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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Jan 17. 2023

고양이

예전엔 이리될 줄 퍽 몰랐지만, 요즘은 어딜 둘러보더라도 애완동물 투성이다. 분명 코흘리개 시절을 생각해 보더라도 애완동물이란 건 별로 없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최초의 애완동물(그때는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없었다) 대문을 지키기 위한, 다소 우울증에 걸린 것 같은 방범용 개들이 대부분이었다. 목적과 쓰임이 분명한 가전제품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미용실에서 양쪽 귀가 촌스러운 색으로 물들어 있는 시츄나 스피츠 같은 노견들이거나. 하지만 이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 원 참, 각종 개들이나 파충류, 곤충 까지도 키운다. 내가 어렸을 때 ‘백한마리 달마시안’을 보고 느낀 건 절대 개를 키우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뿐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마음을 먹은 걸까.

그런가 하면, 이걸 키우는 게 맞나 – 싶은 애완동물이 있다. 고양이 말이다. 좋게 봐줘도 누구 말마따마 정말 인간을 큰 고양이 정도로 생각하는 이 생물들은, 애완동물이니 반려 동물이니 하는 범주에 그리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겨우 포유류 고양이 주제에 ‘존재의 선’을 딱 그어 놓는 느낌이니까.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개들이나 생각이란 걸 아예 못하는 것 같은 파충류나 곤충류와는 뭔가 다르다.


나는 부분적으로 나마 그들의 독립성이나 존재의 고고함이 어떤 생물학적인 레벨에서 결정될 수 도 있지만, 많은 부분 그것이 ‘고양이 통신’의 존재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양이 통신은 내가 추측한 이름이다. 실제론 훨씬 멋있겠지).

고양이 통신.

심심한 길 고양이들로 구성된 이 고양이 통신은 우리 같은 인간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지붕에서 지붕으로, 창문에서 창문으로 노다니며 집 안에 고양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다. 알루미늄 캔 만한 구멍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는 이 고양이 통신원들은, 고양이를 찾았다면 그들에게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뭐, 이야기의 대가로 먹을거나 물을 받는 고양이도 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알려져 있다.

(이쯤에서, 당신이 만일 고양이를 키운다면 고양이 통신원이 한번쯤 왔다갔음을 인지해야 한다. 혹시 그런 경우 없는가? 갑자기 키우던 작은 쪼물 딱지가 말을 듣지 않고 하악 거린다던지, 밥을 잘 먹지 않는다던지, 갑자기 창문이 열려있다던지 하는 일 말이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있었다면 필시 그것은 고양이 통신원 때문일 것이다.)

(하나 더, ‘냥줍’한 고양이 마저 당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일부 떠돌이 생활에 지친 길고양이나 밖에서 생활할 준비가 안된 어린 고양이들은 고양이 통신원에게 ‘괜찮은 집사’를 소개받거나, 통신원이 그들에게 소개해 준다……. 결코 당신이 운명의 선택을 받은 게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여기, 한 뼘 정도 되는 비좁은 창문으로 찰나의 햇살을 받으며 바닥에서 자는, 고양이 통신을 처음 접하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어딘가 특이한 구석이 있는 고양이다. 뭐, 좋은 말로 특이하다고는 했지만 이상한 편에 가까웠다. 조물주가 포토샵으로 어색하게 망쳐놓은 것은 긴 허리와 짧은 다리. 폭죽처럼 뻗힌 긴 꼬리. 토끼가 아닌지 의심되는 긴 귀와 툭 튀어나온 큰 눈. 가장 이상한 부분은 털 색깔이었다. 누가 실수로 아크릴 물감 선반을 건드려 더러워진 바닥에 이 고양이를 문대기라도 한 것처럼 털 색깔은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모든 고양이라면 조금씩 갖고 있는 갈색이나 검정색, 노란색부터 빨간색이나 파란색, 심지어는 약간의 분홍빛까지. 게다가 눈 색깔은 또 어떤지, 마른하늘에 치는 번개처럼, 창백한 푸른색이었다.

그래서일까, 반지하의 작은 창문 밖에서 야옹 거리며 통신을 시작하려고 하는 삼색 고양이 통신원이 이 작은 고양이를 처음 보자마자 한 말이 이것이었다.

“으엑.”

하지만 이러 사정을, 게다가 고양이 통신조차 처음 접해보는 이 작은 고양이가 알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창문 밖의 처음 보는 고양이를 신기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내가 살다 살다 많은 고양이를 보긴 봤지만-“

하며 통신원은 익숙한 듯 창문을 앞 발로 열며 들어왔다. (고양이 통신원들은 능숙하게 창문을 열 줄 안다. 심지어 창문이 안쪽에서 잠겨있어도 말이다!)

“너 같이 이상하게 생긴 고양이는 정말 처음이다야.”

하며 잠시 발을 핥으며 털을 골랐다. 그리곤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냄새를 맡거나, 앞발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흠, 넓지 않은 게 흠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불쾌한 개 냄새도 없고.”

그리곤 밥그릇으로 가 남아 있던 사료를 씹으며 말했다.

“밥은 좀 별로네. 인간이 사냥 실력은 별론가 본데.”

여유롭게 물까지 할짝거린 통신원은 – 비린 수돗물 맛에 얼굴을 찡그리긴 했지만 - 둘러보기를 마치고 다시 아기 고양이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너 정말 고양이가 맞기는 한 거야? 생긴 건 영 아닌데 냄새는 고양이 같단 말이야.”

한참 동안이나 통신원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의 주위를 얼쩡거렸다.

“너 털 고르기는 전혀 안 하는 거야? 아니, 어떻게 고양이가 털이 이렇게 엉망일 수 있냐고! 전혀 고양이 답지 않잖아!”

그러더니 보란 듯이 통신원은 자신의 등 쪽 털을 혀로 핥으며 뽐내듯 골랐다. 혀가 닿은 곳이 다른 곳 보다 좀 더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아기 고양이는 어색하게 통신원을 따라 하였지만, 통신원은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듯 말했다.

