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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조 Aug 20. 2024

넌 왜 그렇게 작아?

난 큰데, 작은 아가인 너를 보호하기엔 또 충분히 크지 않은 것 같아




제목은... 제가 뱃속 아가에게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전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기는 예쁘고 귀엽기만 하다는 생각을 평생 해 본 적 없어서, 육아와 교육의 이면은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임신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힘들어하는 점을 저도 겪고 있더라고요. 참... 양상들이 비슷한 게 신기합니다. 겪어보지 못 한 걸 하려니 결국 전철을 밟게 되고,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먼저 이 글은 참회용임을 밝혀둡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혼란스러운 가운데 제게 힘을 주는 남편에 관한 짧은 글입니다.




몇 주 전, 입덧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거창하게 불리는 '생명 잉태'라는 건 와닿지도 않았는데요. 이렇게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움을 느끼는 건, 제가 깨달은 바가 조금 생겨 그런가 싶습니다. 속이 느글거려 매운 것만 줄곧 당기더니, 그 이후에는 게워내는 게 일상이 되어 점점 매운 건 겁이 났어요. 제 생각보다 태아는 튼튼하고, 또 제 상상보다 모체인 제 몸이 무척 약하다는 걸 실감하고... 남편이 주문해 놓은 토마토즙을 들이키며... 틈나면 두 개씩 마시는데 내가 게을러 그런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생각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12주 차. 현재는 아침에 밥을 잘 챙겨 먹고, 저녁은 소화가 잘 안 됩니다. 감정은 미친 듯이 곤두박질쳤다가 다시 평정심을 찾는 가운데 석 달째 접어드는 지금, 눈을 뜨기 전에는 꼭 이상한 악몽을 하나씩 꾸고(범죄에 연루됨, 공항에서 남편 배웅하다가 사고남, 어딘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미아가 되는 등) 심리적 불안이 최고조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어느 순간부터는 피곤을 핑계 삼아 손을 놓아버린 집안일을 남편이 혼자 이것저것 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게 많아지는 것이...




다른 건 다 양보하고 이해해 주지만 몸에 안 좋은 걸 아침과 점심으로 먹겠다고 제가 우겼을 때의 변하는 눈빛이나...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으면 잘 시간이 지났다고 걱정하듯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라거나.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소화가 안 되는 저의 허리를 받쳐주면서 더운 여름 속을 함께 걸어주는. 그런 게 연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자꾸 다가오곤 하는 겁니다.




어느 날은 남편이 잠깐 떨어져 있는 사이 구토를 심하게 한 적이 있었는데... 한두 번도 아니었지만 너무 서러워 펑펑 울었습니다. 몰골이 말이 아닌데, 남편이 저를 달래면서 아무렇지 않게 자기 손으로 제 얼굴을 닦아주더라고요. 눈물과 콧물을 훌쩍이며 연신 미안하다 말하는 제게 이런 것도 못 하면 죽어야 한다고 나지막하게 말하던 남편의 모습 같은 것.




임신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들과 함께 술자리에 나가 혼자 사이다를 홀짝거리는 저를 보고서, 친구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자기 딸처럼 사랑한다던데 오빠도 진짜 그래요?' 하던 물음에 저를 보더니, 아, 그런가?! 하고 바보 도 터지는 소리를 내던 남편의 모습 같은 것. 그런 게 요즘은 제 안에 쌓이면서, 어쩌면 한 번도 해 보지 못 한 엄마의 모습 같은 걸, 얼추 나도 따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믿음이 생기는 그런 순간요.




요즘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엄마에게 곧잘 사과를 하는데요. 사춘기 때 속을 썩여서 미안하다거나 어릴 때 신명 나게 차도에 뛰어들어 미안하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어머니는 깔깔 웃으시지만 제 속은 썩어 들어가요. 제가 이렇게 사과를 하지만, 제 미래 같아서요... 생각해 보니 아들은 보험료가 더 비싸다는데 요즘 육아 유튜브를 보면 나름 그 이유를 알겠고, 이렇게 살다 보니 딸들은 나중에 엄마와 친구가 되기 전까지 이것저것 감정적으로 신경 써 주고 결핍 없이 사랑해주어야 한다는 말도 새삼 실감하는 그런 순간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이미 제 밑바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심해를 보여주게 될까요, 그래...




습관처럼 먼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하고 물어보는 그 얼굴. 배를 도자기 다루듯이 만져주는 큰 손. 잠결에도 휙 하고 끌어다가 이불을 덮어주는 행동 같은 것.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던 결혼식장에서의 떨려오던 그 다짐을 열심히 지키는 남편. 저와 달리 이미 남편은 충분히 큰 사람인 것 같습니다. 품고 있는 건 저지만, 그래도 한 번도 서운하다고 느낄만한 일을 만들지 않는 사람. 함께 공을 주고받던 와중, 왜인지 토라져서 공이 저 멀리 굴러갈 때에도, 힘껏 뛰어가 공을 다시 주워 제 앞에 놓아주는. 그리고는 울고 있는 저를 한 번도 피곤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늘 아기에게만 물어보던 질문을, 남편에게도 해 봅니다.




넌 왜 그렇게 커?
나도 큰 너처럼 될 수 있을까?



더위가 끝나가는 이 즈음에, 사랑과 존경을 담아서.






https://www.youtube.com/watch?v=CJG57quiJ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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