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z Sep 14. 2015

그 날...

그 날을 떠올리면 까만색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를 삼킬 것 같았던 까만 어둠만이 생각이 난다.


그 날은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가채점했던 그대로 내 점수는 엉망이었다. 점수야 미리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늘 또 혼나겠지...?'


이미 여러 번 혼났다. 수능 치기 전 까진 엄마는 동생에게


"누나처럼 되려면 너도 노력 좀 해!"


라는 말을 줄곧 했었다. 다행히 동생이 열심히 놀아준 덕분에 나와 동생의 성적은 많이 차이가 났었다. 내가 유일하게  칭찬받을 때가 동생이 성적으로 혼날 때였다. 하지만 이 말도 딱 수능 전 날까 지였다. 수능을 친 그 날부터... 내 수능 점수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누나처럼 안 되려면 너도 노력 좀 해!"


 난 쓰레기가 되었다. 버리지 못해 안달 난...


부모님은 어차피 수능 못 치게 된 게 잘 됐다고 집안 살림에 보탬이나 되라며 집 바로 옆 전문대나 4년제 대학을 4년 장학생으로 다니라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수능도 못 친 게...'라는 말을 항상 하셨다. 매일, 매번 내가 시야에만 보이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시선을 무시하고 괜찮아질 즈음에 성적표가 나왔다. 어차피 부모님은 저녁 늦게나 오실 거였고,  그때까진 마음 편하게 먹고 있자고 생각했다.




저녁이 되었다. 부모님이 오셨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 성적표를 찾았다. 그리고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갑 티슈였다. 엄마는 옆에 있던 갑 티슈로 내 뺨을 세게 쳤다.


"이 씨발년이!"


두어 대 더 갑 티슈로 맞고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발로 마구 차고 밟았다. 


"내가 뭣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이것밖에 못 받아와? 내가 너 땜에 쪽팔려서 돌아다니 지를 못해? 알어? 이 씨발년아!"


그 날은 다른 날보다 엄마가 더 화난 것 같았다. 말끝마다 욕에 발로 차는 것도 평소보다 더 셌다. 그래서 속으로 빌었다.


'제발... 팔이라도 하나... 아니 갈비뼈라도 부러졌으면 좋겠다...... 제발...'


나는 항상 맞을 때마다 빌었던 것 같다. 신을 믿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신에게 빌었다. 제발 크게 다치게 해 달라고. 




TV 프로그램을 보면  학대받은 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대부분이 아니라 거의 99.9%가 신체적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다. 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부어올라 원래 얼굴을 알기도 힘들 정도고 화상을  입고...... 그런 아이들이 나온다. 그 지경이 되어서야 그 아이들은 각자의 지옥에서 탈출했다. 주변의 도움이나 죽음이라는  방법으로......


나는 그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도 그 아이들은 남들이 알아볼 수 있는 상처를 가졌으니까. 나는 대부분 말로써 상처를 받았다. 말에 비하면 맞는 상처는 별거 아니었다. 맞은 상처도 대부분 옷으로 가려지는 부분이었고, 멍만 들 정도일 뿐 심하지도 않았다. 내가 도움을 청한다고 해도 밖에서는 누구보다 온화하고 자상한 부모인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때렸다고 말해봤자 믿어주지 않을게 뻔했다. TV에 나온 아이들은 누가 봐도 학대가  의심되었지만 도움을 받는데 긴 시간이 걸렸었다. 그런 상황인데 나처럼 하나 부러진 곳 없고 멀쩡해 보이는 애가 도와달라고 한다면?  외면받을게 뻔했다. 실제로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맞을 때 기도하는 것과 본능과 맞서 몸을 좀 덜 웅크리는 것뿐이었다.




그 날은 더 많이 맞았다. 맞는 강도도 세고 더 오래 맞았다. 얼굴도 맞아 멍이 들 것 같았다. 이제 어디 하나 부러지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던 때 엄마가 부엌으로 갔다. 컵을 찾으러 갔나 싶었다.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아보니 엄마 손끝은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못 치고 싶어서 못 친 줄 알아!"


할 수 있는한 최대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나를 쳐다보았다. 다시금 무서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성공이었다.


"지금 어디서 대들어? 니가 뭘 잘했다고?"




강도가 더 세어졌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칼 맞아 죽었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의 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