“네가 진짜 고양이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물쩡 거릴 수는 없지. 이 몸은 달이 뜰 때즘에 데이트가 있거든. 근사한 샴고양이야.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꽤 박력 있는 편이거든. 나는 그런 암고양이들이 좋더라.”

하고는 행복한 상상을 하는 듯 꼬리가 꼿꼿이 서더니 바르르 떨렸다.

“여하튼, 나는 너랑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는 말이야. 자 빨리빨리 하자고. 넌 지금 인간한테 뭐라고 불리고 있지?”

아기 고양이는 속삭이듯 자신의 이름을 통신원한테 말해주었다.

“유라? 진짜 들어본 이름 중에 최악이야. 지나가던 바퀴벌레들한테도 그런 이름은 붙여주지 않겠다. 으으, 넌 생긴 것도 그렇고 이름도 진짜 이상하구나. 그건 그렇고 이제 네 고양이 이름은……”

하고는 잠시동안 고민하더니,

“그래, 정했어. 넌 이제부터 ‘속삭이는 털뭉치’야.”


(아, 고양이 이름. 고양이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독자들을 위해 설명을 잠시 하자면, 고양이 이름이란 고양이들이 자신들끼리 서로를 부르기 위해서 붙이는 이름이다. 인간이란 커다랗고 빨리 달리거나 시끄럽게 하는 데 큰 소질 있는 것과 달리 대부분 이름 짓는 실력이 끔찍하기 때문에, 고양이들은 독자적인 고양이 이름을 갖는다. 저쪽 녹색 지붕 틈새에 사는 전설적인 치즈 고양이는 ‘가을 은행나무’라는 멋진 이름이 있다. 고가의 다리 사이를 오르내리는 검정고양이에게는 ‘벼락 맞은 나무’다. 그건 ‘해피’니 ‘연닢’이니 하는 이상한 인간식 이름보다야 훨씬 났다. 뭐, 길에서 나고 자란 고양이들은 엄마 고양이가 이런 이름을 붙여주지만, 평생 밖에 나갈 일 없는 집고양이에게는 고양이 통신원이 대부분 이름을 붙여주기 마련이다.)

(물론 한 가지 이름이 더 있다. 죽음이 불러주는 고양이의 진짜 이름 말이다. 어떤 고양이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해 위대한 여행을 떠나고, 여행 끝에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는다. 그리고 고양이가 죽어서 별이 될 때, 이름을 죽음이 다시 거두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룰 이야기는 아니다.)


작은 고양이 유라, 아니, 이제부터 ‘속삭이는 털뭉치’라고 불릴 이 고양이는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이 삼색 고양이가 자신에게 준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것에 꼭 마음에 들었다.

“자, 이제 됐지? 털뭉치야. 고양이 통신은 다음부터 해줄게. 오늘은 고양이 이름이 생긴 거에 만족해. 다음엔 털 좀 고르고 말이야. 자 그럼 난 간다-“

하더니, 나가는 길에 털뭉치를 쓰윽 돌아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창문을 통해 나갔다. 훤히 창문을 열어둔 채로.

인간이 집에 들어왔을 때도, 생각이 복잡한 털뭉치는 선반 위에서 꼼짝 않고 인간을 맞았다. 인간은 평소와 다른 유라-털뭉치 말이다-의 모습에 의아해하면서도, 열려있는 창문에 깜짝 놀라며 황급히 닫았다. 그리곤 창문을 통해서 털뭉치가 나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안심한 듯, 한참을 털뭉치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털뭉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속삭이는 털뭉치’라는 글자가 – 설마 인간만 언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여러 개로 분해되어 음식물 쓰레기의 날파리처럼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었다. 그 사이를 고양이 통신을 하러 온 그 삼색 고양이가 그 어지러운 글자들의 날림 속에서 나타나서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넌 이상한 고양이야."

털뭉치는 그 고양이의 말이 왜 그렇게 서글픈 줄 몰랐다. 난 이상한가? 고개를 돌려 털 냄새를 맡아보았다. 하지만 다른 고양이의 냄새를 모르기 때문에, 털뭉치는 무엇이 이상한 지 알 수 없었다. 털뭉치는 거울 앞에 섰다. 하지만 다른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며 고양이 다운 자세를 취해봤지만, 이내 털뭉치는 고양이 다운 자세란 걸 전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털뭉치를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이상함 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나에게 밥을 주는 ‘저것'은 나와는 달라! 그동안 인간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은 어렴풋이 눈치채긴 했지만, 그렇다고 별 달리 생각하지는 않았다. 인간 몸은 따듯했다. 자신도 따뜻하고 말이다. 내가 물을 마시는 것처럼 인간도 물을 마신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인간은 말도 했다. 가끔씩 서로를 쓰다듬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인간이 털뭉치의 세계였고, 인간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털뭉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간은 고양이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자신은 고양이다. 게다가 나는 어쩌면 고양이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고양이 답지 않으니까.

어쩌면 고양이 통신이 잘못 온 것이 아닐까? 털뭉치는 생각했다. 어쩌면 털뭉치는 고양이가 아닐 수 도 있다. 어쩌면 통신원이 말한 그 끔찍한 냄새를 풍긴다는 ‘개’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미 고양이 이름을 받았는 걸! 그렇다면 난 무엇이지?

저기 반 지하의 창문으로 보이는 달빛을 보며 더욱 심란해진 털뭉치는 자신이 고양이냐고 물어보기 위해 인간에게 물어보았지만, 인간은 그저 털뭉치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아무리 물어보아도, 인간은 답해주지 않았다.


다음번 고양이 통신이 왔을 때도, 통신원은 영 속삭이는 털뭉치를 달가워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이곳에 들른 것조차 실수 내지 우연에 가까운 듯싶었다.

“자, 이상한 털뭉치야. 해가 열두 번 뜰 때까지 일어난 고양이 통신이야.”

