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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거시기 Feb 05. 2020

신체나이를 인증한 U2내한 후기

죽기 전에 꼭 공연을 보고 싶은 뮤지션이 서른 마흔 다섯 팀 정도 있는데 U2가 그 중 한 팀이었다.

마지막으로 고척돔을 갔던 건 2017년 베이비메탈 내한 때였다.
게스트로 메탈리카가 출연한 공연이었는데 커크 해밋의 뭣 같은 Creeping Death솔로를 꼭 듣고 싶었지만 개똥같던 St.Anger수록곡을 몇 곡 연주했던 걸로 기억한다(개똥은 거름으로라도 쓸 수 있네. 미안해 개똥)  

당시에도 음향에 대해 좋은 기억은 없었는데 이번 U2공연은 좀 더 참담했다.
아담 클레이튼의 왠지 근음셔틀 같지만 핵심은 딱딱 짚어주는 노량진 강사같은 베이스라인을 좋아하는데 미들라인은 거의 들리지도 않고 그냥 웅웅거리기만 했다.
마찬가지로 래리 뮬런 주니어의 수려한 드러밍 역시 "아~드럼을 치고는 있네~"수준의 소리만 들렸다.
반대로 에지의 기타 소리는 너무 까랑까랑 거렸다. 래니 엠프로 다 도배했나 싶을 정도로 캴캴거리는 소리가 연신 났는데 역시 세계 최고의 밴드의 음향팀도 고척돔은 어쩔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전 세계에서 음향으로 내노라하는 밴드와 음향팀들은 최소한 한 번 이상은 고척돔 공략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부디 내한공연을 추진하는 여러 기획사들도 이 전략으로 해외 뮤지션들을 섭외해 보시길.

보노의 목소리는 처음엔 다소 불안정했다. 삑사리가 몇 번 났었는데 난 이것이 라이브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직접 안 가보면 대체 어디서 보노의 삑사리를 감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아담도 베이스라인을 꽤 틀렸는데 이것 역시 라이브의 묘미다.


내한공연의 꽃 이라고 할 수 있는 20분 간의 딜레이가 지난 뒤 U2가 등장했다.
(큰 LED전광판이 좌우에 위치해 있지만 딜레이에 대한 공지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었던 것 같다.
1부는 투어 테마에 맞게 대부분 Joshua Tree앨범 수록곡들로 채워졌다.
"가로 64미터, 세로 16미터의 8K LED"라는 Yes24공연측의 세 차례에 걸친 문자가 호들갑스럽지않게 느껴질 정도로 적어도 시네마틱 연출에 있어선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했다.


단지 좀 우려스러웠던 건, 퇴장을 향해 서서히 걸음하는 뮤지션이 떨어져가는 텐션과 컨디션, 체력을 보완해줄만한 가장 쉽고 좋은 공연 연출도구로 "영상"을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1부 한동안은 실제로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멤버들은 처음부터 무대 전면에 나와 노래를 하고 연주를 했다. 그래서 드럼이 무대 전면부와 뒷쪽에 각각 하나씩 세팅되어 있었고 파스 붙이는 걸 깜빡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R석에서 버팅기고 있었던 내게는 멤버들의 얼굴을 육안으로 확실히 볼 수 있던 기회가 되었다. 심지어 너무 잘 보여서 멤버들의 주름살이 다 보였을 정도.


2부 부터는 그들의 90년대 최고(망)작인 'POP'의 라이브투어 'Popmart'를 떠올리게 하는 영상 연출로 시작되었다.
Slane Castle에서 첫 곡으로 연주된 'Elevation'이 2부의 서두를 장식했고 이 곡이 주제가로 쓰인 툼 레이더 영화판의 속편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1부가 Joshua Tree를 위시한 추억팔이 투어였다면 2부는 확실히 U2라는 밴드가 가진 다양한 색감을 컬러풀한 영상들, 그리고 이제는 환갑이 다 되어 밥 딜런이나 폴 맥같은 '장인'의 풍모마져 느끼게 만드는 보노의 퍼포먼스로 채웠다.


공연 중 가장 감탄하면서도 울컥했던 순간은 (많은 이들이 후기에서 얘기했듯이)
Ultra Violet을 부를 때 였다.
가장 좋아하는 U2의 노래 Top.5를 꼽자면 꼭 들어가는 노래인데 이미 많은 분들이 언급했듯 내가 구체적으로 더 이야기할 건 없을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건 박경원과 김정숙 여사의 등장이었다. 박경원의 도전 정신이야 누구나 다 알지만 그녀는 널리 알려진대로 친일파였고 현직 영부인이 등장했다는 것 역시 꺼림칙했다(오해마시길- 나름대로 몇 년째 당비를 납부하고 있는 민주당원이니까)
뭐 그게 U2의 뜻은 아니었을 테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거고 아쉬운 건 얘기를 해야된다.


그래도 그런 아쉬움을 덮어버릴만큼 메시지는 강렬했고 뭉클하며 울컥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좀 더 쓰고 싶은 얘기가 산더미같지만 지금은 U2공연의 후기를 쓰는 중이니 거두절미하기로 하고.


공연의 대미는 'One', 그리고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 더 큰거야"라는 진부하지만 진리인 말이 장식했다.


원은 개인적으로는 악퉁 베이비 수록곡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곡이다. "너무 뻔하게 감동을 줄려고 한다"라는 게 그 이유였지만 라이브에서 직접 들으니 결국 따라부르게 되더라.


2시간 20여분의 공연을 모두 보고 나오니 나 처럼 허리를 부여잡은 사람들이 어림잡아 30명은 되어보였다. 오늘 공연의 연령층은 스탠딩이 아닌 좌석이 매진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높았던 것 같고 주변의 관객들 역시 최소 20대 후반은 되어보였다.


이렇게 360도 라이브를 본 뒤 1년에 서너번씩 꿈꿔왔던 U2공연은 (본문에서는 그렇게 안 느껴지지만)너무 잘 봤고 감동마져 느꼈던 순간이었다. 다만 그 여운이 생각보다 오래 남을 것 같진 않다. LED화면이 워낙 거대했던 탓에 사진 찍기는 좋았지만.


뭐 다음에 "Oh~South Korea Fan is Wonderful!"하면서 엄지 척하고 내한 공연 한 번 더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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