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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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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랍 Dec 06. 2021

꿈속에서의 삶이 있는 기분이야

꿈서신#1

서랍레터는 이주이와 이소이가 만드는 뉴스레터입니다. 살면서 신경 쓰지 않았던 서랍장을 설렘과 두려움으로 열어봅니다. 매일 밤 꿈속의 나와 무의식이 만든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록하지 않아 기억에 없던 '오늘'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격주로 목요일 늦은 11시에 보내드립니다. 서랍레터 구독폼은 글 맨 아래 있습니다. 구독하시면 아카이빙 페이지 열람 및 격주로 저희의 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꿈 서신은 매일 전날 밤 꾼 꿈 이야기를 나누는 이주이와 이소이가 만드는 에 관한 서랍장입니다. 각자의 꿈을 합쳐 하나의 원고를 만들고, 우리의 꿈과 관련해 떠오르는 문화예술 콘텐츠, 꿈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들을 담습니다. 아주 가끔은 각자의 사생활이 조금반영된 에세이를 실을 예정입니다.

Xi Zhang

Purgatory Chapter V: Chessmen, Acrylic on Canvas, 60 x 72 inches, 2017

출처: https://xizhang.org/home.html


어보지 않은 서랍장



꿈속에서의 삶이 있는 기분이야

“늘 어느 순간 꿈이라는 걸 알게 돼.

그때부터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사람들은 컬러로 보여.”


꿈조차 내 것이 아닌 듯했다

  친구가 성수동에 놀러 왔다. 나는 새로 생긴 카페에 친구를 데려가고 싶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순간 친구에게 귤이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함께 귤을 먹고 헤어졌다.

  몸 하나에 머리가 두 개 달린 하마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나는 마을 사람들과 그 하마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농사를 지었다. 꿈에서는 그 모든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목이 반 잘려서 머리가 대롱거렸다. 그 상태로 엄청나게 큰 벌레에게 영혼을 빼앗겼다.

  나는 「원피스」의 ‘에이스’[불을 다루는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배에서 적이 다가오지 못하게 불기둥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구출하고, 함께 날아서 도망쳤다. 내가 타야 할 배가 수평선에 떠 있었다. 그쪽으로 가기 위해 힘을 썼는데 도무지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제대로 된 방향을 잡으려고 내내 애썼지만, 자꾸 멀어지기만 했다.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었다. 지하철처럼 기관사가 있고 방송도 하는 롤러코스터였다. 갑자기 내가 탄 롤러코스터가 조금씩 탈선하기 시작했다. 기관사는 롤러코스터를 바로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관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조금 탈선한 채로 레일을 달렸다. 그 상태로 원을 그리며 돌기도 했다. 꽈배기처럼 거칠게 비틀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완전히 탈선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계속해서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안심하고 앞을 봤는데 앞에 다른 롤러코스터가 정차해 있었다. 롤러코스터는 그대로 충돌했다. 충격으로 떨어지는데 이곳이 관람차 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고 난 게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관람차인 것처럼. 나는 떨어지는 순간의 충격을 고스란히 느꼈다. 이상하게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눈을 떠보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해 질 녘 잔디밭이었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관람차 안에서 꺼냈다. [언제 있었지?] 그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고 우리는 포옹했다. 잔디밭에는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어쩐지 몹시도 평화로워 보였다.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이 상황이 무엇이든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와 포옹했던 사람과 서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조차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꿈이 아니면 어쩌지?

  친구를 만났는데, 패딩을 입고 있었다. 꿈속의 계절은 여름이었는데.

  또 쫓기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대담해져서 공터를 가로질러 뛰어가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한가운데에 서서 주변을 보았다. 사람들이 내게 총을 겨누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나는 학교 복도에 서 있게 되었다. 교실 창문에는 나를 보기 위해 들러붙어 있는 눈알들이 있었다. [이때 꿈속인 걸 알았다] 나는 외벽 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떨어지면서 지금이 ‘꿈이 아니면 어쩌지?’ 하고 생각했다.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다음에는 날아올라 볼까’라고 생각했는데, 바닥에 수많은 눈이 들러붙어 있었다.

  팀원들과 모여 회의를 하기로 했다. 장소는 내가 전에 살던 집 옥상이었다. 그저 낡은 주택일 뿐인데, 입구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넘어져서 진흙탕에 굴렀다.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일으켜 세워주었는데, 그러느라고 그 사람 손에도 진흙이 잔뜩 묻었다.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그곳에도 사람이 많았다. 조그맣게 딸린 옥탑방으로 들어가서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고 몸을 씻었다. 수도꼭지에는 거미줄이 엄청 많이 있었다. 이렇게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크고 넓게 퍼져있는 거미줄이 있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버스를 탔다. 나는 카디건으로 얼굴을 덮고 자고 있었다. 그런데 내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그 카디건을 들춰서 내가 자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의자 뒤로 그 사람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 사람은 내게 자기가 좀 쳐다보면 닳기라도 하냐며 조롱했다. 나는 주먹으로 계속 때렸다. 친구는 나를 도와주지 않고 그 사람이랑 같이 웃었다. 너무 서운했다.  