이번엔 방에는 들어오지는 않은 채, 반지하의 작은 창문턱에 앞발을 걸쳐놓은 상태로, 고양이 통신을 하기 시작했다.

“흠흠, 붉은색 담장이 있는 집에는 새로운 고양이가 왔더라. 적갈색 점박 무늬가 있고 다리가 아주 가늘고 길더라고. 냄새도 아주 좋을 것 같아. 아, 파수꾼 고양이 ‘여름 태양'이 은퇴했어. 이제 조금 쉬다가 이제 위대한 여행을 떠날 거라고 하더라. 후임은 ‘회색 바위'가 맡기로 했어. 뭐, 나보다는 침착한 놈이지만 ‘여름 태양’ 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되긴 하는데…… 뭐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저기 고양이 모임이 열리는 광장에 인간들이 이상한 짓을……”

하면서 삼색 고양이는 끝도 없이 재잘대었다. 털뭉치는 그저 통신원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니, 털뭉치는 통신원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저 ‘고양이다운 고양이’가 하는 행동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말 끝마다 코를 한 번 핥는 버릇이라던지, 잠깐잠깐 몸을 핥아서 털을 고르는 것이라던지, 고양이 이름이 나올 때마다 꼬리를 휙휙 휘두르는 것 말이다. 저것이 필시 ‘고양이 같은 행동' 이리라. 거의 자신만의 무아지경에 빠져 말하는 통신원을 두고, 물론 이제는 고양이 통신이 아니라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만 해대고 있었지만, 털뭉치는 조심스럽게 그를 따라 하였다.

“…… 그렇게 된 거야. 그렇게 ‘투명한 유리'랑 ‘높은 바람'이 결혼을 하게 된 거지. 이제 조금 있으면 아기들도 나올 것 같아. 정말 잘됐지 뭐야…….”

그러더니, 갑자기 통신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꼬리가 불편한 듯 허공을 탁탁하고 몇 번 갈랐다.

“……. 그리고 털뭉치야, 뭐, 이런 것까지 전해줄 필요는 없지만 말이야.”

통신원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길가를 두고 큰 전쟁이 벌어질 것 같아. 원래 높은 집 아래 모여사는 삼색 고양이들이랑 저 멀리 낮은 집에 사는 노랑 고양이들 사이의 일인 줄 알았는데 글쎄…….”

하더니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것이었다.

“이젠 온 동네 고양이들이 다 끼게 생겼어. 삼색 고양이들이 온갖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들을 끌어모았거든. 점박이들도 포함해서 말이야. 그러자 노랑 고양이들도 줄무늬가 없는 고양이들을 자기편으로 포섭한 거야. 심지어는 집고양이들한테 까지 찾아가서 쑥덕거리고 있나 봐. 덕분에 동네 분위기가 아주 흉흉해. 이런 와중에 여름 태양은 은퇴를 하지 않나…… 늙은 고양이들이 전혀 고양이 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말려도, 젊은 고양이들은 들은 체도 안 해.”

통신원은 혀를 끌끌 찼다.

“전혀 고양이 답지 않아. 정말로.”

하더니 털뭉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킥킥 거리며 웃어대었다.

“그런데 너는 정말 어느 쪽에 끼게 되려나? 만약에 네가 밖으로 나간다면 말이야. 줄무늬파? 민무늬파? 진짜 모르겠어. 넌 정말 이상하니까.”

몸을 일으킨 통신원은 기지개를 켜고 눌린 털을 몇 번 정리한 뒤 몸을 돌려 갈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기 전, 고개를 돌려 털뭉치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전했다.

“당분간 고양이 통신은 없어. 이런 때 털 색깔로 일수록 오해를 사기 십상이거든. 당분간 그냥 사냥이나 하면서 숨어있어야지. 나돌아 다니면서 좋을 게 없거든. 그리고-"

이제 반지하의 작은 창문엔 통신원의 꼬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절대로 나오지 마. 아마 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거니까…… 이건 내가 이름을 준 고양이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말이야.”

라는 말과 함께 통신원 고양이는 가버렸다.


속삭이는 털뭉치는 작은 방에 갇혀서 통신원이 떠나간 그 작은 창문을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생각날 때마다 혀로 털을 정리하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하지만 털뭉치의 빳빳한 털은 쉬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고를 때마다 사방으로 뻗혀대었다. 의식적으로 꼬리도 한 번씩 흔들어 보았지만 영 어색하였다

그러면서도 털뭉치는 상상하였다. 저기 끼리끼리 놀고 있는 바깥의 고양이들을 말이다. 삼색 고양이들은 삼색 고양이끼리 놀고 있고, 노랑 고양이는 – 물론 털뭉치는 노랑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 노랑 고양이들끼리, 고등어들은 고등어끼리 놀고 있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고양이다운 행동을 서로 하겠지. 고양이들끼리 모여서 말이다. 털뭉치로썬 당최 고양이 답다는게 뭔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어쩌면 고양이들끼리도 다를 수 있어. 털뭉치는 생각했다. 점박이들은 혀를 저 방향으로 쓰고, 고등어들은 다리부터 털을 정리할지도 몰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는, 자신과 같이 생긴 고양이들이 있었다. 서로 다른 털뭉치들 말이다! 작은 반지하 방에 주로 사는 그들은 뻗힌 털을 갖고 있었다! 털 색깔도 여러 개여서 딱 한 색이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큰 귀로 소리도 잘 들을 수 있고, 딱딱한 사료도 잘 먹는 고양이였다! 그리고 털 고르기도 아무렇게나 할 수 있고 말이다. 이 작은 고양이, 속삭이는 털뭉치는 계속해서 상상했다.

인간이 돌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인간은 으슥한 밤이 되어 풀벌레 소리가 가득할 때쯤에야 집에 돌아왔다. 평소보다 인간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인간은 열려있는 창문을 보며 구시렁거렸다.

