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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 Sep 15. 2015

그 날...

엄마는 화가 나서 날 더 세게 때렸다. 나에게 내뱉는 말도 강도가 더 세어졌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말이 더 정확하게 내 가슴에 꽂혔다. 정신없이 맞는 와중에도 엄마가 내뱉는 말들은 신기하게 귓속으로 정확하게 들어와 나를 들쑤셨다. 자주 듣던 말들이라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마음이 아팠다. 눈물이 나 도 모르게 새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운다고 엄마가 더 화낼지 모르니까 꾹 참아야 했다.


때리지 말라는 반항도 못하고 바보같이 미련하게 맞고만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내뱉은 말에 나도 모르게 엄마를 밀치고 벌떡 일어났다.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네 아빠랑 할머니가 지우라고 했을 때 지워버릴걸! 그랬으면 이 고생을 안 해도 됐는데!  이 꼴도 안 봐도 됐는데!"


아무리 내가 태어나는 걸 반기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걸 직접 말로 듣는 건 얼핏 들은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를 밀치고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나는 나를 때리려는 엄마의 양 손목을 붙잡고 소리쳤다.


"누군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줄 알어? 이렇게 대할 거면 왜 낳았어!"


상처받으라고 한 말이었다. 해서는 안된 말인 것도 알았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듣고 엄마가  상처받길 바랐다. 나만 상처받고 당하기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때 그냥 없애버렸으면 너 같은 거 안 봐도 되고 훨씬 행복했을 텐데!"


하지만 엄마는 상처입지 않았다.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날 내동댕이 치고 다시 밟았다.  그때부터는 눈 앞이 새하애졌다. 엄마가 하는 말들이 이젠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였다. 아빠가 화가 난 표정으로 안방에서 거실로 나왔다. 나는 아빠가 나를 도와주기 위해 나온 줄 알았다. 항상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땐 아빤 말만 이라도 말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냐고 도와줬으니깐... 그런 줄 알았다.


"어디서 엄마한테 대들어?"


아빠가 나를 발로 찼다. 만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 시간만은 길게 느껴졌다. 주변에 소리는 아무것도 안 들리고 내 목소리도 안 들렸다. 배가 걷어 차이는 소리만 천천히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나를 발로 찬 아빠는 엄마한테 대들었다며 나에게 욕을 쏟아부었다. 

아빠가 신발장으로 갔다. 회초리를 찾는 거였다.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내 방으로 뛰 쳐들어갔다. 방문을 걸어 잠갔다.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문에 떨어져서 달달 떨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엄마는 방문을 부술 듯이 두들기면서 문을 안 열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문을 열면 문 밖에 사람들은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이 점점 열려가는 것 같았다. 엄마가 열쇠를 찾겠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급하게 책장에 책을 빼기 시작했다. 책을 방바닥에 집어던져버렸다. 책장을 방문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내팽겨쳤던 책들을 다시 책장에 집어던졌다. 밖에서 두드리는 소리와 엄마, 아빠의 목소리는 들렸지만 다행히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서웠다. 부모님이라면 저 문을 어떻게든 부수고 들어올 것 같았다. 옷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도 무서워 옷걸이들은 움직여서 나를 가리게 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바보같이 눈물만 소리 없이 줄줄 흘리며 잠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직도 어두웠다. 밖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 않았다. 혹시 못 들었나 싶어서 한참을 가만히 있다. 한참 있어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옷장 밖으로 나왔다. 내 방엔 들어오지 못한 것 같았다. 책장을 천천히 다시 원래 위치로 옮겼다. 그리고 천천히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다행히 집엔 아무도 없었다. 내 방문 바로 앞엔 회초리가 나뒹굴고 있었다. 방문은 여기저기 찍힌 자국들이 새로 생겼다.  나는 거실로 갔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곤 대학 지원 사이트를 켰다.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을 찾았다. 무조건 서울로. 그리고 웬만큼 이름 있는 곳으로. 나는 여기서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나에겐 돈이 없었고, 집을 나갈 용기도 없었고, 내 몸을 버릴 수 있는 용기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 당시에 최선으로 생각할 수 있던 건 서울로 대학을 가는 거였다. 내가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행히 학교는 내가 원하던 대로 서울로 갈 수 있었다. 붙었을 때도 탐탁지 않아했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딸이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었다면서요? 좋겠네.'라는 말을 들으니 보내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부모님은 남의 이목에 대단히 신경을 많이 쓴다.) 딸인데도 보내주니 고맙게 생각해라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어쨌든 보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그 날이 지나고 난 조금 달라졌다. 내가 너무 바보같이 참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낳아준 사람인데... 하는 생각에 내가 혼날때마다 죄책감이 있었는데 그게 많이 줄었다. 부모가 날 자식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였다. 처음부터 사랑받을 수 없는데 바보같이 나만 아등바등거리며 사랑을 구걸하고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사실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미 20년 동안 그렇게 살아와서 한 번에 모든 걸 바꾸는 건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떨쳐내기 위해 마음을 다 잡았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행복하다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바라는 건 딱 그거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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