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z Sep 02. 2015

기억

 흔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얘기를 한다. 자식은 모두 다 소중하고 귀하다는 말이다. 



과연...?




 어릴 때 일이지만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다. 


내가 8살 때였다. 그 날은 동생이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하는 날이었다. 동생 재롱잔치를 보기 위해 엄마랑 함께 외출을 했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 백화점에 들렸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 엄마가 전화를 써야 한다고 하셔서 1층 안내데스크 옆 공중전화 있는 곳을 갔다. 


당시에는 휴대폰이 갓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때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이 없었다. 때문에 전화를 하려면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했다. 


사람이 많아서 꽤 기다렸다. 엄마 앞에 서서 얌전히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우리 차례가 다가왔고 엄마는 동전을 넣고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통화가 길어졌다. 엄마의 통화가 정말로 길었는지, 아니면 내가 어려서 시간을 길게 느껴서인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통화는 길었다. 


이리저리 살짝 살짝 벌레처럼 움직이고 있는 꼬불 꼬불한 수화기선을 멍하니 쳐다보며 엄마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통화하는 중에 떠들거나 심하게 움직이면 혼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얌전히 기다리려고 수화기 선만을 쳐다보며 지루하게 엄마의 통화가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멍하니  있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나는 드디어 엄마의 통화가 끝났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엄마가 아닌 난생 처음  보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뿔테 안경을 쓴 오빠가 서 있었다. 


"꼬마야. 전화할 거니?"


그 오빠는 서울말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제야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았지만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줄을 서 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엄마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얼굴이 새하애져서 그 자리에 굳어서 있었다. 그러자 그 오빠는


"엄마 잊어버렸니?"


라고 물은 뒤 내가 끄덕이자  내 손을 잡고 바로 옆 안내데스크로 데려가 줬다. 엄마를 잃어버린 거 같다며 안내원에게 말해주고는 엄마가 곧 오실 거라며 날 달래 주었다. 안내원에게 내 이름과 엄마 이름을 말하자 안내원 언니는 마이크를 잡고 엄마를 찾는 방송을 해주었다. 하지만 안내원 언니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해 방송해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곧 올 거라고 생각한 엄마가 오지 않자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펑펑 울며 안내데스크 앞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내가 울기 시작하자 안내원 언니는 다급하게 몇 번 더 방송을 했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나를 알아보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 00 딸 아니니? 왜 울고 있어! 엄마는?"


나는 본 적이 없는 분이었지만 엄마를 아시는 분 같았다. 정말로 엄마를 아는 분인지 방송을 듣고 아는 척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분에게 울음을 겨우겨우 참으며 엄마가 사라졌다는 말을 했다.


그분은 우선 걱정 말라며 우는 나를 달래고 먼저 날 도와줬던 오빠에겐 엄마 친구라고 말씀하시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오빠는 나에게 엄마 찾을 거니깐 울지 말라고 다시 한번 위로해준 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나에게 혹시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냐고 물으셨다. 


전화번호! 너무나도 잘 외우고 있던 거였는데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집 전화번호도, 아빠 휴대폰 번호도 외우고 있었는데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나는 엄마가 백화점 안에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에 우선 엄마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집에 전화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분은 휴대폰을 꺼내시더니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하셨다. 


"안녕하세요. 저 ㅇㅇ친구 A인데 여기  B백화점인데......"


그분이 상황 설명을 아빠에게 해주셨고, 이것 저것 말씀을 나누셨다. 나도 아빠랑 통화하고 싶었다. 너무 불안했고, 아빠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내가 통화하려고 '주세요'라는 손 모양을 하자  그분께선 내게 통화를 바꿔주려고 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가방에 집어넣으셨다. 전화기 너머로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통화할 필요  없다는......


아주머니는 본인 차에 나를 태워 동생 유치원 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그분은 다시 통화를 하셨다. 통화가 끝난 뒤 자신은 볼일이 있어서 집까진 데려다 주지 못하며 10분 뒤쯤에 엄마가 여기로 오기로 했으니 엄마를 만나서 가면 될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분은 그래도 조금은  불안하셨는지 엄마를 오기를 함께 기다려주셨다. 그리고 엄마가 택시에서 내리는 것을 보곤 내게 차에서 내리라고 하셨다. 나는 내리자마자 신이 났다. 나는 엄마한테 뛰어서 다가갔다. 엄마를 만나서 기뻤다.


"엄마 어딨엇어!"


웃음과 울음이 섞인 목소리와 표정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과연 보통의 엄마라면 이럴 때 어땠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꼭 안아주거나, 펑펑 울면서 '어딜 갔었어! 왜 엄마 잃어버려! 평생 못 보려면 어쩌려고!!'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얼굴은 평소와 같았고, 아니 평소보다 더 냉정했다. 나를 제대로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너 때문에  늦었잖아!!"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메아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메아리가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재롱 잔치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다시 엄마를 잃어버릴까 다급하게 엄마를 쫓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미 재롱잔치는 한참 진행 중이었다. 나는 다시 두리번 거리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또 그새 내 시야에서 사라져있었다. 두리번 거리다 보니 맨 앞줄에 엄마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엄마 옆으로 갔다. 엄마는 무대 위에 있는 동생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엄마 손을 잡자 엄마는 내 손을 떼어낸 뒤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다시 한번 손을 잡았지만 '얌전히 구경해'라는 꾸중을 들었다.



그 날 재롱잔치에서 무엇을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줄곧 엄마를 쳐다봤지만, 엄마는 나를 한 번 힐끗으로도 쳐다보지 않았다.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동생만을 바라보았다.


재롱잔치가 끝나고 엄마는 연신 동생에게 너무 잘했고, 수고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택시를 잡아 집으로 향했다. 


나는 엄마에게 아까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엄마가 어디로 갔었는지... 왜 나를 두고 간 건지......


"엄마, 아까 어디 갔었어?"

"아까 백화점 밖에 옆에 있는 꽃집에 갔었는데?"

"나 잃어버린 거 몰랐어?"

"몰랐는데? 너가 알아서 잘 따라왔어야지."



나는 안 아픈 손가락도 아닌 잘라내고 싶은 열한 번째 손가락이 아니였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