“아니, 누가 자꾸 창문을 여는 거지? 이런 지하 단칸방에 뭐 볼 게 있다고 말이야. 빨리 이사를 가던가 해야지……”

인간은 자신의 비루한 방을 돌아보았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조명 아래에서 젖은 벽의 축축한 냄새가 났다. 반지하란 그런 곳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바라게 만들고, 모든 존재를 곰팡이와, 곰팡이가 될 것으로 치환하는 곳. 이곳엔 마치 인간 자신마저 하나의 곰팡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반지하는 오직 곰팡이만 사는 것이다.

아, 아니다, 이곳엔 하나 더 있다. 작은 고양이 말이다. 인간은 손뼉을 치며 고양이를 불렀다.

“유라야, 유라! 밥 먹자.”

하면서 사료통을 열었지만 이제 사료는 손에 한 줌 잡힐 정도밖에 없었다. 이제 사료도 바꿔야 할지 모른다. 성체 고양이용으로 말이다. 그러면 더 많이 먹겠지? 하지만 당장은 돈이 없다. 어쩌면 사장님한테 말해 돈을 좀 가불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예방접종이 얼마나 밀렸더라? 아, 츄르라는 것도 좀 먹여보고 싶은데, 어찌나 비싼지.

인간은 고양이 밥그릇에 마지막 남은 사료를 채워 넣고, 아직까지 생각에 잠겨 몸을 들썩 거리고 있는 유라 - 털뭉치 말이다 -를 들어 밥그릇 앞에 놓았다. 유라는 곧 킁킁 대더니 아작아작 사료를 씹어먹기 시작했다.

인간은 그런 털뭉치를 바라보면서, 쪼그려 앉아 유라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유라를 쓰다듬고 있으면 그래도, 이 작은 집도 조금은 살만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배관에서 새는 물냄새도 좀 날아가고, 불을 땐 적 없는 이 차가운 방도 조금은 따듯해졌다. 자신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곰팡이가 아니라 뭔가 의미가 있는 생물이 되는 듯했다.

인간의 그런 생각도 모른 채, 그릇이 반짝반짝하게 밥을 다 먹은 털뭉치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인간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인간은 정말이지 고양이가 아니다!

고를 털도, 휘두를 꼬리도 없다. 무엇보다, 앞 발을 들고 다닌다. 그런 생각이 들자, 털뭉치는 갑자기 인간이 미워졌다. 애써 인간의 손길도 피해 책장 위로 훌쩍 올라간 털뭉치는 이제 검은색 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고 있는 인간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어딘가에 있을 털뭉치 고양이들을 말이다. 어쩌면 인간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털뭉치는 인간에게 물어보았다. 나와 같은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 있냐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털뭉치를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언어가 작은 골방에서 남실 거렸다. 그중 어느 것도 서로에게 닿지 못했지만 말이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다, 배가 불러 잠이 오는 털뭉치는 몸을 말고 저기 창문 밖의 세상을 생각했다. 그리고 잠들었다. 그리고 꿈에서, 털뭉치는 털뭉치 고양이들과 같이 있었다. 그리고 뭔가 고양이다운 행동을 했다. 다른 여러 고양이들과 털뭉치 고양이들이 함께 어울리고 – 그중엔 통신원 고양이도 있었다, 특별히 껴준 것이다 – 다 같이 공터에 모여 고양이답게 하늘을 날았다. 인간이 저기 작은 점으로 작게 보이고, 털을 스치는 바람이 차가웠다. 그렇게 자신과, 털뭉치 고양이들은 달을 향해 날아갔다.


통신원 고양이가 말한 것처럼, 스무 번 해가 지고 뜨도록 고양이 통신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두세 마리 고양이가 빠르게 우르르 몰려가질 않나, 여기저기선 고양이들끼리 싸우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고양이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털뭉치의 털이 평소의 배는 커져 거의 동그란 털실 뭉치가 되었었다. 뭐, 고양이끼리의 이야기지만, 온 도시가 마치 툭하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창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가 외치는 소리였다. 저기 지붕 멀리서 소리가 갈라지도록 우는 고양이가 말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는 오늘 달이 가장 높이 뜰 때 높은 집 아래 공터에 모여라! 저 무늬 없는 고양이들한테 한 방 먹일 시간이다!”

그런가 하면 저기 담장에서 울리는 고양이의 말은 이랬다.

“줄무늬가 없는 고양이들은 물 옆 집 지붕으로 모여라! 오늘 달이 높이 뜰 때다! 이제 줄무늬 고양이들은 지긋지긋하다!”

하면서 사방에서 고양이들이 외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고양이들이 우다다 뛰어가는 소리가 이어 들렸다.

그러자 털뭉치의 마음도 따라서 달뜨기 시작했다. 한 방 먹인다는 뜻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기 창문 밖에 어딘가에 고양이들이 잔뜩 모인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는 것도 말이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무서운 생각이 털뭉치의 작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리고 어쩌면 말이다, 그곳 어딘가에는 털뭉치 고양이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삼색 고양이 말마따마 온 동네의 모든 고양이가 모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간 밤에 꾼 꿈처럼 다 같이 공터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그들이 사는 반지하 집으로 놀러 갈 수 도 있다……. 그리고 털뭉치 고양이들만의 고양이다움을 배울 수도 있다……. 털뭉치는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고양이스러운 분주함과 스산함은 낮이 밝도록,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지도록 계속되었다. 하늘님도 이 고양이들의 전쟁에 관심 있는지,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 아마 달을 보지 못하는 고양이가 없게 하심이리라.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달이 동쪽에서 말끔하게 떠올랐고, 달이 떠오른 직후부턴 흔한 고양이 지붕 밟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동쪽 끝에서 빼꼼하고 얼굴을 내민 달은 무심하게 계속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떠올랐다.

