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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e Han Dec 30. 2019

다시 시작한다 라고 할까나

쉬워 보이지만 두려운 '다시'라는 그 단어 


구겨진 편의점 20원 짜리 봉투 처럼, 쉽게 펴질 것 같지 않았던 문제들이...

어느샌가 쉽게 풀리다니,

사실 진짜 별거 아니었는데,

스스로를 강박시키며 나를 내 우리 속에 갇힌 꼴로 나름 잘지내고 있다고 자위했었다고, 이제는 이야기     하고 싶다.

나는 죽을 고비에서 살아내었다. 아니 살아나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잘 지내고 있는 중에 길에서 기절(?)하며 쓰러지는 바람에 머리 안에 피가 고여 큰 수술을 하게 되었고


의식 없는 이틀 동안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첫번째 병원에 구급실로 갔다가 늦은 저녁인 탓에 수술할 재원이 퇴근하고 없어 다른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진행하였다고 했다. (이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ㅇㅇ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에게 50년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당시에는 소식을 받고 서울 까지 달려온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죽거나 사지 불구가 되어 일상 생활이 어려울 수 있다고.

(물론 나는 이 광경을 보지 못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궁금한 장면이기도 하다.)


나는 그날 이후 이틀 만에 깨어났고, 내 머리에는 에어리언 같이 스테이플이 박힌 채로, 그리고 가슴에는 (예쁘다고 생각함) 카테터라는 것이 왼쪽 가슴에 상처, 또는 타투처럼 박혀 있었다.


평소 가게 일로 항상 바쁘다고 연락이나 전화도 먼저 끊던 부모님들도 나를 위해서 울었다고, 그리고 엄마는 옆에서 며칠 동안 내 곁을 있어줬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엄마와 함께 병원에서 며칠 지냈던 기억이 끔찍했을 사고, 병원이나 권태로움 따위도 다 잊게 해주는 온기이지 않았다고 회상해본다.


소식을 듣고 기대도 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문병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사실 머리 수술을 한지라 왔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감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싶다. (물론 직접 왔는데도 기억 못했던 분들도 몇 명있다. (미안...나 뇌 수술 한거잖아....<-))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다시 나는 잘 다니던 회사, 그리고 뭐든 것이 이전 정상 궤도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지금에야 나의 과거 상태를 이해하겠지만, 당시의 나는 마치, 의욕 넘치는 병자.  라고 해야할까.

자신의 치부 따위 이야기 하고 싶지 않지만, 회고하자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때랑 그 당시 상태의 건강이랑은 정말 별 차이가 없다고, 문제 없다고 건방지게 회사에 떼써서 갔으니까.. 그것이 남들에게 피해가 되는 줄은 간과한 채..


거진 2, 3달 사이 같은 부서 위 사람이 생겼고, 회사 생활을 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인정하기 힘든 논리들을 명령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속이 뒤집혀서 그만 두겠노라, 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 후에는 건강한 나라고 생각했던 나도 없어졌다. 아프다, 환자라는 이미지가 내 안에서 깊숙이 집요하게 침투하면서 위시 리스트 목록들이 하나하나 사라졌다.


모두 사라지니, 이유, 동기도 사라졌다.


거진 일년 넘어를 자기 혐오와 무력감, 권태, 그리고 '나는 괜찮아'라는 자기 학대적인 최면까지..



이것의 모든 엉킴을 푸는 시작은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무언가'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분명 이것은 나만의 일기가 아닐 뿐더러 이것을 아마 독자로써도 다른 출구를 찾을 것이고, 모르는 분들도 자신만의 출구점이 분명히 있다라고 시사하고 싶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야기 하고 싶은건,

아무리 풀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문제에도 해결할 수 있는 출구는 어디엔가 존재한다. 눈을 감아도 항상 빛은 존재한다. 그것과 같다라고 나는 믿는다(적어도 믿고 싶다.)


출구는 분명히 있고, 누구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나는 어리기에, 내 의견을 뒷받쳐주는 의견에 힘입어 더 에너지를 입어 실행력을 높이는데,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는 맞지 않는 해결점일 수 있다.

사람들 각자 다들 다르듯이 해결 방안 또한 다를거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그래서, 개인적인 이야기는 언젠가,

아픔, 또는 기쁨, 희열이 가시고 나서야 허심탄회하게 유머로써 이야기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나의 한심한 고해성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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