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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Dec 05. 2022

HOME SWEET HOME

집주인은 고상한 취향을 갖고 있는 듯하다. 짙은 나무색이 잘 칠해진 가구와 핑크색 벽이 꽤나 잘 어울린다. 집 안은 여기저기, 번쩍번쩍 광이 나도록 닦여 있다. 주인은 자신의 몸에 꼭 맞춘 듯 한 의자에 한쪽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협탁에는 피우다 만 담배가 연기를 내뿜고 있다.

Q: 집이 꽤나 고풍스럽습니다. 이사하신 지 얼마나 되었죠?


A: 올해로 꼭 14년 차입니다.


Q: 아, 굉장히 오래되었군요. 하지만 퍽 관리가 잘 된 것 같습니다.


A: 그렇습니다. 뭐랄까, 제 나름대로 엄청나게 애착을 갖고 있거든요. 선생님께만 말해드리는 거지만,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땐 제대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좁았답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방은 없는 듯 하지만, 4인 가족이 생활해도 될 정도로 충분히 크다. 하물며 집주인 한 명만 산다면야.


Q: 구체적으로 집을 만드시게 된 경위를 여쭈어봐도 될까요? A: 물론입니다. 개인적으로, 저처럼 집을 구하려는 피플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은 과정이죠. 인내심을 가져야 하니까요. 저도 ‘집다운 집'을 꾸린 건 겨우 4년 전이랄까요.


Q: 그렇다면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설명해주시죠.


A: 아, 처음. 처음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무성한 풀들로 가득 찬 어두 컴컴한 동굴을 한참이나 거슬러와서 – 지금 당신이 힘들이지 않고 올 수 있는 건 저의 깔끔한 관리 때문이랍니다 – 지금의 자리까지 도달했습니다. 정말이지, 축축하고 힘들었지요. 게다가 발 붙일 틈조차 없이 좁디좁았고요. 그리고 손에 들려있는 것도 없었구요. 문자 그대로 제 손으로 벽을 파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 봐야 별로 힘들건 없습니다. 시간만 들이면 누구나 팔 수 있으니까요.


Q: 뭔가 있군요.


A: 그렇습니다. 그 쇠로 만든 큰 뱀들 말입니다. 그 녀석들이 제 다리를 잡은 게 얼마나 많나 모릅니다. 한 번은 벽을 파내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큰 뱀이 제 다리를 꼭 물고 놔주질 않는 게 아닙니까! 나를 끌고 나가려기에 벽을 부여잡고 한사코 버텼습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뱀들이 잠깐 물러난 틈을 타 더 깊숙한 곳으로 숨었고요. 그 이후로 절대로 출구에서 가까운 곳에서는 자지 않습니다.


Q: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그 뱀은 지금 어떻게 되었죠?


A: 지금도 종종 입구 쪽에서 배회하기는 합니다만, 이제 우리가 있는 곳에는 닿지 못하는 걸로 보입니다. 오다가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딱 붉은색으로 물든 곳까지만 오는 듯해요.


Q: 다행입니다. 그러면 그때 이후로 공격을 받지 않으셨나요?


A: 아뇨, 계속해서 공격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갑자기 입구를 가득 채울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이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큰 뱀의 공격이 한 동안 없었던 터라, 방심하고 있던 차였죠. 거의 익사할 뻔했습니다만, 간신히 천장에 조금 남아있던 공기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물이 빠져나가고, 저는 가장 먼저 입구에 튼튼한 문을 설치해야 했죠.


Q: 아, 저도 들어오는 길에 보았습니다. 두께가 엄청나던데요?


A: 그 정도는 되어야 물이 새지 않더군요.


Q: 다른 이야기로 잠깐 넘어가겠습니다. 아무래도 선생님 같은 공정을 시도하려는 다른 피플들이 가장 궁금해할 것 같은데, 파내신 벽은 어떻게 처리하셨을까요?