털뭉치도 좁은 창문으로 하늘을 바다 삼아 항해하는 달을, 저 탐스럽고 밝은 보름달을 보고 있었다. 털뭉치의 마음속에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자신의 이상함과 고양이 다운 것도 잊고 달을 쳐다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벌써 몸은 어딘지 모를 공터에 닿아서 자신과 같은 털뭉치 고양이들과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 혹여 오늘 사냥을 나간 인간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달이 가장 높이 뜨기 큰 고양이 앞 발만큼 전, 털뭉치가 반지하 창문을 열고 태어나 세상 처음 집 밖으로 벗어났을 때의 마음은 나로서도 통 알 수 없다. 어떻게 창문을 열었는지도 말이다. 다만 가뜩이나 부풀어 있는 털을 더욱 잔뜩 부풀이거나, 등이 아치로 굽고, 뻣뻣하게 굳은 팔다리에서 마냥 기쁜 마음으로 나온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털뭉치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반 지하 창문으로 만 본 자동차는 실제로는 곱절은 커 보였다. 창문을 빠르게 스쳐갔었던 구두들과 바짓가락엔 털뭉치의 인간보다 훨씬 더 큰 인간들이 들려있었다. 저기 두꺼운 막대 위에 매달린 불빛에 눈이 따가웠다. 딱딱하고 하얀 박스 – 인간말로 하면 실외기 말이다 - 에서는 따듯한 바람과 굉음이 나왔다. 공기마저 건조하고 메마른 느낌이 들었다. 그게 겨우 열 걸음이나 나섰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털뭉치의 묘생에서,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없었다. 다리가 오들오들 떨리고, 소리를 떨쳐내기 위해 여러 번 머리를 흔들었지만 가실리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날카로운 경적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실상 우리 같은 둔하고 멍청한 인간에게는 별로 크지 않은 가벼운 경적일 수 있겠으나, 세상을 갓 접한 털뭉치에게는 너무나 심한 자극이었다. 자리에서 펄쩍 뛴 털뭉치는 그대로 어딘지 모를 곳으로 우당탕탕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겨우 몇 평 안 되는 집에서 뛰었던 것과는 다르게, 주변 풍경이 끊임없이 휙휙 바뀌어댔고, 그것이 털뭉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지칠 때로 지쳐서야 털뭉치는 어떤 아파트 화단 구석 돌 틈 사이에 숨을 수 있었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저기 하늘에 걸려 이제 서쪽으로 흘러가는 보름달만 털뭉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온 인간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불러보아도 유라는 보이지 않았다. 자주 끼어있곤 했던 문 뒤도, 숨을 때 자주 사용하던 침대 밑에도 말이다. 그리고 겨우 손가락 세 마디만큼 열려있는 창문을 발견했을 때, 이 불쌍한 집사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곧장 바깥으로 나가 반지하 창문의 근처, 고양이가 숨을 수 있을 만한 곳은 모조리 찾기 시작했다. 큰 소리를 싫어하는 고양이를 생각하면 이름을 소리쳐 부를 수도 없었다. 대신 마음속으로 심장이 터져라 이름을 부르며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날이 밝도록 찾았지만 유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은 영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주 먹던 사료를 곳곳에 놔두었지만, 약삭빠른 길고양이들이 음식만 싹 먹고 달아나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고양이 탐정은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불렀다. 각종 고양이 커뮤니티에 사진을 올리고, 경찰에도 신고해 보았지만, 영 소득이 없었다.

세상의 유일한 온기가 사라진 인간은 그저 발로 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마치 뛰는 것에서 온기를 다시 얻어보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인간은 온기를 얻은 듯 식은땀이 흘렀지만, 도리어 마음은 계속해서 차가워지고, 흘린 땀만큼 눈물이 났다. 그것이 꼬박 달이 뜨기 시작한 시간부터, 달이 지고 해가 말끔하게 나타나려고 하는 새벽까지의 일이었다.

날이 완전히 밝기 전, 밤잠 없는 집주인 할머니가 집 앞에 나왔을 때, 눈물과 땀으로 범벅된 집사를 보았다. 할매는 반지하에 사는 처자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보았고, 자조치종을 물어 사정을 알자마자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아이고, 어쩌자고 고양이 새끼한테 정을 준단가, 제 주인도 잊고 도망가는 잡스러운 놈이구만.”

그 말에 집사는 주저앉아 유라를 잃어버린 이후 처음으로 크게,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었다. 할매의 말은 어쩌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보물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할매는 그런 집사의 등짝을 거치른 손으로 때리며 말했다.

“아니, 어째 고깟 고양이 때문에 산 가스나가 이리 힘들어하는겨. 일어나그라, 일어나서 밥도 먹고, 기운내야지.”

주인 할매의 부축에 어찌저찌 집사는 자신이 사는 반지하 집까지 갈 수 있었다. 그대로 피곤에 널브러져 잠이 오려고 했지만, 이내 주인 할매가 다시 내려오더니 양손 가득 밥과 반찬을 가져왔다.

“아따, 계집애 사는 곳 치고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네. 이거 먹고 다 잊어야 돼. 응? 그깟 고양이 한 마리 새끼로 다 큰 처자가 울면 쓰는가. 좀 멀끔하게 살아야 쓰지.”

하며 혀를 끌끌 차며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참 이상하다. 집사는 덩그러니 현관에 놓은 밥과 반찬을 보자 이상하게도 허기가 올라왔다. 그렇게 슬픈데도 사람은 허기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은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허기였다. 물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먹어보는, 정확히는 유라를 키우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입에 대본 제대로 된 밥이기도 했고 말이다.

집사는 현관의 앉은자리에서 수저도 없이 밥과 반찬을 손으로 퍼먹었다. 무언가,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야만스러운 식사를 하는 집사의 눈에 스쳤다. 그리고 양손이 음식물에 더러운 상태로, 씻지도 않고, 그대로 쓰러져 죽음과 같이 미동 없이 잠을 잤다.


