 먹은 건 그 뒤로부터 일주일 뒤인 추석을 1주일 남겨둔 때였다.

아빠는 그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 아빠가 서로 말을 더 안 할 뿐 겉으로는 평소랑 똑같았다.


너무 태평스러워 아무 일이 없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아빠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에게 하는 말이 엄마가 차례를 지내면 추석 때 조용히 넘어가고 차례 준비를 하지 않으면 친척들 앞에서 다 말해버리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내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례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었다. 심지어 우리 집이 종가집도 아니었다.

엄마는 당연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으니 미련하게 차례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아빠는 당연히 조용히 넘어갈 것 같았다.


난 그때부터 주변에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취업한지 한 달이 겨우 지나 월급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집에 있기 싫었다.

돈이야 안 모으면 되고, 결혼이야 포기하면 되었다.

남들도 다른 이유로 포기하는데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추석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아빠도 평소처럼 행동했고,

엄마도 평소처럼 행동했다.

나도 평소처럼 행동했다.


예년처럼 차례를 지냈고, 예년과 같은 추석날 아침이 지나갔다.

조금 다르다면 아빠가 성묘를 안 갔다는 정도?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없었다.


나는 계속 집을 구하고 있었지만 얼마 안 되는 돈에 

보증금도 없이 집을 구하기란 힘이 들었다.

지방이라 서울에 비해 월세가 싼 편인데도 보증금 때문에 막막했다.

고시텔도 여기저기 둘러보며 퇴근한 후에는 집을 쭉 보러 다녔지만 마땅한 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일주일 후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전화 벨소리에 잠에서 깼다.

발신자를 보니 엄마였다.

통화를 거절하자 또다시 전화가 왔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안방으로 오라고 말했다.


안방으로 갔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서 손을 까닥거렸다.

오라는 신호였다.

방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자 엄마는 물컵을 들고 까딱거렸다.

물을  떠 오란 소리였다.


그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되어있는 상황이지만

아침부터 바로 옆방에 있는데 전화해서 깨우는 상황도 화가 났고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척하는 것에도 화가 났다.

혀끝까지 욕이 차올랐지만 차마 할 수는 없었다.

화를 억누르며 가만히 서있으면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빠가 나에게 방으로 들어가라고 말했고

나는 주저 없이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엄마가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큰소리로 아빠에게 물도 못 떠오게 하느냐고 따져되니 

아빠가 '내 딸에게 그런 거 시키지 마라!'라고 했다.

내 딸이라....


아파서 곧 죽을 거 같다던 엄마는 있는 대로 소리를 치며 

아빠를 때리기 까지 했다.

물 떠주는 그것 하나 못해주냐면서.

아빠는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고 했고

둘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워되었다.


나는 이부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손에 휴대폰을 들고 

인터넷으로 집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얼른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