  늘 어느 순간 꿈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마라톤을 하려고 친구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마라토너들은 하나둘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런데 결승선이 빌딩 로비로 변해갔다. 마라토너들은 좁은 문을 통과하려다가 끼어버렸고, 좀비가 되었다. 갑자기 어떤 무리가 나타나 친구의 목을 베어버렸다. 친구의 머리는 깔끔하게 잘린 채 바닥을 뒹굴었다. 그들은 내게 엎드려뻗쳐를 시켰고, 머리를 박으라 명령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왠지 모르게 ‘나는 살아남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친구의 머리통을 볼 수 없었지만, 머리가 뒹굴고 있는 자리가 너무 잘 느껴졌다. 그들은 내게 자세가 좋다며, 너는 살려주겠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그들이 가고 난 뒤 나는 친구의 머리통‘만’ 들고 뛰기 시작했다. 시야 끝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보였다. 나는 친구의 뺨을 때리며 “조금만 참아, 의식 잃지 마”라고 말했지만, 길은 점점 오르막길로 변했고… 친구를 포기하고 싶었다. 너무 힘들고 너무 지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순간 꿈속이라는 걸 깨달았고 곧바로 친구의 머리통을 내다 버렸다. 나는 꿈에서 바로 깨지 못했다. 친구의 머리통이 비탈을 굴렀다.

  친한 사람들과 다 함께 있었다. 우리는 함께 길을 걷는 중이었는데, 나와 몇몇 사람들이 구멍에 빠져버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를 두고 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울었다.

  다음 날에는 내가 ‘피치 못 하게’ 누군가를 두고 가는 꿈을 꿨다.



후기

이소이

간밤에 꾼 꿈을 생각한 하루가 많았다. 꿈은 무의식의 편집이라 했으므로. ‘왜 그 꿈을 꾼 걸까?’ 대체로 난 이렇게 질문해왔다.

  모든 꿈이 다 기억나지는 않았다. 강렬한 몇 개의 장면이 있었다. 편집된 기억을 갖게 된 것이다. 그땐 이렇게 질문하기도 했다. ‘왜 그 장면을 기억할까?’

  구성(편집)하면서 꿈을 기록했다. 생각을 옮겨적는 일과 달랐다. 애초에 꿈은 기억나는 게 별로 없었다. 사건과 장면의 개연성도 없을 때가 많았고. 무엇보다 도저히 옮겨 적을 수 없는 게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꿈을 기록했고, 서로의 꿈을 배열했다.

  ‘꿈은 왜 이렇게 기록/배열되었을까?’

  남겨진 텍스트를 본다. 편집과 편집과 편집을 거친. 이 텍스트가, 이 텍스트를 보는 장면이 꿈처럼 느껴진다. 내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것 가운데 가장 내 것 같다.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서로의 꿈을 이다지도 정성껏 기록하고 배열할까. 아직은 모른다. 모르지만.

  내가 삶에서 직면해야 하는 수많은 장면과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비출 거라고 믿는다. 꿈을 기록하고 생각하는 일이 삶을 대하는 또 다른 태도처럼 느껴진다.


이주이

어렸을 때는 한번 인상 깊은 꿈을 꾸고 나면 몇 날 며칠을 그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곤 했다. 꿈에서 만난 사람이 그립고, 꿈에서 겪은 상황이 (지나칠 정도로) 사무칠 때도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꿈은 나에게 책이나 영화, 전시회 등 여느 문화 활동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체험할 수 있는 감상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풍부하다는 걸 배우고, 여러 방향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도 하니까.

  그러나 대체로, 나는 꿈을 홀대했다. 성장하면서 내게 주어지는 일들이 늘어날수록 꿈은 ‘숙면을 방해하는 어떤 것’으로만 여겼고, 거의 매일 꿈을, 그리고 해괴한 꿈을 꾸기도 하는 나 자신을 특이하다고 여겼다. 내 무의식 속에는 내가 모르는 척하는 지저분하고 추악한 면이 있다는 걸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꿈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지금도 꿈이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내 무의식 안에 얼마나 많은 모습의 내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꿈 홀대하기’ 단계를 거친 지금의 나는, 꿈은 일상의 ‘(내가 생각하는)나’가 아닌, ‘(내가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나’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꿈을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일상에서 얼마나 타자를 타자화하며 말해왔는지를 깨닫는다. 꿈속에서의 삶은 내 현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현실의 삶은 꿈속에서의 삶에 또 다시 영향을 미친다. 그 경계와 연결지점을 나는 아마도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꿈을 들여다볼 이유가 충분하다.


