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찮다고 나를 하찮게 표현할 권리는 없다.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어떤 사진 작가가 자신은 순간을 잊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다고.
어쩌면 모순적인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더랬다.
사진은 그 순간을 담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순간의 느낌을 떨쳐버릴 수 있는 도구이구나, 싶었다.
살을 더 붙이자면 순간의 느낌을 사진을 찍기 위한 노력의 시간으로 상쇄되니까.
나보다 사진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다.
오히려 나는 사진을 찍는 직업을 하면서, 일하는 동안에만 사진을 찍게 되어버린 것 같다.
오 년정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진을 일로 찍는 것 이외에는 전에 자주 찍던 필름카메라도, 그 가볍고 편리하다는 핸드폰 사진도 찍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1.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은 그저 가벼워서 눈으로 기록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 였고,
2. DSLR 카메라는 일상 스냅을 찍기엔 너무 무겁고 피사체를 위축시킨다.
3. 자주 쓰던 필름카메라가 종종 고장나기에 항상 캐리할 수 없다는 것.
4. 그 동안 내가 찍은 작품들이 너무나도 가볍고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긴 기간동안 다시 꺼내든 나의 사진들은 그렇게 폄하되어서는 안되었고, 그만큼 나태했으며,
결국 이는 나 자신을 그렇게 밖에 스스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나'라는 존재는 무수한 나의 존재를 하나로써 명명하는 것이고,
어느 부분이 한심하다고 해서 내가 하찮다고 나를 무시하고 자학할 권리는 없다.
점점 나라는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려하면 할수록 남과 비교하게 되면서 나 자신은 초라해졌고 점점 나 자신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나'와는 다른 '남'을 연기하며, 내가 원하는 타자를 연기하는 순간이 계속 되면서 나는 점점 '나'를 잃어 갔던 것이다.
늦게 나마 깨달은 것도 있겠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했던가?
다시 하나 하나 밟고 나아가고자 한다.
그동안은 추운 겨울이어서 충전을 위해 동면을 취했고, 이제 새롭게 가지를 뻗어나가 꽃을 피울거라고,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