같은 시간, 털뭉치도 처음 느껴보는 극심한 허기와 갈증을 느꼈다. 용기 내어 야옹하고 울어봤지만 누구도 털뭉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배고픔이 결국 본능을 짓눌렀고, 수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다시 해가 뜨고 질 때였다. 거기엔 작은 인간들이 뛰어다니기도, 이상한 곳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기도 하며 놀고 있었다. 털뭉치는 조심스럽게 그들의 가장자리로 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들의 관심을 끌지 않도록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어느 벤치 밑, 그곳에 밥그릇과 물이 있었다! 이상하고 말고를 떠나, 굶주림에 정신없이 머리를 박고 사료를 먹었다. 숨을 돌리는 시간에는 물을 마시고 말이다. 그렇게 몇 초나 촵촵거리며 먹고 있었을까, 갑자기 저기 수풀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털뭉치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을 뿐이었다. 그런 소리에 반응하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그런 소리에 주의해야 했다. 아무리 배고파도 말이다. 지척까지 꼬리를 세우고 다가온 것은 노랑 고양이였다. 이 사나운 수컷 고양이는 자신의 구역에서 처음 보는 이 요상한 고양이인지, 아닌지 모를 이상한 생물을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은 전쟁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그것은 자신의 밥을 뺏어 먹고 있었다. 보통 어린 고양이에겐 자비를 베푸는 ‘시든 상록수'였지만, 저기서 밥을 먹고 있는 저것은 무언가 자신들과 달랐다. 결국 ‘시든 상록수'는 앞발을 들고 털뭉치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아프기도 했지만, 털뭉치는 자신 앞의 이 큰 고양이에게 더욱 놀랐다. 털이 곤두섰고, 동공이 눈만큼 커졌다. 그리고 앞의 노란 고양이는 들어본 적 없이 적의에 가득 찬 소리로 쉬익 거렸다. 주린 배를 다 채우지도 못했건만, 털뭉치는 그대로 주춤주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밖은 그런 일들 천지였다. 그렇게, 이 작은 고양이 털뭉치는 일곱 밥과 일곱 낮을 보냈다. 말이 보낸 거지, 사실상 안간힘을 쓰며 버틴 것에 가까웠다. 물론 작은 고양이를 보지도 못하고 쌩쌩 달리는 저 차나, 돌을 던져대는 음험한 인간도 위험한 것이었으나 실상 가장 위험한 건 같은 고양이 들이었다.

고양이들은 털뭉치에게 영 호의적이지 않았다. ‘어린 고양이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고양이 세계의 불문율도 털뭉치에게는 통하지 않는가 싶었다. 여기저기 길고양이들을 위한 밥과 물이 있었지만, 그건 진짜 고양이 같은 고양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털뭉치 같은 고양이가 아니라 말이다. 고양이인 털뭉치는 고양이 세계의 끝으로 내몰렸다. 털뭉치에게 허락된 것이라곤 쓰레기봉투의 상한 음식이나, 지붕의 판넬에 고여있는 물뿐이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허기와 추위, 물리적 위협이 털뭉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들의 눈빛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온갖 불신과 혐오가 담겨 있었다. 그것이 털뭉치가 세상으로 나와 가장 먼저 배운 것이었다. 낯섬에서 오는 불신과 다름에서 오는 혐오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털뭉치는 혼자였다.

그럴수록 털뭉치는 자신을 아껴주던 인간이 생각났다. 기억이 존재하던 때부터 있던 인간을 말이다. 인간은 얼마나 나와 닮아 있었나! 기억이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이 울면 인간도 울어주었다. 자신이 인간을 쓰다듬어주면, 인간도 자신을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밥을 먹고 있으면, 인간도 밥을 먹었다. 같이 있으면 따뜻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털뭉치는 저기 마음도 몰라주는 야속한 달빛을 바라보며, 생에 처음으로 큰 소리로 울었다. 새끼 고양이의 처절한 울음이었다. 어딘가 고양이스럽지도, 그렇지도 않은 울음소리 였다. 소리는 도시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맨홀 바닥 아래 사는 큰 시궁쥐도 그 소리를 들었고, 처마 밑의 비둘기 가족도, 저기 아무개 씨 집 안에 사는 퍼그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털뭉치의 소리를 듣고 찾아온 주인과 재회했다는 낭만적인 도시 동화는 나오지 않는다. 아쉽게도 털뭉치의 소리는, 저기 반지하 아래 사는 주인에게 닿기에는 너무 작았다. 다만 소리를 듣고 온 것은 다른 고양이였다. 유일하게, 이 도시에서 털뭉치에게 적대적이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 말이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것은 털뭉치의 고양이 통신원, 삼색 고양이였다. 무언가 재미난 일이 있는 것 같아 – 실제로 그게 다른 고양이의 불행이더라도 말이다 – 재빠르게 달려온 고양이 통신원은, 구슬프게 울고 있는 털뭉치를 보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속삭이는 털뭉치 아니야! 도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고양이 통신원은 여기저기 꼬질꼬질한 털뭉치의 꼬락서니를 보고 대번에 집을 나온 것을 알아챘지만, 계속해서 물었다. 그리고 털뭉치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아직 낙엽같이 바스락 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통신원은 혀를 끌끌 찼다.

“자신의 고양이 가족을 찾으려고 집을 나왔다고? 아이고 이 철딱서니 없는 고양이 같으니라고. 그 전쟁통에 너 같은 고양이를 찾을 수 있겠어? 게다가 전쟁은 일곱 낮 전에 끝났다고!”

하지만 혀를 끌끌 참과 동시에, 어떤 장면이 통신원의 머릿속에서 스치듯 지나갔다. 본래 이 성질 급하고 쾌활한 고양이는 좀 더 그 장면을 생각해 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 오르는 것을 곧바로 털뭉치에게 말해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본 것 같아.”