한꺼번에 열린 서랍장



그림

 1. Xi Zhang, Feathers

Xi Zhang                  

MLGS03E60 Feathers, Acrylic on Canvas, 72 x 60 inches, 2016

출처: https://xizhang.org/home.html


“나는 외벽 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떨어지면서 지금이 ‘꿈이 아니면 어쩌지?’ 하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섬뜩한 공포였지만 점점 무기력이 되었다. 꿈이 반복될수록 ‘꿈이 아닐 수 있다’는 공포는 사실 내가 이미 꿈인 걸 알고 있었기에 ‘(차라리) 꿈이 아닐 수 있다(면)’이 되었다.



2. Tim Eitel, Untitled (Part)」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를 두고 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울었다. 다음 날에는 내가 ‘피치 못 하게’ 누군가를 두고 가는 꿈을 꿨다”

  팀 아이텔의 이 그림이 생각난다. 꿈에서 누군가가 나를 두고 갈 때의 마음, 내가 누군가를 두고 가야만 할 때의 마음이, 이 그림을 보면 선명해진다.



3. René Magritte, 「Le portrait

René Magritte

Le portrait, 1935.

출처: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9990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다음에는 날아올라 볼까’라고 생각했는데, 바닥에 수많은 눈이 들러붙어 있었다”

트라우마는 일상 깊숙이 있다. 전혀 뜬금없는 시공간에서 나를 착실하고 성실하게 기다린다.



노래

1. 유하-글자의 도망

https://www.youtube.com/watch?v=WU9ZG12VnP0


“그쪽으로 가기 위해 힘을 쓰는데 도무지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제대로 된 방향을 잡으려고 내내 애썼지만, 자꾸 멀어지기만 했다”를 읽고 떠올린 노래다. 끝내 가질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내가 이렇게나 열심히 향해도 못 닿는 거라면, 그들이 도망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 답답하고 좌절스러운 상황에서, 감정을 걷어내고 흘러가는 대로 관조하게 만드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가 포근하게 느껴진다.


2. -날개

https://www.youtube.com/watch?v=Gd1RNbhF6A8

롤러코스터가 떨어지는 꿈을 꾼 날 MOT의 「날개」를 들었다.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지”라는 부분을 들으려고.

  탈선한 걸 알면서도 꽉 잡은 기관사의 마음은 결국 떨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던 나의 마음 같다. 떨어진 곳은 파편과 비명이 튀기는 난장판이 아닌, 해 질 녘의 평화로운 잔디밭이었다. 그곳이 차분하고 아름다웠다는 게 가장 큰 재난처럼 느껴졌다.

  삶에서 아주 큰 일에 휩쓸렸을 때, 내가 헤엄쳐 벗어나거나 온몸으로 견딘 뒤에도 대체로 내 것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마다 축제가 끝난 다음 날의 광장이나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의 옥상을 떠올렸다. 널브러져 있는 것 가운데 가져갈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던.



“몸 하나에 머리 두 개 달린 하마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나는 마을 사람들과 그 하마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농사를 지었다. 꿈에서는 그 모든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첫 번째 꿈 서신의 첫 번째 꿈이다. 이 꿈은 우리의 선언 같다. ‘개연성’이 없다는 선언. 없지만 우리가 의미를 형성할 거라는 선언.

  초현실주의는 ‘미술운동’이지만 초반에는 소설가나 시인이 많이 참여했다. 초현실주의라는 단어도 시인이자 미술비평가 아폴리네르가 만들었다. 또한, 초현실주의의 기본 명제로 여겨지는 “수술대 위에서의 박쥐우산과 재봉틀의 우연한 만남”도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가져왔다.

  이렇게 말해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몸 하나에 머리가 두 개 달린 하마”가 있고 “하마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농사”를 짓는 마을이 있다.


“현실은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이미지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변형되어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초현실주의자들이 현실의 모습이라 부르는 것 (그들이 만들어낸 초현실)은 왜곡된 현실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사실성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로서의 인간은 현실과 의식의 종합인 초현실에 도달한다. 현실과 의식이 함께 극복되는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이 초현실은 현실의 정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고전적 세계관의 형이상학에 어울리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초현실주의 선언문」중(『초현실주의 선언』황현산 옮김·주석·해설, 미메시스, 2012.)




Max Ernst                  

Celebes, 1921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75960&cid=42645&categoryId=42645


막스 에른스트의 「셀레베스」는 「초현실주의 선언」이 발표되기 전에 발표되었다. 따라서 최초의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불린다. 에른스트의 작품은 대부분 (프로이트) 정신분석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에른스트가 『꿈의 해석』을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독일인이었기 때문에 유럽의 다른 작가들보다 더 빨리 책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자가 사람을 만든다」에는 중절모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는 ‘수직적’‘남근적’등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피에타」의 변형인「피에타 혹은 밤의 혁명」은 그리스도의 시신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애도하는 마리아가 아닌 중절모를 쓴 채 아들을 안은 아버지가 그려져 있다. 이는 아버지의 권위와 억압에 사로잡힌 아들의 모습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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