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엄한 편이었다. 말로 혼을 많이 내기도 했지만, 매도 많이 들었었다. 집에는 항상 회초리가 있었다. 회초리라고 해도 사실 대부분 몽둥이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당구 큐나 당구 큐 굵기만 한 나무 회초리가 공식적인 회초리로 항상 집에 있었다. 공식 회초리가 어쩌다 부러지면 임시방편으로 파리채 같은 거로 맞기도 했다. 매는 항상 손바닥이나 허벅지에 맞았다. 이것이 우리 집에서의 공식적인 체벌 방식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것이지, 항상 지켜지지는 않았다.
아주 어릴 때 맞은 이유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동생이랑 싸웠거나 집에서 시끄럽다고 주의를 들었을 때 얌전히 있지 않아서였던 거 같다. 매를 맞을 땐 울거나 대답 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더 맞기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부터는 내가 대부분 혼나는 건 '성적' 때문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성적이 내려도, 그대로여도, 올라도 혼이 났다. 성적이 올랐을 땐 매까지 맞은 적은 잘 없지만 그대로여도 노력을 안 했다는 이유로 손바닥 10대 정도를 맞았던 것 같다. 가끔 부모님이 화가 나면 매의 횟수가 20~30대나 그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했었다.
아빠는 대부분 성적으로 때리는 것을 빼면 거의 나를 때리지 않았다. 그리고 회초리 외의 것으로 때리진 않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가 아파서 끙끙 되며 누워있었는데 엄마가 누워있는 나를 보고 화를 냈다. 오후까지 퍼질러있다고. 나는 배가 아프다고 했고, 엄마는 배가 아프냐면서 배를 발로 찼다. 발로 밟고 계속 차이다가 울면서 배가 아파서 누워있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엄마는 왜 진작 배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말하며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 가니 장염이라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왜 아프다는 소리를 않았냐고 나를 혼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턴 집에 밥을 내가 했는데 내가 중학교 2학년쯤부터 동생이 성장기에 들어갔다. 밥을 한 번에 4인분씩 해도 동생은 그 밥을 한 번에 다 먹곤 했는데, 한 번은 내가 밥을 했는데 동생이 4인분을 다 먹고 밥을 더 하려고 하니 쌀이 다 떨어져서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오자마자 동생이 배고프다고 했고 엄마는 나보고 동생 밥도 안 차려주고 뭐했느냐며 발로 걷어차고 발로 밟았다. 동생이 밥 먹었는데도 배고픈 거라고 말하자 엄마는 동생에게 그러냐고 밥 다시 해주겠다며 부엌으로 가버렸다.
중3 땐 내가 그 전날 남은 밥을 아침으로 먹고 새 밥을 해놓고 나가서 동생이 새 밥을 아침으로 먹었는데 어느 날에 내가 밥하기엔 조금 늦게 일어났었다. 남은 밥을 보니 둘이 먹기엔 모자라서 내가 밥을 먹지 않고 그대로 학교에 갔었는데 다녀와선 '돼지 같은 년이 동생 밥까지 훔쳐먹어?!'라는 소리와 함께 뺨을 맞았다. 밥이 애매해서 난 안 먹고 갔다고 말했지만 거짓말까지 한다고 더 세게 밟혔다.
마찬가지로 중3 때였다. 그땐 내 방에 컴퓨터가 있었는데, 내가 너무 피곤해서 저녁 일찍 잠들었었다. 자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컴퓨터가 안 된다며 나를 깨웠다. 잠결에 대충 컴퓨터를 보니 동생도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동생에게 시키라고 했다. 동생이 내 방에 오지도 않고선 못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다시 나를 깨웠고 내가 짜증을 내자 컴퓨터 좀 한다고 유세냐며 컴퓨터 의자를 나에게 그대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다시 그 의자를 잡아 나를 때렸다.
한 번은 기술가정 시험을 실기로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잘 못 하는 거라 엄마한테 배우겠다고 말을 했는데 엄마는 내 약속을 잊고 그 날 내가 자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예상대로 점수는 엉망이었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내 점수를 물었다. 점수를 듣자마자 거실 테이블에 있던 두꺼운 사전을 내 머리로 던졌다. 사전 갑 모서리에 머리가 찍혀 피가 났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들어보니 엄마가 들고 있던 유리컵을 나에게 던지려고 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여서 살짝 피했다. 유리컵은 내 등 뒤 문지방에 부딪혀 깨졌다. 유리파편에 다리를 살짝 베였다. 그리고 역시나 발로 밟혔다.
나는 수능을 망쳤었다. 점수를 말하면 바로 재수 권유를 들을 만큼. 성적표가 나온 날 엄마는 내게 너 때문에 쪽팔려서 다닐 수가 없다며 소리쳤다. 유리컵을 던졌는데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여서 그때도 다리가 살짝 베였었다. 그리고 갑 티슈로 얼굴을 맞았다. 두어 대 더 맞고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다시 발로 밟혔다. 계속 걷어차이고 발로 밟혔다.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혼났고, 맞았다. 내가 억울하다고 말해도 변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맞는 매의 양. 더 맞고 싶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되었고, 억울하다는 표정도 지어선 안 되었다. 왜냐면 엄마는 나를 사랑해서 그렇게 때린 거고, 자식 잘돼라고 그런 거였으니까. 엄마가 그렇게까지 매를 들게 한 내 잘못이었다. 내가 억울하다고 따지게 되면 그제야 아빠가 나와 엄마 곁으로 다가왔다. 버릇없이 부모에게 말 대답하는 날 혼내고 때리기 위해서.
항상 매타작이 끝나면 그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이 모든 건 사랑의 매라고. 모든 건 내 잘못이라고.
억울하고 분했지만 그들은 나의 부모였고, 나는 그들의 자식이었다. 자식이기 때문에 부모 말에 따지는 것은 죄였고, 부모인 그들이 날 때리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덜 맞기 위해서 입을 다물고, 많이 다치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리는 것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