두 고양이의 네 눈이 동시에 타이어만큼 커졌다. 그리고 길고 긴 삼색 고양이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맞아…… 거기서 말이야. ‘낙엽 전쟁’에서 말이야. 그래, 우린 그렇게 이름 붙였어. 낙엽 전쟁이라고. 선언하길 좋아하는 ‘스산한 그림자’가 그렇게 하자고 했거든.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렇게 많은 고양이들이 치고 박는걸 처음 봤단 말이야. 첫 번째로 쥐를 잡은 지 벌써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말이야.

그날 공터에서는 바람 한 점 불지도 않았어. 저기 지붕 위엔 줄무늬 없는 온갖 고양이들이 있었어. 공터 아래는 무늬가 있는 고양이가 잔뜩 있었고 말이야. 상상이 가?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고양이들 말이야. 나야 저기 멀리서 숨어서 내 애인 ‘북쪽 별’과 함께 말이야. (언젠가 소개시켜줄게, 털뭉치야)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비둘기 한 마리가 툭 하고 고양이들 사이에 앉은 거야. 몰라, 도대체 그 비둘기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바닥을 쪼아대기 시작했고 말이야. 상상해 봐 털뭉치야. 흥분으로 가득 찬 발톱 수백 개랑 딱 그 절반 되는 불타는 눈 사이에 껴 있는 것 말이야. 나는 지금 생각해도 꼬리가 쭈뼛 선다니까. 난 절대 거기 못 있어………..”

거기서부터, 달이 높게 뜨도록 이 수다스러운 통신원 고양이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털뭉치는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지만, 그보다 더한 자신과 같은 고양이에 대한 갈망으로 통신원 고양이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물론 인간인 우리가 이 고양이들의 치열한 전쟁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굳이 인간의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지상이었으면 테르모필레 전투를, 해상이었다면 미드웨이 해전을, 공중이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 비행 전투를 떠 올리면 될 것이다. 그 정도로 – 물론 이 통신원 고양이가 과장한 것일 수도 있지만 – 피가 튀기고, 비명이 울려 퍼지는 전투였으니까. 오죽하면 평소 산책길로 사용하던 떠돌이 개들도 공기 중에 진하게 퍼진 피냄새를 맡고 뒷걸음질 질 정도였다.

그래도 짧게 정리하자면, 전쟁은 예기치 않은 타이밍에 시작되었으며, 두 진영의 고양이들이 서로 싸웠으며, 나중에는 피아의 구분 없이 그저 발톱을 휘두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잔혹하고 끔찍한 전투의 끝에, 돌연 은퇴한 파수꾼 고양이 ‘여름 태양’이 나타나서 싸움을 종결시켰다. 통신원 고양이의 말이 여기서부터 이어진다.

“……. 여름 태양이 나무 가지 위에서 고함을 지르니까 모든 고양이가 멈춰졌어. 온 동네가 여름 태양의 목소리에 떨었다니까. 저 멀리 있는 나도 몸을 움찔할 정도로 큰 소리였어. 모든 고양이가 여름 태양을 쳐다봤지만, 여름 태양은 그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어. 다만 그 높은 나무 위에서, 저기 하늘의 별을 응시하는 거야. 그리고 삽시간에 가장 짙은 밤보다 더 어둡게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졌어.

갑작스러운 현상에 공터에 모든 고양이들은 몸을 낮춰 떨었어. 도대체 여름 태양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모두가 혼란스러웠어. 공터는 꼼짝없는 어둠이 잠기고, 고양이들은 서로를 알아보지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조차 없는 상황이 되었다나 봐. 전쟁의 상처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로 큰 공포가, 자기 자신을 잃을 것 같은 공포가 고양이들을 덮쳤어.

그때 나무 위에서 두 개의 밝은 빛이 나타났어. 그건 여름 태양의 두 눈이었지. 어둠 속에서 빛은 강하고, 따스하게 고양이들을 감쌌어. 그리고 두 눈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어. 마치 그건 별똥별 같았어. 다만 위로 올라갈 뿐이었지만. 그리고 그대로 하늘에 박혀 별이 되었지.

어둠은 삽시간에 걷히고, 나무 위엔 여름 태양이 없었어. 그대로 사라진 거지. 나중에 장로 고양이들이 말하기로는, 여름 태양의 ‘위대한 여행'이 끝난 것이라고 하더라고. 그는 끝까지 파수꾼 고양이었던 거야.”

아직도 여름 태양의 위대한 여행을 목격했다는 전율에 빠져 있는 통신원 고양이는 꼬리까지 부르르 떨며 감상에 빠져 있었지만, 털뭉치에게 그런 것은 아무렴 좋았다. 조급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털뭉치는 통신원에게 그래서 도대체 자기 같은 고양이는 언제 나오냐고 물었다.

“이 마음 급한 녀석 같으니라고! 곧 나와 나온다고! 잠자코 들어봐.

그렇게 줄무늬 고양이와 민무늬 고양이는 화해했어. 애당초, 얼토당토않는 오해로 촉발된 싸움이어서, 대표 격인 고양끼리 꼬리를 꼬아서 서로 화해하기로 한 거지. 그리고 매번 일곱 번 달이 차 떠오를 때마다 공터에 다 같이 모여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전쟁과, 여름 태양의 위대한 여행을 기억하기로 했어.

그런데 말이야, 바로 어제였거든. 온 동네 고양이가 모여서 고양이 추모 집회를 공터에서 연 날 말이야. 그냥 처음엔 우리끼리, 동네 고양이가 모여있는 줄 알았는데, 딱! 너 같은 고양이들이 한쪽 벽에 좌르륵 붙어서 공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거야. 뭐, 나야 털뭉치 너를 알고 있으니까 너와 같은 동족이겠거니 했지만, 스산한 그림자는 그걸 ‘여름 태양이 두고 간 고양이 감시자'라고 그러니까 모든 고양이가 술렁거렸어. 덕분에 집회가 끝나고 그 고양이 곁에 얼씬도 하지 못했고 말이야. 뭔가……. 무서워서.

