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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라 Mar 13. 2017

반디와의 10년

3. 새로운 경험들


3. 새로운 경험들 (5)


  그래도 그런 변화의 기로에서 본연의 자세를 가끔 이탈하기는 해도 요섭에게 가장 일관성 있는 것은 형으로서 반디를 대하는 태도였다. 같은 남자를 대하듯, 강인함을 키워주듯, 요섭은 반디에게 뭔가를 수시로 가르쳤다. 물건 던지면 물어오기, 높이 뛰어오르기, 달리기, 그리고 험한 표정으로 으르릉 대기. 반디는 그런 것을 잘 안했고, 또 못했다. 요섭도 그리 집요하지는 않아서 그런 훈련은 그저 요섭과 반디의 일종의 의사소통 같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것, 으르릉 대기는 꽤 잘했고 항상 했다. 방법은 가만히 있는 반디의 겨드랑이에 손을 슬쩍 집어넣으면 된다. 반디는 이빨이 보이도록 코를 밀어 올리고 으르릉 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이 그걸 하면 아무 반응이 없지만 요섭이 하면 즉각 반응을 나타냈다. 반디도 그게 요섭과의 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일 때마다 요섭은 대단해 잘했어 하는 말들을 낮고 힘 있는 목소리로 반디에게 들려주었다.

  요섭과 함께 있을 때 반디는 은근히 그런 식의 스릴을 즐겼다. 그건 나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풀이 죽어 있거나 잠을 자다가도 요섭이 다가오면 반디의 눈은 빛이 나고 짓궂게 변해 장난기가 자글자글 넘쳐났다. 호적수를 만나 팽팽한 전의를 느끼듯이, 이제부터 시작 될 흥미진진한 놀이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듯이. 허지만 반디에게 키워준 용맹함은 부작용도 낳았다. 반디는 아무에게나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으니 그게 문제였다.

  반디의 세계는 우리가족 뿐이다. 우리는 모두 반디 편이어서 져주고 양보하는데 아무 이의가 없었지만 어디 남이야 그렇겠는가. 특히 다른 강아지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마치 동네에서 잘나가는 얼뜨기 깡패가 큰물에 나갔다가 큰 코 다치듯이.

반디는 산책길에서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었으며 동물병원에 갔을 때도 그랬다. 이건 분명히 사회성이 떨어지는 행동이다. 그러나 반디가 무슨 사회활동을 하겠는가 싶어 약간 묵인하고 반디로 인해 다른 강아지들이 놀라지 않게 하려고 항상 조심했다.

  이모의 걱정에 나와 마리는 동의 했지만 요섭과 피터는 반디의 성격적 용맹함을 은근히 좋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아님은 곧 증명되었다. 

시골에 갔을 때 꽤 큰 덩치의 개에게 달려들었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우리애가 덩치만 컸지 순해요. 이렇게 말하기에 방심했는데 반디가 먼저 달려들자 시골아이는 덩치에 어울리는 반격을 해왔다. 아무리 순해도 그렇지 세상에 어느 누가 건드리는데 가만히 있겠는가. 반디는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고 순간적으로 반사 신경이 좋은 피터가 반디의 목줄을 위로 확 잡아 당겼다. 반디는 순식간에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매달려버린 모습은 꽤 오래도록 우습게 기억되었다. 피터는 목줄에 매달린 반디를 얼른 안아 위기에서 구해냈다. 

  반디가 피터에게 안기자 외유내강의 시골 큰개는 다시 순한 개로 돌아왔다. 과연 시골개의 멋진 순간적 성질은 감탄 할 만 했다. 대신 반디의 용맹함은 피터와 요섭의 인식에서 영영 떠나게 되었다. 그래도 동물병원에서의 기세를 꺾지는 않았다. 한 번의 혼남으로는 고칠 수 없는 소극적인 용맹함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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