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z Sep 17. 2015

선물

추석이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았다. 엄마는 그걸 알자마자 나에게 식사와 선물을 사줄 것을 요구했지만 못 들은 척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난 선물을 받는 것도 좋아하지만 선물은 주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선물 받을 사람이 받으면 기뻐할 만한 것을 생각해내고  선물해주고...... 선물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게 좋았다. 정확히는 나로 인해 남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선물 받은 사람이  행복해하며 웃는 것을 보면 '나도 남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구나.', '나도 쓸모가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받는 사람이 기분이 더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 선물도 수고스럽고 귀찮더라도 제일 기뻐할 만한 걸로 정해 주었고, 줄 때에도 좀 더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선물을 주었다. 특히 이성친구를 사귈 때에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선 최대한으로 해주려고 노력했다. 


부모님도 선물을 드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부모님 생신, 결혼기념일,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웬만한 기념일들은 빠지지 않고 드렸다. 내가 드리지 않으려고 해도 기념일 며칠 전부터 부모님은 나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돌려서 말씀하시기도 했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항상 선물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내가 바보 같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아빠는 내가 선물을 드리면 항상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셨고, 내가 드리지 않아도 별말씀하지 않으셨다. 역시나 엄마가 문제였다. 동생에게 선물을 못 받는 건 '그럴 수도 있지.'였지만 내가 드리지 않으면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년'이 되었다. 선물을 드리면 내가 사서 드릴 때까지 비아냥거리셨다. 그게 너무 스트레스라 미리 선물 준비해 드리곤 했는데 엄마의 태도는 내가 더 선물을 드리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선물을 드리면 기뻐하시긴커녕 고맙다는 말도 없이 일단  스윽하고 눈으로 선물을 쳐다보신다. 포장에 쌓여있어도 별로 비싸 보이지 않는 거면(최소 15만 원 이상인 물건을 원하시는 것 같다.) 치우라고 하신다.(전에는 그냥 스윽 보고 바로 환불해라고 하신 적도 있었다.) 포장은 좀 비싸 보이는데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물건이면 포장까진 풀어보곤 하셨다. 그리곤 바로 옆으로 치워버리는 경우가 많으셨다. 학생이고, 사회 초년생이 매번 15만 원 이상 선물을 사기도 힘들었다. 특히 초반에는 자취하는 학생이었다. 아르바이트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주시던 생활비도 끊어버리셨기 때문에 생활비를 쪼개서 겨우 산 것들이었지만 엄마는 그런 걸 생각조차 안 하시는 듯했다. 


내가 만들어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전에 아빠께 십자수로 주차쿠션을 만들어 드렸더니 엄마가 같은 걸 선물로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아빠 것보다 더 힘든 도안으로 만들어 보내드렸는데, 배송해서 보내는 동안 엄마가 휴대폰 번호를 바꾸셨다. 선물이 택배로 도착했을 때가 되어서 전화를 드리니 그 새 번호가 바뀌어서 필요 없게 되었다고 그대로 버리셨다고 했다. 착신전환서비스는 1년이나 신청해놓으셨는데 말이다. 


난 그 뒤로는 엄마에게 선물을 드리지 않는다. 지금 후회되는 건 내가 왜 좀 더 빨리 그러지 못했냐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