공터에 자기와 같은 고양이가 있다! 털뭉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진짜로 나와 같은 고양이가 있다! 더 이상 빠르게 지나다니는 차를 피해, 추위를 피해, 돌멩이를 피해, 그리고 고양이를 피해 숨을 필요가 없다. 같은 고양이라면, 고양이 가족이라면 자신을 환영해 줄 것이다. 일곱 밤 정도야 기다릴 수 있다. 털뭉치는 숨이 넘어가도록 통신원 고양이에게 물었다.

“야야, 진정해. 저기 큰 전봇대 보이지? 거기 아래에서 숲 냄새가 나는 쪽으로 – 너 숲이 뭔진 아니? – 좀 걸어가면 보일 거야. 아니면 고양이 냄새가 나는 곳을 가던가. 그리고…….”

통신원 고양이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털뭉치는 내달렸다. 물론 통신원 고양이의 뒷말은 평범한 고양이스러운 걱정에 불과했다. 개를 조심하라느니, 주위에 큰 고양이가 있는지 둘러보라는 식의 잔소리 말이다.


털뭉치는 곧장 전봇대 쪽으로 내달리고, 어딘가 맡아본 적 없는 싱그러운 냄새를 향해 내달렸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른다. 털뭉치는 어린 고양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내달렸다. 곧이어 털뭉치 정도는 쉽게 빠져 들어갈 수 있는 철창을 넘고, 여러 풀떼기와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조경지역을 지나, 통신원 고양이가 말한 공터에 도착했다.

공터는 털뭉치를 축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산했다. 아, 그리고 그곳에 있었다. 저기 공터를 쭉 둘러싼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자기와 같은 고양이들. 모두 털 색깔이 제각각이었으며, 여태까지 본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부풀고 정리가 안된 털들, 그리고 창백하고 푸른 눈빛까지! 비로소, 털뭉치는 자신과 같은 고양이들을 찾았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수십은 되어 보이는 고양이들이 공터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에게 가족은 저리도 많았다.

그리고 공터에 바람이 불었다. 분명 하늘님이 보내준 바람이었을 것이다. 바람에 날려 고양이 가족 중 하나가 팔랑팔랑 털뭉치에게로 날아왔다. 털뭉치 앞까지 온 고양이는 따스한 눈으로 털뭉치를 바라보았다. 털뭉치도 자신의 가족을 쳐다보았다. 털뭉치는 ‘여느 고양이처럼' 가까이 다가가 고양이의 냄새를 맡았다. 그 고양이에게서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축축하고 쿰쿰한 집의 냄새, 그리고 인간의 냄새가 났다.

털뭉치는 그대로 그 고양이와 앞 발이 꼭 닿은 상태로 웅크렸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털뭉치는 인간의 집에서, 자신의 따듯한 집에서 다른 모든 고양이들과 뛰어놀고 있었다. 거기엔 인간이, 이제 자신의 가족이 된 인간이 같이 있었다.


우리가 굳이 서사를 통해 이 곤히 잠든 고양이의 행복한 잠을 깨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이 작고 어린 고양이 털뭉치에게 중요한 시간이었다. 다만 고개를 잠시 돌려서 털뭉치를 잃어버린 불쌍한 주인을 볼 필요가 있다.

“그래 그 일주일쯤 되었나, 공터에서 고양이 놈들이 열 댓마리가 모여서 패싸움을 하더라고.”

주인 할매의 말에 공터로 향하는 집사의 손에는 전단지가, 울긋불긋하게 색연필과 보드마카로 그려진 수십 장의 전단지가 손에 꼭 들려있었다. 사례금 10만 원 – 그게 전화번호 아래 쓰인 집사가 지불할 수 있는 최대의 돈이었다. 직접 그린 유라의 모습이 수십 장의 전단지 사이에서 집사 자신을 책망하고 있는 듯했다.

전단지를 꼭 쥐고 공터로 향하는 집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할매는 괜한 짓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에이포 용지를 구하고, 사진이 없어 직접 전단지를 그린다는 집사의 말을 들었을 때, 집주인 할매는 혀를 끌끌 찰 수 조차 없었다. 집사의 눈빛에는 결연한 의지가, 어떤 것이 닥쳐도 절대 부러지지 않을 강한 빛이 서려 있었으니까.

주인 할매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밥이나 좀 챙겨주는 것이었다. 쉬지 않고, 잠조차 자지 않고 집사는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전단지를 붙이러 다녔다. 온 동네가 직접그린 전단지로 가득한 듯싶었다. 아마 동네의 모든 사람, 고양이, 심지어는 낙엽조차도 한 번씩은 빠짐없이 전단지를 봤으리라.

“아이고, 저 몸도 불편한 것이 어쩌기로서니 저런단 말이여.”

절뚝거리며 공터로 향하는 주인 할매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공터에 집사가 도착했다. 손에 꼭 쥔 전단지조차 유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공터의 한가운데, 자신이 그린 유라의 모습을 베고 자는 털뭉치를 발견했다. 달빛이 사근하게 푹신한 이불이 되어 털뭉치를, 유라를 덮어주고 있었다.

집사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발조차 내려놓고 천천히, 그동안 보고 싶었던 마음을 모두 다해 천천히 유라에게 향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장애조차 다가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가난도 발목을 잡을 수 없었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곤히 자고 있는 털뭉치를 쓰다듬었다. 작고 여윈 등이, 부푼 털이, 익숙한 촉감이 집사를 간질였다. 그대로 집사는 쓰러지듯 고양이를 안았다. 털뭉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집사도 꼼작도 하지 않은 채 고양이를 꼭 안고 깊은 잠에 들었다.

맑고 바람 한 점 없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공터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혹은 두 명의 사람이 서로를 감싼 채 말끈한 달빛을 이불 삼아 누워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꿈을 꾸며 밤을 여행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보던 하늘님은 따듯한 바람을 불어주었다. 아까 놓친 전단지가 수 십 마리의 털뭉치 고양이가 되어 이들을 보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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