A: 좀 부끄럽습니다만, 이 부분은 제가 다소 운이 좋았다고 봅니다. 제가 한 건 파낸 벽을 입구 근처에 쌓아놓기만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파낸 벽이 거의 입구를 막을 정도였어서, 제 한 몸 누일 정도밖에 넓히지 못했죠. 근데 어느 날 보니까 제가 쌓아놓은 벽이 모조리 없어진 것 아닙니까! 저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어요. 그래서 조금 벽을 파낸 다음 쌓아두고 입구를 유심히 관찰했죠. 물론 쇠 뱀들을 피할 수 있는 위치에서 말입니다. 그랬더니, 뱀들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 더 머리가 넙데데하게 큰 놈이 웬걸 제가 쌓아놓는 벽을 한 번에 훔쳐가는 것 아니겠어요!


Q: 와, 정말 천운이 따라주셨군요.


A: 네 맞습니다. 천운이 따라주었지요. 물론 그 녀석이 오는 주기는 좀 들쑥 날쑥하기는 했지만요. 뭐, 일주일 만에 오기도 하고, 하루 걸러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착실하게 벽을 가져갔지요. 그렇게 방을 넓히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Q: 정말 뛰어난 인내심입니다. 그렇다면 집을 만들 때 더 필요한 게 있을까요?


A: 음…… 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뭐랄까, 저는 집을 길들인다고 표현합니다만. 주기적으로…… 직접 보여드리는 게 좋겠군요.


집주인은 일어나서 가장 안쪽 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벽에 세워져 있는 몽둥이를 들더니 벽을 내리친다. 온 힘을 다해 벽을 몇 번 내리치자 집 전체가 흔들린다. 벽의 핑크색이 조금 더 붉게 바뀌어간다. 몽둥이를 내려놓은 집주인은 붉게 변한 벽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A: 야이 멍청한 개자식아! 너처럼 빌어먹을 놈은 한 번도 못 봤다. 똥통에 빠져 죽을 개 잡놈! 쓰레기! 병신!


그러자 나는 몸이 다소간 붕 뜨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떠오르는 몸을 붙잡아 놓기 위해 의자를 꼭 붙든다. 집주인은 다소 지치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듯, 거친 숨소리를 내며 웃었다.


A: 뭐, 이런 과정인 겁니다. 이렇게 안 하면 다시 집이 좁아지거든요. 지속적으로 길들여놔야 합니다. 독자분들도 이런 건 모르실걸요?


집주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유용한 정보다.


Q: 인터뷰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혹시 이 집에 대해 선생님께서 정말 이건 참 좋다고 생각하는 게 있으실까요?


A: 아, 그런 거라면 마침 있습니다. 보여드리죠.


집주인은 협탁 서랍 안에서 수도꼭지를 하나 꺼낸다. 그리고 아까 치대 놓은 벽으로 다가가 수도꼭지를 힘주어 박는다. 집 전체가 부르르 떨린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붉은색 액체가 흘러나온다. 집주인은 잔을 두 개 가져가 액체를 담고, 한 잔을 나에게 건넨다.


A: 언제든 신선한 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갓 짜낸 피 맛은 어디서도 마셔보지 못할 만큼 좋았다.


나는 인터뷰를 마치고, 녹음기를 끈 다음 다시 입구로 나선다. 집주인은 신나게 벽을 때린다. 붉은 피가 울컥울컥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고, 나는 흥분한 집주인을 뒤로한 채 집 밖으로 나온다.


A: 멍청한 인간아! 개 같은 놈! 후레자식!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병신 같은 놈!


동굴 전체에 집주인의 말이 메아리로 울린다. 나는 녹음기를 꼭 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빛으로 향해 나아간다.




침대에는 한 사람이 누워, 아니 묶여 있다. 그는 결박을 풀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럴수록 조임은 단단해져 간다. 눈은 초점을 잃고 흐려져있다. 그는 끊임없이 말한다.


“내 귀에 뭔가 있어요. 누가 나에게 속삭여요. 내 귀에 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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